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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bj Dec 10. 2022

[5] 기자 생활 심폐 소생기

취재하라, 한 번도 사표내지 않은 것처럼

  코끝이 아리는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오전 시간대의 서초역 부근. 오랜만이면서도 익숙하다. 4년 전인 19년도 초 수습기자로 하리꼬미를 보낸 곳이 바로 서초경찰서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몰라 시키는 대로 하며 이렇게 배우는 거겠지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의욕 넘쳤던 시절. 잘 몰라서 좋았던 시절. 법조라는 새로운 출입처로 옮긴지 첫 주간 자주 떠올린 과거다. 4년전 이맘때와, 비슷한 처지.


  출입처를 옮기게 됐다.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아침 6시 20분쯤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 베고 있던 베개를 등에 받치고 침대 옆 벽에 기대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 네이버 뉴스 – 사회 탭 – 언론사별 뉴스 탭에 들어가. 신문 탭의 9개 조간 언론사의 법조 뉴스 기사를 모니터링한다.


  요즘의 이슈는 단연 ‘대장동 일당’의 구속기한 만료로 인한 줄출소. 저번 달 출소한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에 이어 저번 주에는 남욱 변호사, 그리고 이번주 수요일에는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까지 모두 1년여 만에 구치소 밖 세상으로 나왔다.


  전날 법정에서 오간 피고인들의 발언을 두고 같은 발언에도 언론사별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고 바라보는 논조가 다르다. 조선과 동아는 확연히 이재명을 이미 대장동의 ‘몸통’으로 단정지어둔 듯하다. 반면 경향과 한겨레는 검찰이 이런 수사를 하고 있긴 한데, 그것과 연관된 윤석열 대통령과 연관된 박영수 전 특검이 포함된 ‘50억 클럽’에 대한 조사는 왜 지지부진한가’를 꼭 걸고 넘어지는 식이다. 이 클럽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연관된 박영수 전 특검이 포함돼 있다.     


  배움이 부족해 기사마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얘랑 얘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지? 식의 머릿 속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나가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작은 정신적 F45랄까. 몇 번은 기사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자체를 그때그때 전부 소화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그러기에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이제는 일단 제목을 복붙하고 그 외 더 눈길을 끄는 사항이 있는지 훑는다.     


  단독기사(다른 언론사의 특종 기사)는 공보관 (검찰에서 언론 대응 창구)에게 전화를 해 크로스체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구에게 전화를 해본 적이 없어 숨을 몇 번 고르고, 할 질문을 정리하고 나서야 번호를 누른다.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대부분. 하지만 안 알려준다는 걸 어쩌겠나 싶다. 이 시간에 나 외의 숱한 기자들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그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같은 출입처 동기에게 물어보니 ‘그게 지 일인데 뭐’라는 무미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그랭.. 나는 '그러게'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인간이긴 하다.


  제목과 확인 내용을 정리해 부서 단톡방에 올리고 나면 보통 7시 반쯤. 샤워를 하러간다. 다 씻고 나오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단백질 번을 먹고 8시 전후로 집을 나선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번 주 5번의 출근 중 2번은 택시를 탔다. 예고없이 길어지는 버스 배차 간격은 P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이런 건 내 계획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국민 출근 시간’ 대한민국 서울의 도로 정체 풍경도 4년 남짓의 직장생활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일. 아직 적응이 필요하다. 재사회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내일은 좀 더 일찍 나와야지 다짐해보지만 다음날의 나를 그리 굳게 믿진 않는다. 자주 약속을 저버리기도 하는 인간이라서, 그런 걔를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때론 실망할지라도.. 이상하긴 한데 나쁜 애는 아니다.     


  아직은 통근시간 버스 안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시간을 보내진 못하고 있다.  평일 아침 각성한채로 확보되는 정기적인 시간이 통근 시간이렸다,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다. 이 시간엔 이런 걸 해야지, 그 시간이 오기 전 상상해보는 건 분명 쉬웠는데. 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에 대해선 포기도 빨라진다. 그렇다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것이 다행아닌가, 위안 삼으며 대부분을 선 채로 멍때리며 검찰청으로 향한다.


요즘 꽂힌 노래는 검정치마의 난 아니에요-다.


  좀 더 적응되면 여유가 생기고, 마음의 여유와 함께 버스에도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시간에 조금 더 일찍 나올 수 있겠지,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이따금씩 옆사람들과 부딪혀 가며 어느새 서울고등검찰청역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다.     


  이번주의 업무를 되돌아보면 크게 5가지로 나뉘었다. 1. 조간 신문 / 저녁 방송 뉴스 모니터링, 2. 재판 워딩 대타 들어가기, 3. 화,목마다의 차장검사 티타임 워딩, 4. 수사 상황 진척 및 대법원, 헌재 판결 기사 집배신 및 아침용 작성하기 5. 재판 출석하는 피고인들 만일의 상황 대비해 따라 붙으며 팔로우하기다.

