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서른에게
열세 살 딸이 말했다. “엄마, 나 관상 한 번 봐볼까?”
늦은 저녁 전주 한옥마을을 여행 중이었다. 곳곳에 관상, 사주, 손금 등등을 봐주는 분들이 있었다. 딸은 관상과 사주가 뭐냐고 물었다. 대충 설명해줬더니 오천원이면 관상을 볼 수 있다는 한 사기꾼(?)이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이것도 경험이니’ 하는 생각에 딸의 호기심을 채워주기로 했다.
그 사기꾼(?)은 딸의 생년월일시와 이름을 묻더니 책을 뒤적거렸다. 딸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 사기꾼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소 딸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수학에 소질을 보이겠다’, ‘이과쪽으로 가면 성공하겠다’, ‘공부보다 책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책을 들고 있겠다’, ‘돈을 펑펑 쓰는 경향이 있어 돈을 모으지 못하겠다’, ‘신경이 예민하다’, ‘부모복이 좋다’ 등등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이야기를 약 십분간 늘어놓더니 돈 2만원을 달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따지고 대꾸하고 하는 게 귀찮아 2만원을 기부(?)하고 그 자리를 얼른 떠났다. 웃음이 났다.
“딸, 어땠어?”
“뭐야, 난 오천원이면 될 줄 알았는데 왜 2만원을 내래. 그리고 나랑 완전 다른데?! 난 수학도 싫어하고 책 읽는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은데? 이과가 뭐야? 그거 수학이랑 과학쪽 아니야? 나 완전 극혐인데 그런 과목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좋은데! 그리고 나는 돈 잘 안쓰는데?”
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절로 웃음이 났다.
“엄마가 듣기에도 이건 뭔가 하나도 안맞다 싶었어. 하하하. 엄마는 너가 신경이 예민하다는 말에 빵터졌어. 하하하... 우리 딸이 신경이 예민하다니.. 하하하하... 깨달은 건 있어? 이런 경험으로 뭘 배운 게 있어야 하잖아”
“뭘 배워, 다 사기꾼...”
딸 아이는 그들이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나 보다. 나 또한 그 아저씨에게 얼척 없는 2만원을 안겨주며 집에 가다 선술집에 들러 소주 한 잔 사먹겠구나... 뭐 그 정도는 내가 기분 좋게 선물했다고 치자 싶었다.
30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많아 사적인 자리에서는 별명처럼 성에 이름을 붙여 ‘서언니’라고 물렀다. 서로 존칭 하는 사이였지만 일하면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해서인지 서로 간에 전우애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서언니는 점을 좋아했다. 그녀가 점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힘든 경험을 한 탓일 것이다. 그녀는 집안에 빚이 많아 퇴근 후 밤 1시까지 접시닦이를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들고 다니는 가방도 크고 무거웠는데, 어느 날 “도대체 왜 그렇게 가방이 크고 무거워요. 좀 가볍게 다녀요. 어깨 떨어져요.”라고 말했더니 서언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게 우리 집 전 재산이에요. 통장이랑 도장이랑 각종 문서들... 이거 내가 안들고 다니면 엄마가 언제 어떻게 다 날려먹을 지 몰라요. 내가 다 들고 다녀야 해...”
서언니는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늘 호쾌한 웃음을 달고 다녀 나는 그녀만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녀에게 그렇게 힘든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 그녀는 종종 나에게 점집을 같이 가자고 졸랐다. 특히 신점을 보는 집에 갈 때는 더욱 더 나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왠지 무섭다는 게 이유였다.
점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평소 직업병으로 인해 굉장한 호기심이 솟구쳐 올랐다. 점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점쟁이들은 주로 어떤 말을 하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서언니와 여기저기 점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맹인 점쟁이, 동자귀신이 씌였다는 점쟁이, 교회 아래에서 양장점을 하는 점쟁이, 할머니 점쟁이 등등 자칭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부지런히 만나보았다. 서언니의 종용에 나 또한 복채를 쥐어주며 점을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웃음이 나곤 했다. 신을 불러오는 의식(?)이 꽤나 코믹한 점쟁이도 있었고, ‘펜을 쥐는 일을 하겠구만’이라는 뻔하디 뻔한 말을 하는 점쟁이도 있었다. ‘아니 펜을 안쥐는 일은 도대체 뭐지?’
기억에 남는 한 점쟁이는 이러했다.
“인천에서 온 아릿다운 아가씨~ 아가씨의 미래가 궁금하오니~ 부디 부디 좋은 말씀 내려 주소서~~”
마치 노래를 하듯 음율을 담은 그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을 듣다가 나는 정말로 ‘빵’터지는 줄 알았다. 웃음을 간신히 참고 진지하게 점쟁이의 말을 들었지만 그리 썩 용해보이진 않았다.
