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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pr 13. 2024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 여행

마스다 미리 그림에세이 '그나저나, 핀란드는 시마몬롤이다.!'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여행? 


196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마스다 미리는 만화, 그림책, 에세이를 쓰는 전업작가다. 여행을 떠난 김에 생각하는지 아니면 생각하고 싶어서 여행을 떠났는지 알쏭달쏭하지만, 아무튼 그녀가 핀란드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그녀가 핀란드로 여행 온 목적, 생각하다.

시간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나 자신을. 


하지만, 책 제목과 말머리와 달리 책은 가볍다. 작자는 그저 빵순이로 시나몬 롤을 먹기 위해서 핀란드에 왔다. 말로는 따뜻한 커피와 시마몬 롤을 먹으며 시간, 인생, 그리고 자신을 사유한다지만, 책 본문은 모두 빵 이야기다. 그것도 거리에서 카페를 바꿔가며 주인이 구워내는 맛있는 빵을 먹기에 급급하다. 생각은 빵을 굽는 향기와 혀로 느껴지는 설탕덩어리의 감미로움뿐이다.


 사각사각한 설탕이 듬뿍 묻은 도넛이다.
한입베어 문다.
이-런-도-넛-을, 나는,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다고오-!
마음속에서 부르짖는다.
결코 파삭한 식감이 아니다. 그런데 빵 같지도 않다. 그런 도넛.
너무 맛있잖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시나몬 롤을 먹고 싶어서 떠난 여행

 

책 제목을 바꿔야 한다. 생각하고 싶어서 떠난 핀란드여행이 아니라 시나몬 롤을 먹고 싶어서 떠난 여행으로.

전형적인 빵순이 마스다 미리는 핀란드에 여행 와서 여러 카페를 들려 커피와 함께 시나몬 롤을 먹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그것도 갓 구운 따끈따끈한 것으로. 어느 날은 백화점에서 치킨과 베이비콘 카레, 밥, 마늘이 듬뿍 들어간 감자샐러드, 롤 캐비지를 사자고 집에서 음미하며 먹는다. 특히 밥알이 들어간 롤 캐비지의 식감은 쫀득쫀득하여 맛나다고 감격했다.

그녀가 들리는 시장이나 노점은 모두 빵을 먹기 위해 들리는 곳일 뿐이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사람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한 끼 맛난 식사를 하기 위해 몇 시간 걸리는 길을 떠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그럴까 반신반의했다. 

마스다 미리가 헬싱키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은 아침에 눈을 뜰 때 근처 카페에서 사각사각한 설탕이 토핑 된 시나몬 롤을 먹는 일이라고 했고, 가끔 치즈가 들어간 토마토수프를 먹거나 마요네즈를 듬뿍 찍은 버거를 요구르트와 먹으면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도 친구 없이 오직 홀로 찾은 카페에서 그런 맛의 향연을 누리는 것이다. 그녀에게 맛있다는 감정은 심오한 사유의 과정이다.


마스다 미리의 여행 이야기는 책을 읽는 독자로서 그녀의 이야기에 동감하는 부분이 적다. 그러다 보니 이해하기 힘들다. 무척 낯선 것은 호기심마저 생기지 않는다. 

책 한 권이 시나몬 빵 먹는 이야기, 먹기 전의 설렘, 먹을 때의 기쁨, 다 먹고 나서의 아쉬움, 그리고 다음 날 먹을 빵에 대한 기대감 등등의 이야기로만 채워졌다. 핀란드는 여행자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 그런 호기심으로 책을 골랐던 터라 적잖이 당황스럽다.


생각을 전향하여, 그녀의 빵 순례 이야기가 워낙 특이한 기행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책으로도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내 주변에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 미식가라고 스스로 자청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혀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음 머릿속 뇌신경이 온통 혓바닥 미신경과 연결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마스다 미리의 책을 읽고 시큰둥한 나는 과연 어떤 감각으로부터 감동을 받는가? 사람이 외계로부터 받는 감각이라고 해봐야 크게 다섯 가지다. 오감.

그중 물론 시각이 우선이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단연 시각이다. 눈으로 사물의 색, 모양, 움직임, 크기 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은 다른 기관보다 압도적이다. 

반면, 가장 많은 종류의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은 후각이다. 사람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 청각도 우리가 듣는 소리 외에도 주변에서 발생하는 파동을 감지할 만큼 매우 광범위한 자극을 구별할 수 있다. 오히려 미각이 오감 중 가장 둔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으로 그 범위가 매우 좁다. 더구나 오로지 혀의 감각에 의존하느라 어느 일정 장소와 행위, 즉 식당에서 음식을 섭취할 때만 느껴지는 이런 제한적인 미각에 삶의 기쁨이 매달려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을 더욱 제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손끝에서 느끼는 감촉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린 날씨에 느끼는 따스함 아니면 더운 날씨에 매만지는 서늘함. 아, 그리고 너의 부드러운 손등.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 오감 중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감각은 촉각이라고 한다. 뜨겁거나 날카로운 물체와 접촉했을 때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촉각은 사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하기 위한, 감동을 얻기 위한 감각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미리 알리기 위해 통증을 느끼도록 하는 감각이겠다. 그러면 너를 통해 얻는 촉각은 어쩌면 통증을 느껴야 하겠지. 헤어질 결심이라고 했을 때 격심한 고통이 밀려온 것은 촉각이 사전에 알리는 감각이겠지. 

그런 것을 나는 무시했다. 예린 칼날을 쥐어 잡으면서도 살이 베이는 쓰라리고 예린 느낌을 그저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이 바로 그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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