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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ishin Jun 15. 2024

작가 읽기 (김승민)

2023년도 이아 레지던시 작가들의 작업 세계 들여다보기

 아티스트 레지던시라고 부르는 예술지원 서비스가 있다.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하여 창작을 돕는 지원 사업의 한 유형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글은 2023년도 이아 레지던시 공간에 입주하였던 6명의 작가의 이야기이다. 비록 레지던시는 끝났지만,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감사하게도 '문화공간 양'에서 모임 공간을 지원해 주어 한 달에 한 번 <작가 읽기> 만남을 갖고 있다.

 첫 번째 만남 (4월 8일)은 김승민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The Hunter,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93.9x390.9cm

  매일 같이 미디어에서는 재난에 대한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고, 눈앞 제주의 자연은 인간을 위해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이런 재난이 작가의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초창기 작가의 작품에는 재난 앞에 선 나약한 개인의 무력함과 분노에 대한 마음이 많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가 번개, 황폐해진 자연, 불, 새 등은 이 시기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는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개인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


  작가는 미디어에서 만들어내는 불안을 야기시키는 이미지들을 보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불안이 어떻게 생산되고 또 소비되는지 고민하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 쥐, 닭과 같은 인간과 가까이에 있던 동물들, 신화적 상징물, 무당 등의 도상들 역시 오래전부터 불안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그려져 왔다. 이런 이미지들은 문화적으로 공유되면서 공동체적인 결속력을 만들게 된다. 즉, 시대를 공감하는 공동체적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웃비, 2024, 캔버스에 아크릴, 162.2x130.3cm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어두운 밤에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와 충돌 직전 눈에 빛을 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야생동물의 모습처럼 작품 속 인물을 재난 속에서 눈에 흰빛을 내며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굳게 서 있는 모습에서는 무력함을 넘어선 어떤 의지 혹은 분노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빛나는 눈은 흐려지고 탁한 빛을 띤다. 강한 시선을 보내던 흰빛은 사라지고 그저 그 자리에 눈이 있었다는 흔적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눈 표현의 변화는 그림 속 인물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탁한 하얀 눈의 남자는 맹인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불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작가는 빛을 지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눈 빛이 사라짐은 그동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의 표현이 되고 있고 동시에 ‘알지 못한다’를 고백하는 작가의 자기 인식이 시작되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작가는 왜 알지 못하게 되었을까?


양과 나, 2022, 캔버스에 아크릴, 45.5x37.9cm


 불안에 대한 이미지 조각들은 모으고 화폭 위에 다시 그려내면서 작가는 자신의 불안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에 경험하게 되는 죽음. 그것은 인간이 태생부터 갖고 있던 공포이고 작가 역시 그런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미술은 죽음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물이고 또한 현재 내가 살아 있음을 반증할 수 있는 실존적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불안을 견디기 위해 어떠한 믿음이 필요하다면 작가는 미술이 내가 지금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과 위안이 되는 종교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끝. 죽음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작가는 붓을 든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노를 젓는 것처럼 캔버스 위해서 붓이라는 노를 젓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의 치열함으로 인해 작가의 삶은 물론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죽음의 허무를 극복하게 되는 것 같다. 

붉은 밤의 유령들,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93.9x390.9cm





 김승민작가의 발표가 끝나고 같이 경청하였던 참여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를 간추려서 글에 보태보고자 한다.

Q.

 내가 넘어설 수 없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의 부분이 있는 거 같다. 그 부분이 나에게 무기력함을 주기도 한다. 나는 왜 여기서 무기력함을 느끼는가를 질문하면서 작업을 하게 된다. 그 감각을 해결하는 방식은 그 감각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가를 질문하면서,. 어디에 영향을 받는지, 그 요소들을 격파하면서 작업을 진행. 나에게 주어지는 의무감들이 나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지점을 작업에서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승민작가님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나는 거기에서 어떤 감각을 받고 있는지 고민을 하는 부분이 맞닿아있다.

궁금한 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도상들. 닭이나 그런 이미지들, 신화적인 이미지들이 흥미롭다. 과거에 등장하는 상징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상징과의 연결성이 궁금하다.

A.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환타지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건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인위적인 느낌이 있어서, 직접 체험한 것들을 위주로 이미지를 사용하고자 한다. 

Q.

작가님의 장점은 스토리텔링인데. 그걸 버릴 수 없지 않을까?

A.

내가 처음에 예술이 뭘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에 들었던 어떤 노래의 가사가 있는데, 그 가사를 들으면서 예술은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Q.

이야기를 왜 내려놓으려고 하나요?

A.

 이야기를 너무 꾸역꾸역 억지로 집어넣어서 실패한 작업을 만들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관습적인 이미지 배치라는 생각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거에 고민이 된다. 

Q.

 본인만이 갖고 있는 형식적인 특징. 매력을 갖고 있는데,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 스스로 평가하지 않고, 고민은 하되,  그런 고민을 찾아 하는 게 작가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작가님의 작품에서의 안광은 주요한 특징. 검은 눈, 흰 눈의 차이는 그림 속 인물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한다. 

그림 속에는 꾸준히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눈먼 사람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작업 세계가 구분되는 것 같다. 그 구분점은 작가가 작품에서 ‘알지 못한다’는 솔직한 표현의 시작인 것 같다.

Q.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회화에서 중요한 일,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회화가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작업이 많이 나오지만 이야기는 여전히 회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승민작가님의 작업에서의 이야기는 그런 부분에서 강점이 된다.

Q.

 저의 작업 방식과 상반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된 태도, 작업에 대한 작가적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작업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승민작가님은 작업에서 감정을 그대로 노출하나요? 아니면 통제하나요?

A.

작품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다.

Q.

작업을 하면서 불안에 대한 감정이 해소되는가?

A.

 해소된다기보다는 불안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거 같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특정 사건에 대한 불안 공포였지만 지금은 죽음 자체, 생과 사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으로 넘어간 것 같다.

Q.

닭의 의미는?

A.

 가축, 식용하는 동물. 인간과 끝까지 가는 생명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태계 중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이 있는 거 같다.

Q.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떻게 선택되나?

A.

보편적인 사람을 그리는 데, 그게 더 감정이입이 된다.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작가 읽기>는 매달 한번 씩 '문화공간 양'에서 진행됩니다. 참석을 희망하는 시는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김승민작가님을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여기로! -> @seungmin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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