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다음 달 결혼을 한다. 20대 초중반우당탕탕 시절을 함께한 친구다. 그 기억으로 직장인 되고도 꾸준히 밥 한 끼씩 한다. 언제라도 술잔 기울이며 3시간 정도 수다 떨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 나는 내향형 인간으로서 일단 친구 자체가 별로 없는데 그조차 대부분 아직 결혼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이건 30대 초반, 별로 축하스럽지 않은 결혼 소식의 범람 속 나에게는 얼마 없이 진심으로 참석해 축복해주고 싶은 결혼식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시부럴, 친구가 워낙 없으신 나머지 그 결혼식을 함께 갈 친구도 마땅치 않다는 거다. 가본 결혼식이 회사 선후배들 정도인데 모두 회사사람들과 떼로 가서 어색하지 않게 묻혀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긴? 혹시 나 혼자 가야 하나? 그나마 이 친구와 함께 셋이서 자주 어울리던 친구가 하나 있는데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 결혼식 날짜에는 한국에 없다. 청첩장 모임 때 결혼 소식을 알리는 예랑의 아름답게 상기된 얼굴을 보며 나는 이런 찐따 같은 고민을 했더랬다.
설상가상, 친구는 이런 소식도 알렸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온대!"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최근에 그 분과도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좋은 소식 있으면 알려줘!'라는 선생님의 말에 결혼소식도 알렸고 식장 오기로 하셨다고. 나는 졸업 후로는 일절 연락을 해본 적이 없는 선생님인데, 고등학교 때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를 보러 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리 내가 신경 쓸 요소도 아니지만, 그런 순간순간의 어색함과 뻘쭘함들을 잘 참지 못하는 찐따로서는 왕따 위기의 결혼식 속 불편한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된 듯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날 잠들기 전 나는 상상했다. 혼자 쭈뼛쭈뼛 식장 구석에 엉거주춤 서있다가 선생님과도 어색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온몸을 베베 꼬다 먹음직스러운 꽈배기가 되어버린 나를.
지난 주말에는 오빠와 밥을 먹으며 이런 생각을 털어놨다. "걔는 신기해. 고등학교 선생님도 부른대!" "되게 좋은 선생님이셨나 보다." "응, 애들한테 인기 많긴 했어. 애들 하나하나에 신경 많이 써주시고 따뜻한 엄마 같은 느낌?"
"근데 너는 왜 안 친했어?" "몰라, 나한테는 별로 애정이 없으셨던 것 같은데…. 막 상담 같은 걸 되게 길게 해 주시고 어떤 애들은 울고 나오고 했는데. 나는 상담도 별것도 없었고 그리 감동받은 적도 없었어. 그냥 특별한 애정이 없었어. 그래서 당시에도 애들이 찬양할 때도 나는 항상 '그 정돈가'하는 반감을 갖고 있던 것 같아."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고 나니 갑자기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 그 선생님에게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떠오른 대로 오빠에게 줄줄이 털어놓았다.
"말한 대로 애들이랑 되게 애틋한 사이여서 스승의 날에 반장 등이 주도해서 반 단체로 영상 편지를 만들어줬었거든? 한 명 한 명 나와서 한 줄씩 편지 내용을 읽는 거였어. 나도 읽었고. 선생님이 그거 받고 감동하셨는지 보답으로 우리한테도 한 명 한 명 고마운 점을 적어서 반 카페에 올리신 거야! 그 글을 읽는데 되게 다른 애들한테는 그 애의 특징을 잡아서 그런 점이 멋지다, 이런 행동이 고맙다 되게 엄청 구체적으로 쓰셨더라고. 그런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세상에 나한테는 뭐라고 쓰셨는지 알아!?!?!?
"뭐라고 쓰셨는데?"
"00아, 너는 참 예뻐, 다른 선생님이 너 정말 예쁘다길래 '우리 반이에요!' 했어. 늘 예뻐서 고마워."
"풉. 모야 칭찬이긴 한데. 그게 고마워? 그게 다야?"
"웅. 예쁘단 게 분명 칭찬은 맞는데 어린 나이에도 나는 뭔가 이상하다 느꼈던 것 같아. 되게 피상적이다, 쓸말 없었나 보다 생각했던 게 갑자기 뚜렷이 기억이 나네? 우 씨. 나한테 애정이 없으니 칭찬할 만한 요소가 나쁘지 않은 외모밖에 없는 건가 하고. 다른 애들 한 줄 감사 편지랑 비교해 보면서 왠지 조금 서운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섭섭함이 쌓여 '뭐야, 나도 선생님 별로야! 관심 없어!'하고 유치하게 선 그어버렸던 것 같기도 해. 흥!"
"그래도 너무하다 그 선생님. 물론 네가 예쁘긴 하지만, 나라면 네 따뜻한 내면에 대해서 더 칭찬해 줬을 거야."
