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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차 Nov 19. 2020

시가살이 6개월 끝에 나온 사연1.5

제 얼굴을 잊어 주세요

시가에서 6개월 살다가 나온 이야기를 읽었다는 남편의 카톡을 받았다. 이제 시작이고 본론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읽었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 김이 팍- 셌다. 회사 동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하자, 글을 보고 싶다고 했다. 숨길 것도 없고, 창작의 세계에 벽을 둔 것도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됐다. 처음엔 장난처럼 웃었지만 뭔가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뭔가를 잘못하거나 실수를 해서 이런 수모를 당한 게 아닌데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시댁 얘기랑 남편 흉은 보는 게 아니라고 한 건가, 싶었다.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내 얼굴은 이미 침으로 뒤범벅돼 내 얼굴도 알아볼 수 없는 흉물이 돼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이야기로 내 얼굴이 침 범벅이 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침범벅이 돼더라도, 글을 계속 올려야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사실 다른 계정을 팔까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올릴 글의 내용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마음 역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얼굴만 깨끗하고 속은 새카맣게 타느니, 침 범벅 얼굴이라도 마음 만은 평온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내용이 아니라 1.5라는 제목을 달았다. 매일 자기 전에 브런치에 쓸 내용을 고민한다. 제목도 고민하고, 내용도 생각한다. 울컥 화가 나기도 해 잠이 안 올 때도 있다. 누가 보면 뭘 그런 것 갖고 예민하게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다. 누구나 그런 마찰은 있는 거라고,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넘겨짚을 수도 있다. 또 누구는 더 극한 상황, 예를 들어 가정 폭력이나, 바람을 피우는 남편, 혹은 더 심각한 시가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절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왜 최악과 비교하며 날 위로해야 하는가. 사고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사람이 팔을 절단한 사람에게 "좋겠다. 그래도 넌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잖아"라고 말한다면 과연 위로가 될까. 상황과 마음 상태, 그리고 각자의 살아온 길에 따라 모두의 기준은 다르다. 그래서 오늘도 난 '시'금치가 싫다. 꼴도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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