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bj Jan 10. 2023

젊은 날인데 젊음을 알겠는 밤

설레는 젊음으로 상상하는 멋진 주름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낯선 노인들을 오래 마주할  때면 가끔 무례하게도 그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들도 지금의 나이가 처음일 텐데. 어느 시절에는 갓 태어난 아기였다가 중고등학생이었다가 사회 초년생이었다가 신인류 취급을 받는 신세대였기도 하다가.

삶의 어느 순간에 거울보고, 아이렇게 됐구나. 하셨겠지


새파랗게 어렸을 때는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인 줄로 알았다.

연극에서 냅다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배우처럼. 어린아이 젊은 시절 배역을 맡아봤어야만 노인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 눈앞 그대로의 모습이지 않은 존재들의 과거를 그려보는 건 꽤 적극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했고 난 그게 없었다. 건방지게 가 평생 맡을 일이 없는 배역인 줄로만 알고. 아예 인간이라는 생물의 생장과 노화에 대한 생각에 내 시간을 1초도 소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도가 적절하겠다.


30대가 되며 내가 언젠가는 이 정신과 기억을 안고, 가끔 나이를 잊고 깝죽거리며 말로만 듣던 '동네의 소녀 같으신 할머니'이 되겠구나라는 상상을 가끔 한다. 낯선 노인을 보며 젊은 시절을 상상하듯이 젊고 팽팽한 모습의 익숙한 나의 얼굴 위에 그들의 낯선 주름기를 덧입혀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문구를 떠올리며 에너지 샘솟기도 한다.

젊음이 좋은 것이긴 한지 주름져갈 내 미래가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스쳐간  '내가 10년 전보다  행복해진 것 같다'는 감각이었다.


나는 10년 전보다 내 자신이 어떨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느끼는지, 어떤 상황을 최소화하고 싶은지, 어떤 냄새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느 부분에 관대하고 어떤 걸 용서할 수 없는지 훨씬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내 자신과 더 친해졌다. 그에게 필요한 걸 더 눈치껏 제공해줄 수 있는 센스도 생겼. 날 그렇게 만들어준 당시엔 맘아팠을지라도 지금은 떠들어댈 수 있는 이야기들도 한가득이다.


사회가 '늙음'에 시한부 사형 선고와도 같은 비극의 이미지를 주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인생이 시한부인 건 같은데. 젊은 사람이라고 평생 젊 것이 아닌데, 남은 날이 적으면 더 안타까울 일인가?

어떤 소풍은 가끔 마무리해 짐챙겨 떠날 무렵이 되고 나서야, 끝날 때가 되어서야 아 정말 재밌었다 곱씹을 거리가 있내가 이런 걸 재밌어하는 구나 깨달을 기회가 있다. 별 일이 덜 일어났을 땐 그땐 그랬지 낄낄거 이야깃거리가 적으니까.


나이 먹는다는 건 어쩌면 내가 엄선한 내 결의 사람들과 함께 내 취향의 여러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같다.

추억이란 게 본디 시간이 흐르지 않고는 쌓일 수가 없어서, 30년의 시간이 내게 가져다준 기억들이 밉다기보다는 고맙다. 피부에 줄어드는 수분만큼 날 울고 웃게 하는 이야기들은 늘어가리라

울게 하는 것들도 분명 무엇인가를 내 손에 마음에 남기리라


위처 나와 남의 입체적인 모습을 상상해 본다는 것 자체부터 무엇인가를 현재 눈에 비친 모습만으로 쉬이 판단하기를 유보하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기도 해서, 이것부터도 나이 먹으며 갖게 된 긍정적인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93년생, 91년생 두 딸을 둔 우리 엄마는 64년생. 스물여덟에 언니를 갖고 서른에 나를 가졌으니 올해로 나는 1993년도 딸 둘이 생겼던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네


엄마는 요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선글라스를 쓰신다. 눈주름이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인데,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 서른의 애 둘 젊줌마 엄마가 아직 엄마 본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게 보인다. 이것도 2053년쯤 내 미래겠지,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30년간 나보다 많이 눈으로 웃으시며 생긴 귀여운 타투라고 언젠가 엄마를 유쾌하게 위로해 드려야지. 엄마가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도 활짝 웃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실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나도 그 나이 돼서 말처럼 쉽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찰나의 짧은 젊음만 한참 그리워하기보다 순간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야지.

장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우울 요소 중 하나가 주변 이들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라 한다.

나는 아직 함께 무르익어갈 수 있는 귀여운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천천히 태어나며 마음만은 주름지지 않은 노인이 될 것이다. 만 29세가 하기엔 좀 이른 다짐이긴 한데..

매거진의 이전글 쉽게 말할 수 없는 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