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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호퍼 Apr 07. 2021

무소속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

옥타곤까지 진출한 버니 샌더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조 바이든이나 도널드 트럼프만큼이나 핫(hot)한 미국의 정치인이다. 1964년 시카고대 정치학과 졸업 후, 1971년 군소 진보정당인 자유연합당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과 1976년에 자유연합당 간판으로 연방 상원의원 선거와 주지사 선거에 각각 2차례씩 도전했지만 모두 3위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1981년엔 무소속으로 벌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단 10표 차로 당선된 이후 내리 4선을 했고, 1991년부터 16년 동안 8차례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2016년과 2020년 두 번의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예비선거에 출마했고, 2016년에는 민주당 전당대회 직전까지 힐러리 클린턴과 박빙의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무소속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

샌더스는 1979년 이후 40년 넘게 줄곧 무소속을 유지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원이 아니면서도 어떻게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2020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무소속을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 상원 홈페이지에는 버니 샌더스가 무소속(independent)으로 소개되어 있다. (상원 홈페이지 갈무리. 2021. 4. 6)

이유는 헌법에 있다. 미국 헌법에는 정당에 관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에 관한 규정이 없으니 당연히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나 전당대회에 관한 규정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와 관련해서는 각 주의 선거법이 적용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50개의 선거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샌더스의 민주당 예비선거 참가 자격에 관한 소송을 주 법원에 제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쨌든, 샌더스는 무소속이면서 어떻게 민주당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투표권이나 후보 자격에 따로 정당등록 절차를 두고 있지 않는 주의 경우는 단지 "△△당의 후보로 예비선거에 참여하겠다"는 '후보선언'만 있으면 후보 자격이 부여된다. 샌더스의 출신 주인 버몬트가 그렇다. 반면, 정당등록 용지에 서명을 요구하는 주(뉴햄프셔)도 있고, 주 정당위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 주(뉴욕)도 있다.


실제로, 2016년 민주당 예비선거 과정에서 뉴햄프셔 투표법위원회에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된 적이 있다. 하지만, 샌더스는 뉴햄프셔에서 민주당의 정당등록 용지에 이미 서명을 했고, 동시에 "당연히, 나는 민주당원이다(Of course, I am a Democrat)"라고 공식 선언을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뉴욕 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샌더스의 민주당 후보 자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 2020년 예비선거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모든 후보들에게 요구한 대통령 후보 서약서

2020년에도 다시 한번 샌더스의 후보 자격이 문제가 되었다. 플로리다 주민 2명이 "무소속인 샌더스 상원의원은 당적이 없기 때문에 민주당 예비선거에 참여해선 안된다"며 카운티 순회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모든 후보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서를 작성하여 의장에게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샌더스는 이 서약서에 자필로 서명을 했다.

"나는 민주당원입니다. 민주당의 후보 지명을 수락하고 민주당으로 출마할 것이며, 만약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민주당원으로 봉직할 것입니다."           


▲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옥타곤까지 진출한 샌더스                

정치인 샌더스가 패션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일이 있었다. 자신의 경쟁자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2021. 1. 20)에서였다. 샌더스는 취임식장에 캐주얼한 점퍼를 입고 손뜨개 장갑을 낀 채 참석했는데, 단색 양복을 격조 있게 차려입은 다른 참석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여기에 파란색 마스크를 눈 밑까지 한껏 올리고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샌더스의 모습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취임식 패션이 화제가 된 후, <CBS NEWS>에 출연한 샌더스 의원은 "버몬트 사람들은 따뜻하게 입어요. 우리는 추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패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죠. 따뜻하게 고 싶었을 뿐이에요"라고 유쾌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샌더스에게 털장갑을 선물한 버몬트의 초등학교 교사 제니퍼 엘리스도 덩달아 유명인사가 됐다. 엘리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폐플라스틱과 스웨터 등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라고 밝혔고, 곧바로  완구회사와 대량생산 계약을 맺기도 했다.

▲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털장갑을 선물한 제니퍼 엘리스의 트윗(출처: 트위터 캡처)


샌더스의 취임식 패션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선거운동 홈페이지(People For Bernie)를 통해 취임식 패션을 패러디한 티셔츠, 스웨터 등 캐릭터 상품을 판매해서 불과 닷새 만에 180만 달러의 수익금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전 세계의 네티즌은 샌더스의 옹고집 캐릭터를 주제로 수십만 개의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샌더스 밈(meme)' 이라고도 불리는 합성사진 속에서 샌더스는 한국까지 들어와 한국산 김치를 응원하기도 하고, 옥타곤에 진출하여 코너 맥그리거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심지어 아마존은 샌더스를 아마존 페이의 광고 모델로 용하기도 했다.

▲ 한국 김치를 기다리고 있는 샌더스(맨 왼쪽), 옥타곤에 진출한 샌더스(가운데), 아마존 페이 광고모델(맨 오른쪽)

아쉽게도,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샌더스 후보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샌더스 스스로 "대선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it is very, very unlikely that I'll be running for president ever again)"고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2020. 5. 11)에서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샌더스는 2024년 상원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해 후보 등록서류를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제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참 고>

'밈(meme)'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출간한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다. 밈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口傳)을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문화적 현상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던 것이, 최근 들어 ‘재미와 보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느슨한 연대를 즐기는 세대와 기술(인터넷)의 발달이 만나 형성된 일종의 놀이문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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