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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an 13. 2024

술꾼도시여자들

[위소영] 술꾼도시여자들

술 마시고 싶을 때

술꾼도시여자들[위소영]

(술꾼도시여자들 시즌 1이 끝나고 시즌2를 촬영할 때 작성한 글입니다.)


예전에 드라마 촬영을 위한 장소 협조 공문이 접수된 적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제목은 ‘술꾼도시 여자들’이었습니다. 작년에 이미 방영되고 끝났지만, 시청률이 높게 나와 이번에 시즌2를 촬영한다고 합니다. 웬만하면 민원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공문만 발송하고 지나쳤겠지만, 이번 건은 드라마 주인공은 누구인지, 촬영은 또 어떻게 하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작자가 특이하게 공문을 보내면서 대본까지 일부 첨부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듣는 드라마였고 제목만 보고 참 가볍고 통속적이겠다 싶었는데, 막상 대본을 읽어보니 글이 통통 튀면서 감각적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도 초청될 정도로 드라마는 작품성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잠시 주인공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가 가을바람에서 봄바람 냄새를 맡는 표정과 머리 위로 벚꽃이 휘날리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았습니다. 단짝 셋이서 술 약속하며 만나는 장면인데 만나기 전부터 벌써 취기가 올라와 흥이 나는 것 같습니다. 봄도 아닌 가을에 벚꽃이 휘날린다는데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잔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을까요. 또 ‘봄바람 같은 가을바람이 세 사람을 스친다’라는 장면은 어떻게 촬영하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촬영은 늦은 밤에 스태프 포함 60명이 작업한다고 하여 차마 보지는 못했습니다.


분당구 판교 보행육교에서 촬영한 장면



며칠 후 서점에서 ‘술꾼도시여자들 대본집(시즌1)’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대본집이 책으로 출간되는가 싶었는데, 실제로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대본이 어떻게 쓰여 있길래 배우들이 저렇게 연기 하냐며 관심이 많아 대본집을 출판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원작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는 것처럼 거꾸로 드라마 대본을 책으로 만드는 것이 유행이고 이게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하네요.


그래도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긴 했습니다. 소설은 유명해지면 작가는 지식인이라며 존경을 받지만, 드라마는 인기 끌수록 작가는 욕을 얻어먹습니다. 임성한 같은 인기 작가는 불륜 막장 드라마만 쓴다며 제정신 아니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게다가 TV 대본집이라는 것이 드라마로 만들기 전까지는 미완성인데, 차라리 드라마 티빙으로 유료 결재해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인류 최초의 문학은 시나 소설이 아닌 희곡(대본집)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모두 희곡집입니다. 우리나라만 역사적으로 극 문화가 없어서(판소리는 있지만) 희곡을 문학으로써 홀대할 뿐이지, 외국에서는 극작가를 우대하고 희곡을 문학의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력만 봐도 시인, 소설가뿐만 아니라 극작가가 수상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니까요.


아무튼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우정과 갈등, 직장 내 설움, 가족과의 이별 등 살다 보면 한 번씩 겪는 현실적인 화두로 눈물샘을 자극한다. 주인공들의 입과 잔을 빌려 쓰디쓴 현실과 통쾌한 웃음을 절묘하게 섞어낸 위소영 작가의 글맛이 마치 잘 말아낸 한잔의 소맥 같다.’란 출판사 추천으로 대신합니다.

대본집답게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첫머리에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중 주인공 안소희는 ‘억척스럽고 지독한 악바리 싸움닭이지만, 털털하고 성격이 좋다’고 평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과연 소희는 텐션이 넘치다 못해 거침없고 호탕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식비가 많다는 상사에게 ‘네 조상은 개일 것이다’라는 나레이션이 재미있고, 또 째려보면 ‘이 ***** 눈빛이 왜 그래?’라고 대드는 장면은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국장(상사): 이 친구가 또 아주 자유분방한 구석도 있구요. 허허
   소희: Na(지멋대로란 말인데...)
메인(상사): 고맙다. 항상 니가 있어 든든해.
   소희: Na(일은 니가 다 할거지만 나도 돈은 챙길 거라는 말.)


드라마 제목처럼 술꾼인 소희는 인생 고비마다 술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맙니다. 그래도 작가는 각박한 세상에서 좋은 사람과 슬 한잔하는 여유는 잃지말자고 합니다. 잊히지 않는 서툴렀던 첫사랑이 떠오를 때 한잔, 직장생활에서 진상 때문에 하루가 고단했으면 또 한잔.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 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술 한잔하자고 권하네요. 그리고 건배사는 ‘적시자!’로.


그런데, 드라마는 드라마. 드라마 따라하다가 인생 정말 한 방에 훅 갑니다. 우리가 건배사로 건강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입술만 살짝 대고 잔을 내려놓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아! 물론 그 모습을 지구(등장인물)가 봤다면 술잔을 내리치며 술주정 부리겠네요.


“마셔! 원샷 못 하겠음 여기서 계산하고 당장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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