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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ishin Sep 14. 2019

제주의 작은 문화예술 탐방기

제주-런던 네트워크 사운드 퍼포먼스 in 문화공간 양

조용한 밤에 그리고 조용한 제주의 한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큰 노인의 마을이라는 거로마을에서 제주와 런던이 연결되는 이벤트를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문화공간 양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공간 양은 제주의 작가들과 육지(제주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기타 육로로 연결된 지역을 통틀어서 육지라고 부른다)의 작가들 그리고 해외의 작가들까지 거로마을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곳에서 새로운 지역성을 실험하는 예술공간이다. 이 날은 문화공간 양에서 레지던시로 인연을 맺었던 작가가 다시 거로마을을 방문하여 런던의 작가들과 함께 라이브 연주를 하게 되었다.


스트리머


김지연, 이강일로 구성된 웨더 리포트는 문화공간 양에서 레지던시로 있는 동안 문화공간 양 지붕에 오디오 스트리머를 설치하였다.  이 장치를 통해 지구 반대 편에서도 언제든지 인터넷 사이트(http://locusonus.org/locustream/)에 접속하여 문화공간 양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Locus Sonus는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사운드 맵핑 프로젝트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제주도의 문화공간 양에 스트리머가 설치되어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는 어쩌면 매우 먼 곳이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인 거리감으로서의 지역성은 기술 매체의 관점에서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제주도의 웨더 리포트는 로커스소너스 인터넷 연결망을 통해 런던의 작가들과 합주를 하게 된다. 이번 합주는 매년 5월 첫째 주 주말에 열리는 국제 새벽 합창의 날 (International Dawn Chorus Day)을 맞이하여 열리는 전 세계인의 합창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이 날엔 영국의 스태브 생태공원에 사운드 캠프가 열리고 로커스 소너스에 연결되어 있는 방송들이 지구가 도는 방향으로 차례로 합주를 한다. 이들의 합주는 웹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 리베일(Reveil) 방송을 통해 24시간 송출된다. 문화공간 양에서 열리는 연주도 리베일에서 생방송으로 들을 수 있다.


로커스 소너스 소리지도(Locus Sonus Soundmap), http://locusonus.org/soundmap/051/  [출처] 제주-런던 네트워크 사운드 퍼포먼스


김지연 작가님은 이런 네트워크와 단체들에 대해 설명해주며 현재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소리들을 들려주었다. 현재 구글 맵을 통해서 우리는 전 세계의 시각적인 지리정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라는건 경험이라기보다는 정보에 더 가까운 느낌을 받곤 했는데, 반면 지역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확실히 그 지역을 ‘느끼게’ 되는 경험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런 맵핑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하나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닌 개인의 자발적 참여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개인의 소리들이 지역을 하나하나 밝히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되었다. 살금살금 조심히 시작된 연주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귀를 모았다. 숨을 죽이고 라는 표현은 불필요하게 문학적이며 상투적으로 들리지 모르겠지만 혹여나 자신이 내는 소리가 그들의 연주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했던 관객의 모습을 달리 표현할 능력이 없다. 제주 거로마을에 있는 작가와 런던 스태브 생태공원에 있는 작가의 시그널들이 인터넷을 타고 오고 간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확인과 감상과 그리고 하나의 흐름을 향한 시선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오고 갔던 것  같다.

 런던의 작가를 만난 적이 없고, 스태브 생태공원을 가본 적은 없지만 그때에 우리는 동시대를 경험하고 있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금 새삼스럽게 예술의 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술 매체가 가져오는 감각의 확장을 몸소 체험했던 연주였다.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 낼수 있는 서정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강일_ 오디오 비주얼 라이브 퍼포먼스 中


작가는 연주된 소리를 시각화라는 새로운 감각의 확장으로 시도하였다. 이강일 작가는 두 지역의 소리 정보들이 오고 가는 프로세스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하여 화면에 보여주었다. 지도인 듯, 암호인 듯 그려지는 선들이 소리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 주었다. 사실 무엇인가가 시각화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매우 강력한 자극이다. 사람은 다른 감각 보다도 시각에 많이 의존하여 세상을 경험한다. 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감각 세계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이고 그것은 매우 낯선 경험일 것이다.

 우리가 박쥐가 되어보는 경험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런 경험은 이강일 작가의 데이터 비주얼 작업을 통해 공연의 마지막 순서에 감상할 수 있었다.



사운드 공연은 문화공간 양 지붕에 설치된 오디오 스트리머의 합주로 이어졌다. 누군가와의 합주가 아닌 기계장치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이강일 작가는 그 둘의 사운드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우리가 있는 실내의 공간으로 외부의 소리가 스며 들어온다. 고요한 밤의 속삭이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김지연 작가의 조용한 연주가 소리에 색을 더한다. 외부의 소리이지만 밤이어서 그런지, 제주도여서 그런지, 마치 누군가의 내면의, 심연의 소리들을 듣는 것 같다. 그리고 이강일 작가를 통해 보는 경험으로 드러나는 소리 체험은 마치 초음파를 통해 몸속의 어떤 대상을 더듬더듬 만져보는 것 같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어느 관객의 재채기 소리가 공기 중으로 터져 나왔고, 잠시 후, 그 소리는 스피커에서, 그리고 시각 데이터로 다시 재생산되었다. 관객들은 그런 우연적 개입에 당황하여 웃음이 났고, 기계장치는 우리의 웃음소리를 또다시 따라 불렀다.

이쯤에서 나는 이날 모인 관객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문화공간 양


문화공간 양은 작은 마을에 위치한 공간이다. 매우 실험적인 현대미술 전시를 하면서도 늘 지역과의 네트워크가 중심 주제이다. 지역 네트워크의 복원과 확장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이다. 그러기에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전공자, 관계자보다도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된다. 그러기에 이 날 모인 20명 남짓의 관객은 청소년 학생들부터 60대 이상의 주민들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었다. 마을로 두터운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마을 관객들은 어떤 실험적인 전시, 공연에도 늘 따뜻한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 명의 재채기에 의해 만들어진 해프닝은 이후 몇 번의 우연을 가장한 적극적인 소리 개입으로 작품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공간 안에 퍼진 소리에서는 작가의 소리와 관객의 소리 사이에 물리적인 벽을 만들 수 없었고, 기계장치는 모든 소리에 ‘공평하게’ 대했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작품의 완성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창작과 감상은 어떤 면에서는 같은 위상에 위치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모두를 관찰 혹은 목격하고 있는 저 기계장치는 그들 사이 어디 즈음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공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한 아주머니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이게 음악공연인 줄 몰랐어요, 나는 영상이 계속 나오길래 영상작업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영상도 계속 들여다보는데 뭘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계속 이게 뭘까 그러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얘길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게 음악공연인 거 같더라고요. 그럼 이게 장르가 뭐예요? 음악은 보통 장르가 있잖아요, 발라드 뭐 그런 거...”

작가님은 이에 아주 친절하고 자세히 자신들이 오늘 한 공연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우리는 이날 밤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관객들이 ‘소리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었던 어떤 날’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주의 작고 흥미로운 예술 탐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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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양: 제주시 거로남 6길 13

https://blog.naver.com/daybyday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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