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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원인 Jun 30. 2017

두 세계

민.원.상.담.실








보통 책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회의를 거친 후 작가를 선정해 원고를 청탁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을의 바람보다 항상 적게 책정되는 원고료 문제로 수차례 전화통화를 나누고 큰아이가 아직 돌도 안 지났다며 한바탕 신파극을 연출한 뒤 그새 마음이라도 변할까 꾹꾹 도장을 눌러 찍습니다. 


힘겨운 밀땅(?)을 끝내고 책의 분위기와 어울릴 일러스트를 찾아 물어물어 인맥을 동원하거나, 며칠 동안 발품을 팔아 찾아낸 삽화가와도 인세를 몇 퍼센트로 할 건지 신경전을 벌이다 다음에는 꼭 섭섭지 않게 드리리다, 기약 없는 약속을 합니다. 디자이너와 서점에 나가 유사한 책들의 판형과 서체를 참고하여 대충 큰 틀을 잡아놓으면, 야속하게도 마감을 훌쩍 넘겨 도착하는 함량 미달의 원고들. 


자장면 시켜드릴까요? 


먼저 퇴근하는 디자이너가 원고와 씨름하느라 끙끙대는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빼곡한 글자들은 꿈틀거리며 시야에서 벗어납니다. 늦은 밤, 취객들과 함께 퇴근하는 동안에도 영업사원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책의 제목과 몇 가지 표지 시안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납덩이처럼 무겁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교정본을 들고 사장님을 찾아뵙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본 사장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마음에 드나? 

이층 편집부의 계단을 오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짬뽕으로 할까? 


책을 만들 때는 독자들을 상상하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지만 정작 늘 대면했던 건 사장님 한분뿐. 몇 달 동안 힘들게 만든 책이 대형문고나 전국의 학교 도서관에 꽂혀있어도 왠지 사장님 한 분의 세계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유명 출판사 팀장으로 발탁돼 이직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난 상상이 안 돼. 애들하고 태권도한다는 게. 

한바탕 뛰느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움과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단언컨대 아이들과 부대끼는 이 세계의 공기가 그쪽보다 훨씬 청량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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