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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올레_우레시노 코스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by 배정철

<<우레시노 코스>> 12.5km 4~5시간 /난이도 중상


히젠요시다야키(도자기) 가마모토 회관→다이조지(절) • 요시우라신사(0.5km)→니시요시다 다원 (1.8km) →니시요시다의 권현불상과 13 보살상 (3km)→보즈바루 파일럿 다원(4km)→22 세기 아시아의 숲(5.5km) →시이바 산소(8.7km)→토도로키노타키 폭포공원(10.2km) 시볼트 유(대중탕) (12km)→온천공원・상점가→시볼트의 족욕(12.5km)


<료칸 교토야>에서는 조식으로 빵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커피는 이곳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있고, 빵도 여러 가지를 구비해 놨다. 커피와 빵을 차려 놓은 공간이 아늑해서 다다미방 전통 료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로비 휴게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커다란 나팔 스피커가 달린 오래된 축음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실물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건 처음 듣고 본다. 신기해하며 다가갔더니 슬며시 레코드 판을 갈아 끼우고 손잡이를 돌려 태엽을 감아 새소리를 들려준다. 축음기뿐만 아니라 로비의 휴게실 공간에는 130년 전에 세워진 이 료칸이 지나온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료칸 앞에는 오래된 도요타 클래식 자동차가 한 대 주차되어 있는데, 1960년에 도요타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1930년대 AA모델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100대 한정판이라고 한다. 오래된 것은 낡고 녹슬기 마련이지만, 그것에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와 역사가 스며 있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는 일이다. 오래된 축음기를 매만지는 할머니는 레코드판을 돌리며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 속에 스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리라.

숙소 앞 큰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벽돌담 위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는 배낭을 멘 낯선 이들이 안타까웠는지 화단에 물을 주던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서툰 영어로 30분 뒤에 버스가 올 거라고 알려준다. 구글 검색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고맙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버스가 왔다. "우레시노 에키마데 이키마스카?" 미리 연습한 일본어로 물었더니, "이~에, 이키마센" 안 간단다. 이 버스에서 나이가 아주 많은 할머니 두 분이 내리시며 몇 마디 하시길래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왕인 박사가 일본에 와서 학문을 전해 줬다며 한국을 좋아한다고 하신다. 당신 연세가 아흔이라며 차도로 위험하게 길을 건너시길래 얼른 뛰어가 도와 드렸다. "You're so kind" 손을 흔들며 가신다. 백발의 유쾌한 할머니다.


버스를 타고 우레시노역까지 이동한 후 환승해서 오늘 코스의 출발지인 <도자기 가마모토 회관>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버스는 우리의 시내버스와 모습이 비슷하다.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고, 탈 때와 내릴 때 교통카드를 태그 한다. 교통카드가 없을 때는 현금으로 낼 수 있는데, 뒷문으로 탈 때 탄 곳의 숫자를 알 수 있는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내릴 때 정확한 요금을 정산하기 위해서다. 버스 요금은 택시 요금 마냥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계속 올라가는데, 버스 앞쪽 모니터에 요금이 표시된다. 기본요금이 210엔이고 서너 군데 버스정류장을 지나면서부터 요금이 오르기 시작한다. 다케오에서 우레시노까지 30분 정도 걸렸는데 650엔, 환승해서 8분 가는데 290엔이다. 세종시내버스요금 1,400원(150엔), 30분 거리의 오송역까지 1,700원(180엔)인데 비해 일본의 버스 요금은 확실히 비싸다. 기차 요금도 마찬가지다. 후쿠오카 하카타 역-다케오온센 역 구간 JR특급열차 요금(3,660엔)은 비슷한 거리의 세종-서울 구간의 ktx 요금(18,500원)의 두 배다. 교통비가 비싼 탓인지 등교 시간이 지난 후에 버스 타는 사람이 없다.


출발지 <가마모토 회관> 주차장에 출발 안내 간세 조형물이 있다. 근처 마을은 도자기를 만드는 곳이다. 지금은 쇠퇴의 그림자가 역력한데 한때는 마음 뒷산 차밭에서 생산되는 차의 그윽한 향기를 담는 다기로 전국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갔으리라. 여러 세대를 거쳐 가업을 이어가는 일본의 전통도 시골 마을 소멸의 격랑을 비켜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자손은 줄고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고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고 싶은 것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산 입구에 스님은 보이지 않는 오래된 <다이조지 절>이 있다. 절 옆에 신사 계단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절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고, 신사는 토속신이나 그 신사에 머무는 신을 모시는 시설인데 두 곳이 나란히 있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신사를 지나면서부터는 산길이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토해 내는 맑은 산소가 몸을 가볍게 한다. 산길이 끝나고 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을 오른다. 다케오 코스의 산보다는 크고 높지만 경사는 심하지 않아 많이 힘들지는 않다. 1시간 정도 걸으면 큰 바위 아래에 작은 불상 13개가 줄지어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니시요시다의 권현불상과 13 보살상>을 만나게 된다. 작은 불상에 붉은색 가사를 입혀 놓은 것이 독특하다. 근처에 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 간다. 일본 모기가 한국인 피맛을 보고는 얼마나 달려드는지.... 보즈바루 파일럿 다원이 있다는 곳까지는 줄곧 오르막이다. 산 위 능선에는 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웃자란 차밭도 여럿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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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22세기 아시아 숲>까지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이 숲은 명치(明治) 40년(1908년)에 조성된 곳이라고 한다. 숲길을 걸으면 싱그러운 기운이 콧속을 파고들고 찬 공기가 땀방울을 터뜨리며 상큼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신선한 산소가 코와 입뿐만 아니라 땀구멍으로도 들어온다. 숲 전망대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숲길을 따라 시이바 로캰까지 내려왔다. 이후로는 도로, 농로, 마을길을 따라 걷고 <토도로키노타키 폭포공원>에서부터는 겨울 물을 따라 시내로 향한다. 종착점은 <시볼트 족욕탕>이다.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온천물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우레시노 코스>는 다케오 코스와 전체 길이와 산을 넘는 코스 설계도 비슷하지만 산길이 완만하고 숲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기에 아주 좋다. 산 입구에는 등산 스틱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을 위해 대나무 지팡이를 준비해 두었고, 코스 곳곳에 긴급 연락처도 부착해 두고 있다. 멧돼지 출몰 지역에는 커다란 깡통에 나무막대를 매달아 두고 지나가기 전에 두드리고 가라는 한글 안내표지판도 걸려 있다. 우레시노 시 당국의 세심하고 친절한 마음 같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이 좋은 길을 걷는 사람이 없다. 한국 관광객은 고사하고 일본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나이 많은 사람은 몸이 따라 주지 못하고, 젊은이들은 시간이 없고, 나처럼 은퇴한 이들은 또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다케오와 우레시노에는 오래된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가며 오래된 것을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지키는 숲길이 있다.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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