  위는 선배들의 지시 내용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한국사능력시험을 벼락치기하는 수험생의 기분으로 위례신도시개발사업부터 시작된 대장동 일당의 만행에 대한 대 역사를 공부했다.

 ㄱㄴㄷ순으로 인명 사전을 만들었다. 이 사람의 전적과 현재 논란, 발언에 대해 정리했다. 애쓰고 있다 나..


  평소 관심없던 내용인데도 꽤 재미있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워낙 모르던 내용이라 그런가. 모르던 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 모르던 언어를 처음 배우는 기분이랄까. 장안의 베스트셀러인 비리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니 정말로, 영화에서처럼 일식집에서 현금이 든 쇼핑백을 들고 오고가는 검사들이 있구나. (한 피고인의 법정 증언 전언 진술 내용이었다.)  배경지식을 조금씩 쌓고 보니 그간 읽히지 않던 기사들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읽혔다.  하지만 단기간 주입량이 많아 보고 까먹고 다시 보기 일쑨데,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처럼 언젠가 입도 트일까? 아직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랄 게 없는 수험생이다. 열심히 해야지     


  저번 부서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던 ‘체계’라는 소중한 친구의 존재도 발견했다. 이미 시켜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해주고, 내 책임을 명확히 구분지어 주는 데에 감사했다. 말투나 오락가락 성의없는 지시로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사람도 아직은 없다. 누군가에겐 꽤 당연할 걸 바라던 내가 조금 안쓰러우면서도 우스웠다. 기대하지 않던 배려와 합리성에 익숙해지다 보면, 불합리하게 성과를 강요당할 때보다도 더 열심히 해 성과를 내고 싶어진다,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나도 언젠가 더 높은 자리에서 누군가를 부리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이 감각을 잊지 않아야지.     


  모두 어느 하나 내가 이 곳을 출입하는 기자가 아니었다면 평생 할 기회도, 할 생각도 들지 않았을 일이었다는 점도 감사하다. 내가 언제 조국의 뒤통수를 보며 법정증언 내용을 전체 언론사에 공유하고, 김만배 출소 다음날 엘리베이터를 탈 뻔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차장검사들의 브리핑을 직접 보겠는가. 그들이 나보다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쉬이 볼 수 없는 비일상적 풍경이라는 점에서 재밌었다는 뜻이다. 역사의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한다는 것. 모두가 궁금해하는 걸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꽤 있다는 것. 분명 매력적인 부분이 있는 직업이다.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것을 따라다니며 살고 싶다.   


  놓아버릴 뻔했던 내 28살 작은 성취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붙잡아보고 있다. 그 때의 스스로에 대한 예의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인연을 확인해보는 과정으로 삼고 싶다. 사실 이미 이 부서를 경험해본 혹자들에 따르면 단독 등의 주목받을 만한 기사를 내는 일은 어렵고, 대부분 이미 밝혀지는 상황을 따라가는 식이라 현타가 올때도 분명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미리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걱정하지 않되 다른 길도 여럿 훑어보며 살 것이다.


  중요한 건 일주일차건 아직은 재밌다는 것.  박차고 나오고자 했던 부서에서의 생활과 전혀 다른 일과를 보내고 있다는 것. 새로운 경험을 쌓고 있다는 것. 한 달 후 적응에 실패해 퇴사하더라도, 회사의 팀 이동 제안을 승낙했던 건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결정을 내렸던 내 자신이 좋다. 6시 반에 일어나 운동도 못하고 만원 버스에 몸을 싣기도 하고, 9시반에 퇴근해서 13시간만에 집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내가 세상과 내 자신에 하등 필요없는 일을 오후 5시 반까지 하고 체념하던 때보단 살아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난 내가 알던 것보다 워라벨 만큼 일에서의 보람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누누이 생각했지만 보람이 없으려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견딜 수 있다)          


  하루하루에 대해 이렇게 뒤돌아보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거나 익숙해지지 않아서일거다. 어디서 사람은 서투를 땐 최선을 다해서 하고, 익숙해지면 하던대로 힘을 빼고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내가 원하던 대로 이뤄진 인생 첫 인사인만큼 너무 빨리 타성에 젖기보다 할 수 있는대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      




  일주일 내내 6시 반 전에 일어나 10시 이후에 모니터를 마치는 반복의 연속이지만 오늘이 전날과 같은 하루였다고 쉬이 말할 수 없는 건 얼마 전 친구가 추천해준 책 ‘패터슨’ 덕분이기도 하다.


오랜만이야 서초동..