반면 서언니는 사뭇 진지했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내 뒤로 한 남자가 보인데. 그 남자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에 방해를 놓는다네. 근데 점쟁이가 그 남자를 보더니 나한테 ‘혹시 집안에 불의의 사고로 단명한 사람이 있냐’고 묻는거야. 옛날에 외삼촌이 나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그 얘길 했더니, 바로 그 사람이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나를 괴롭힌다는거야. 정말 용하지 않아?”
글쎄.... ‘대한민국 전체 집안들을 이 잡듯이 뒤지면 조상 중에 단명한 사람이 한 명 정도 쯤은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점쟁이를 만나러 다니는 것이 그야말로 시간낭비 돈낭비라는 걸 절실히 깨닫고 서언니에게도 이제 그만 다니고 생업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쾌한 서언니는 더 용한 점쟁이가 있다면 대한민국 끝까지라도 갈 것 같은 의지를 불태우며 그 후로도 종종 점을 보러 다녔다.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고등학생 시절 사주나 관상에 관심이 많았다. 사주를 보려면 우선 주역을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하는데 이게 영 어려웠다. 대신 관상 관련 책을 사서 나름 진지하게 공부하기도 했다. 철학과에 들어가면 사주나 관상 등을 더 심도 있게 배울 줄 알았다. 멍청했다. 대학 입학 후 배운 것은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스피노자, 니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왠지 따분할 것 같은 철학이론들이었다.
홀로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 있는 관상, 수상, 족상 관련 책들을 한아름 빌려 나름 탐독에 들어갔다. 특히 관상은 나의 흥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날 새는 줄 모르고 책을 파고들기도 했다. 그런데 한창을 공부하던 중 문제가 생겼다. 이상한 ‘증후군’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것이다. 관상을 공부할수록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관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심도 있게 공부한 것도 아닌데 사람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문제다 싶었다. 그 후로 관련 공부를 딱 끊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사람을 처음 만나면 관상을 뜯어보고 있는 습관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마흔이 넘어 생각해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나 싶다. 물론 사주나 관상, 수상 따위의 것들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경험치에 따른 일종의 확률이라 맞을 수도 있다. 사람의 성향을 대략 맞추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사주가나 점쟁이는 사실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점쟁이의 ‘말’이나 사주가의 ‘말’은 맞을 수도 있다. 말은 힘이 있어서 믿는 대로 이뤄지기 때문인데, 적어도 점쟁이나 사주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사람과 ‘말’을 듣는 사람. 게다가 용하다는 점쟁이나 사주가가 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거의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다.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대로 될 확률은 꽤 높아진다.
관상이나 수상 또한 그 해석은 ‘말’로 이뤄지고 입밖으로 말을 뱉는 이상 그 말은 힘을 갖게 되고, 사람들의 믿음이 더해지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니 점쟁이나 사주가가 용한 것이 아니라 ‘말의 힘’이 용하다고 바꿔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주나 관상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인류는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100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달라졌으며, 개인의 삶 또한 달라졌다. 과거 부락이나 촌락을 이뤄 살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개인이 모여 이룬 대도시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일어난다. 한 촌락이나 부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큰 변화 없이 살던 옛 시대에는 사주나 관상이 설득력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1%의 변수가 100%의 변화를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사주나 관상이 현대에 이르러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갑툭튀’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1%의 변수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사주나 관상 분야 뛰어난 전문가 선생님들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주나 관상을 아예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내 심지가 굳지 않은 이상 사주나 관상을 보았을 때 그 말들을 믿고 따르게 될 것 같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주가나 점쟁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믿는 대신,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믿기로 결정했다. 나를 믿고 내 자신이 하는 말에 힘을 실어 그것이 실현되도록 만드는 내 삶의 결정권. 나는 그것을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더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전주한옥 마을을 거닐며 나는 딸에게 삶의 결정권을 누군가에게 묻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고, 말하고, 믿으라고 했다. 그리고 2만원의 수업료를 냈으니 앞으로는 사주나 관상 따위를 보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네가 그리고 싶은 미래를 스스로 그리고, 그것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력하게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라고 말했다. 이제 막 의젓해지기 시작한 열 세 살 프리사춘기 딸은 ‘응!’하고 짧은 대답을 했다.
그나저나 그 점쟁이 아저씨는 가게 문 닫기 전 웬 모녀에게 거저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2만원으로 집에 가는 길에 소주 한 잔 걸치셨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