언제나처럼 그의 기승전 달콤한 결론의 모양에 저항없이 감동한 나. 동시에 내가 기억하는 그 웃기고 황당한 성의 없는 칭찬 폭력이 추호의 과장이 없는 '실화'임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졌다. 밥을 먹다 말고 무작정 당시 글이 업로드됐던 다음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오래 접속하지 않아 비밀번호도 기억 안 나는 다음 아이디를 겨우겨우 찾아 비밀번호 찾기 끝에 접속한 카페. 의기양양하게 봐봐, 나 엄청 서운했겠지! 보여주고 공감받으려 했다. 00(내 이름)아, 로 검색해서 나오는 첫 글을 자신 있게 들어갔다.
해당 글의 서두
그리고 등장한 나에 대한 감사문
"봐봐, 내가 말한 거랑 비슷하지?"
00아, 키도 크고 늘씬하고 예뻐서, 게다가 요즘에 공부 열심히 해서 고마워. 누가 너보고 예쁘다고 그래서 "우리 반이에요!!" 그랬어. 고마워.
"엇 그렇긴 하네. 근데.. 잠시만 이리 줘봐."
내 폰을 들고 간 그는 이 감사문의 정체를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도 테이블 너머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그 과정을 함께했다.
"그런데 00아, 다른 애들한테도 그냥 비슷한 정도의 성의 같은데..? 오잉..?
'자주 씻는 깨끗한 학생이어서 고마워' '성적이 쑥쑥 올라줘서 고마워'
'말 걸고 잘 웃어줘서 고마워' '꾸준하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흠??? 내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나한테 유독 성의 없었는데, 나한테만 애정 없는 게 느껴졌었는데! 이러려고 보여준 게 아닌데!'
고등학생 당시의 기분적인 기분, 느낌적인 느낌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와 실제 지금 당장 이 글을 보고 직관적으로 든 솔직한 감상이 화해하지 못하고 한참을 대치했다.
그러다 이내 결론을 내렸다. 봐도 봐도 이 사람 말이 맞다.
다른 애들은 되게 구체적으로 걔네의 특징을 기억해서 (X)
내게 써준 문구가 기억과 달리 큰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애들에게 나와 다른 엄청난 애정이 담겨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가끔 나를 귀엽다 해줘서 고마워나, 예뻐줘서 고마워나. 30대 직장인이 되어 돌아보니 40여 명에 대해 장점을 나열하는 게 쉽지 않았을 선생님이 생각나는 특징의 장점을 쥐어짜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 보였다.
선생님에게 왠지 미안해졌다. 내 서운함의 실체를 증명하려 10년 전 글을 구태여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선생님을 평생 오해하고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유독 관심이 없었다고!
나에게 건넨 말이 실제로 외모에 관한 말인 것은 맞다. (공부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도 있긴 했지만) 하지만 다른 애들에게도 비슷했던 상황은 인지하지 못하고, 나에 대한 코멘트만 확대해 의미 부여하고 서운함을 느끼게 한 건 어쩌면 선생님의 말 자체가 아닌 어릴 적 나의 '내면을 칭찬받고 싶던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외모를 칭찬한 선생님은 얻어걸린 것뿐. 내면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느낀 조금은 피해의식 젖은 그 아이를 위로해주고 싶어지기도 했다.또.. 엄연히 따지면 내가 키크고 예쁜 편인 건 사실에 가깝고, 그게 선생님 탓은 아니지 않은가! 하하
이 사실을 깨닫고는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나 완전 무슨 16기 영자 같다. 내 뜻대로 해석해서 당시 상황 교묘하게 다르게 기억하고 악의적으로 퍼뜨리고. 세상에." 앞으로는 나는 솔로에서 황당한 면모를 자신 있게 보여주는 열받는 타인들을 섣불리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타인의 발화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내 결핍과 욕구를 늦게나마 알아차리는 어른이 되었음에 감사했다. 내가 어떤 걸 해석하는 방식은 내 안에 어떤 게 있는지를 반영한다는 점도. 어떤 기분이 들 땐 그게 실제로 그런지, 나만의 기분은 아닌지, 타인을 쉽게 오해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야 나는 고등학교 시절보다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의 결핍은 '내면에 대한 인정'이었나보다.
옥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억해 퍼뜨리는 모습이 박제돼 전 국민에게 욕을 먹고 있는 16기 영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날 횟집에서 그 선생님을 비방하는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카메라가 없었음에 감사한다.
+ 얼떨결에 오랜만에 들어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반 카페에서 선생님의 글들을 곱씹어보니, 선생님은 아마 다수 아이들의 기억대로 꽤나 좋은 선생님이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그녀만큼이라도 내 업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가? 애정을 쏟고 있는가? 저게 전부 가식이었으리라고는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진심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10년 전 담임선생님의 글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잠드는 저녁, 새삼 누군가를 돌보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의 힘은 대단하다고 또 한 번 생각한다.
다음 달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멋쩍고도 반가운 안부 인사를 드리고 싶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