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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차 Oct 05. 2021

엄마 평가서, 이젠 싫어요

아무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예민하다. 감정적이다. 화가 나 있다. 부정적이다.    

  

요즘의 나를 정리하자면 딱 이렇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내 얘기를 하면, 내 상황에 대해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흥분을 하면 되돌아오는 답은 “그럴 만하네” “그러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다”가 아니라,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란다. 스스로도 생각한다. 그래, 예민하지 않진 않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둘째로 태어나,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특히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엄격한 평가를 받고 있다. 엄마로서의 자질, 아내로서의 성품, 며느리로서의 책임 등등. 정작 회사에서는 받지 않는 자질구레하고 잣대 없는 평가는 눈을 뜨는 아침부터 시작해 꿈속으로 이어진다.     

 

“엄마가 희생해서 아기를 먹여야지” “엄마가 졸리다는 말을 해서 어떻게 해” “아기 외롭지 않게 둘째는 낳아야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엄마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이런 말을 해야 하고,, 어쩌고저쩌고,,,”     


답이 없다. 육아를 포함해 우리네 삶에는 답이 없지 않나.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보고 받아들이고 사고하는 과정도 모두가 다른데 평가는 단편적이다. 보이는 대로, 듣는 대로, 그저 자기 보는 것이 정답인양,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재단한다. 왜 엄마는 희생만 해야 할까. 우리 엄마 세대가 그랬기에 나 또한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일까, 왜 엄마라는 사람이 되면 피곤하다는 말도 못 하고 그저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포장해야 하는 것일까. 둘째라는 숙제는 왜 첫째를 낳자마자 주어지는 것일까. 둘째의 행복도 아닌, 첫째 아이를 위해 마땅히 낳아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세상의 둘째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둘째 아이가 첫째가 외롭지 않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았는 때의 상실감은 생각해 본 적 있을까. 왜 그렇게 이기적인 것일까. 내 행복이 아이에게 미친다면서 왜 내 감정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봐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엄마 평가서’는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그저, 내 아이의 예쁨만 보고 나만의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도 난, 00 이의 엄마라는 이름 아래, 재평가받는다. 워킹맘이라 힘들겠다. 남편이랑 같이 안 키워서 힘들지 않으냐, 엄마가 왜 이리 화를 많이 내느냐. 어제 받았던 워킹맘이라 멋지다, 남편이랑 공동육아 안 해서 오히려 편하겠다 등의 평가와 다르다. 한마디에 마음이 갈대같이 흔들리는 내가 이젠 한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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