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로 가는 비행기는 한 시간 늦게 출발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내리던 비가 굵어지더니, 인천 공항에는 바람도 많이 분다. 기상상태가 여의치 않아 이륙이 늦어진다는 방송을 여러 번 들은 끝에 출발. 환승을 하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Abu Dahbi Zayed International Airport)까지는 9시간 30분, 공항에서 3시간을 대기했다가 제네바(Aéroport International de Genève)까지 다시 6시간을 더 비행한다.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 1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이다. 아부다비까지는 공간이 좀 넓은 좌석을 추가 구매했고, 아부다비에서 제네바까지는 일반 좌석을 그대로 이용했다. 확실히 돈이 든 만큼 편하다. 항공기 좌석만큼 돈의 논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을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하게된다. 비행기 타면서 등급에 따른 서비스 차이나 빈부차이를 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본주의의 속성에 모두들 순응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아끼려는 마음 때문에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없다면, 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서 항공권을 좀 더 일찍 구매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 줄인 비용으로 좀 더 좌석 공간이 넓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chamonix)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기사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사무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 와 카드번호를 묻고 결재를 진행한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스위스 버스에 컨택트 결재시스템이 없고, 카드 결재기도 없다.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어디서든 밥을 먹고, 물건을 사고, 버스를 타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한국의 스마트한 환경은 역시나 세계 최고다. 다만 아쉬운 건, 기사에게 알려 준 전화번호가 잘못되었다며 갓길에 버스를 잠시 세워 다시 번호를 물어보는 젊은 버스기사의 친절한 표정과 태도가 세계 최강의 스마트한 환경을 자랑하는 한국에도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사람의 온기와 미소가 없는 스마트한 세상은 편하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살고 싶어 하는 곳은 아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스 샤모니까지는 버스로 1시간 20분, 어디가 국경인지 언제 프랑스 땅으로 넘어왔는지 알 수 없다. 지도상으로는 국가 간의 경계가 있으나, 다니다 보면 어디가 경계인지 알 수 없는 이 땅은 유럽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다. 유럽(Europe)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우랄산맥과 캅카스산맥, 우랄강, 카스피해, 흑해와 에게해의 물길을 기준으로 아시아와 구분한 지역을 일컫는다. UN 분류에 따르면 유럽에는 49개의 정식 국가가 있다. 유럽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스 로마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늘의 신 제우스가 흰 소로 변해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파(Europa)를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 지금의 유럽 땅(정확히는 크레타)으로 건너가 대륙을 한 바퀴 돌고 오자 에우로파가 지나갔던 땅들을 Europe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오래 기간의 대륙 충돌과 침식 등의 지질학적 변화로 인하여 유럽 대륙이 생겨났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어쩐지 제우스의 소동이 더 흥미롭다.
버스 창밖으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여전히 눈이 쌓인 설산 그리고 여름 햇살에 녹아내리는 옥빛 폭포를 바라보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읽었던 이야기를 잠시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샤모니 수드(chamonix sud) 정류장이다. 샤모니몽블랑(프랑스어: Chamonix-Mont-Blanc) 혹은 간단히 샤모니는 몽블랑산기슭에 자리한 프랑스 오트사부아주의 코뮌으로 인구 9,000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프랑스의 겨울 스포츠 리조트로 알려졌으며, 특히 스키장이 유명하다. 1924년 동계 올림픽과 1960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이곳에서 열렸다. 4월에서 9월까지는 몽블랑 트레킹 시즌이고, 12월부터 4월까지는 스키시즌으로 이곳이 붐빈다고 한다. 호텔 체크인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샤모니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샤모니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여름이 아니라 가을 같은 날씨인데도 기후 온난화 탓인지 빙하가 긴 폭포를 만들며 흘러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늘이 맑아 눈 덮인 몽블랑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다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내 나라에서는 폭염과 폭우가 난장을 부리는데, 지금 이곳의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7월 한여름에 눈 덮인 산을 보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발마광장으로 사람이 하나둘 모여든다. 발마광장에는 이곳에서 유명한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몽블랑 등반의 역사를 기념하며, 몽블랑 등반을 제안하고 후원한 제네바의 자연과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소쉬르와 몽블랑 최초 등반 성공자 중 한 명인 자크 발마(Jacques Balmat)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몽블랑을 향하고 있는 이가 소쉬르이고, 한쪽 무릎을 약간 굽히고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몽블랑을 가리키는 이가 발마다. 소쉬르는 1760년 몽블랑 등반에 성공하는 사람에게 큰 보상을 약속했고, 1786년 8월 8일 자크 발마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드(Michel-Gabriel Paccard)가 최초로 몽블랑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상금과 명예에 욕심을 낸 발마는 몽블랑 최초 등정의 공을 혼자 독차지했다. 100년 뒤, 소쉬르의 증손자가 발견한 사료에서 파카르드가 발마와 함께 등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피카르드의 동상은 소쉬르와 발마의 동상에서 50m 정도 떨어진 뒤쪽에 혼자인 모습으로 세워졌다. 당시에 몽블랑 최초 등정의 명예는 발마의 것이었지만, 역사는 파카르드의 땀과 노력을 잊지 않았다. 파카르드는 발마의 거짓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초연한 모습으로 바위에 앉아 가만히 몽블랑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그런 피카르드 동산에 올라타 노는 모습은 마치 그가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간단한 저녁거리 장을 보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숙소까지는 30분 거리다.
<이동>
07.16(수) 에티하드항공 18:30(ICN 1T) ~ 23:15(AUD A)
07.17(목) 에티하드항공 02:30(AUH A) ~07:20(GVA 1T)
*제네바 공항 ~ 샤모니 (1시간 20분, 4명 150€) AlpyBus 예약
*샤모니 ~ 레우슈(무료 버스 10분)
-샤모니 시외버스 터미널 건너편인 '샤모니 수드'에서 1번 버스를 타고 레우슈로 이동 / 버스 무료
♨ 숙박 : Vert Lodge Chamonix(조식포함, 268,203원)
- 침실은 좁고 허름했으나, 자율적으로 먹는 아침 조식은 아주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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