 월요일 첫날엔 횡단보도에서 별안간 횡단보도 표시가 잘 안보인다면서 민생에 관심 없는 경찰을 욕하고 윤석열과 검찰을 칭찬하다 사라진 할아버지가 있었고, 태어나서 처음 대화해보는 법조 팀장 선배와의 어색한 점심자리가 있었다. 2년 전 마지막으로 본 타사 기자와 커피도 마셨다.


첨가본 고검 본실의 휴게장소

  화요일엔 법조반장 선배와 첫 식사를 했다. 법무부 대변인과의 팀 약속이었는데, 약속이 깨지면서 같은 팀 선후배들과 사실상 처음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나눴다. 법조반장 선배와도 첫 겸상(?) 이었다. 맛있는 꽃게탕과 함께 소주 한 병을 깠다. 인생 첫 차장검사 티타임도 다녀왔다. 내 속기를 팀 전체에서 공유한다는 사실에 바짝 긴장했고, 쏟아지는 타 언론사 기자들의 질문에 존경심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질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사실의 50% 이상이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수습 그 자체다. 하지만 처음은 한 번 뿐이라 언젠가는 이럴 때도 있었지 웃으며 추억하는 날도 오겠지.


이 목걸이가 있어야 재판에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수요일에는 법원 인원이 부족해 법원으로 출근했다. 대장동 재판이 있어, 워딩 풀은 아니지만 참관해 남욱과 김만배, 그들 변호인의 모습을 지켜봤다. 신기했다. 6번 출구로 523호로 향했고, 중앙지법 6번출구와 4-1번 출구가 어딘지도 처음 알았다. 법원 기자실도 처음 갔다.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닥 정면으로 마주할 일은 없었다.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에 있던 압수수색 장소


 나머지 시간 수험생 모드로 공부하던 중 경기 군포의 물류센터를 압수수색 중이라는 기사가 뜨고, 7시 30분까지 회사 차를 기다려 선배와 합승해 군포로 향했다. 고등학교 주변에 오랜만에 가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이 무상하다. 군포 당정동에서 자취하던 19살의 나. 그런 생각을 하다 외경을 스케치하고 집에 오니 9시가 넘었다. 쓰러졌다.

 

퇴근 후 먹은 첫 끼 치킨

 목요일에는 점심에는 너무 피곤해서 밥을 먹는 대신 휴게실에서 한 시간 넘게 자다, 옆 침대 아재의 천지를 개벽할만한 코골이에 놀란 귀로 눈을 떠 티타임에 다녀왔다. 20분 쯤 일찍 도착해서 바라보고 있는 소회의실에는 역대 검사장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사진이 액자 안에 고이 늘어서 있었는데, 여성은 한 명도 없네, 뭐 그런걸 발견하며 차장 검사를 기다렸다. 이번 차장검사는 화요일과는 다른 분. ‘우리는 알지만 너네는 안 알려주지롱’ 식의 기싸움이 재밌어서 오늘까지도 일단 질문하기보다 관전했다. 곧 입이 트이겠죠.. 오후 재판 워딩 풀이 취소돼 좋아하던 중 집배신 3개와 아침용 한 개를 쓰라는 지시를 받고, 사실상 법조 와서 첫 방송용 리포트를 작성했다. 퇴근 후 먹은 맥주와 치킨 맛이 감동이라 눈물이 날 뻔 했다. 첫 끼였다. 집에 와서 월드컵을 보다가 전반전 이후엔 잠들었다.


예쁜 걸 보면 자주 벅차오르는 나


  금요일에는 동기와 맛있는 돈가스를 먹고, 단풍과 낙엽이 너무 예쁜 법원-검찰청 사잇길을 걸었다. 형형색색의 이파리들 사이를 업무시간 중에 걷는 내 인생이 순간 내 생각만큼 구리지는 않구나, 그런 생각으로 행복해졌다. 몇 번을 발걸음을 멈추며 가을 나들이 나온 사람 마냥 사진에 담았다. 오후엔 인생 첫 재판 워딩 풀에 들어갔다. 예로부터 타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지만 가는 귀가 먹어 슬픈 짐승으로서 제발 너무 부끄럽게 잘못 들어 큰 실수를 하지만 않길 바라며 흐르는 앞머리를 귀에 고쳐 끼웠다. 조국의 증인 신문과 검사, 피고인의 변호인 발언들을 1시간 간 타이핑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기록할 날도, 이 귀찮음을 견딜 나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돌아보며 긴장한 날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팀 톡방에 초대받은 첫날, 새로 초대된 인원이 통상 하는 말투로 열심히 하겠다는 메시지로 인사를 남겼다. 한 말을 지키면서 사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통상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건 쉽다. 어려워서 값지다. 값진 사람이 되어야지.

  그걸로 이번 주는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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