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보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는 퓨리오사의 이야기다. 전편에서 우리를 모두 사로잡았던 강렬한 비주얼의 퓨리오사 탄생기는 흥미롭지 못했다. 좋은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을 놀라게 해야 한다. 전편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는 사막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차 위에서 펼쳐지는 지독한 액션으로 나를 비롯해 수많은 관객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퓨리오사 사가'는 이야기도 액션도 전편에 비해 나를 놀라게 하기 부족했다.
'퓨리오사'는 문명 붕괴 45년 후, 황폐해진 세상 속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풍요가 가득한 녹색의 땅에서 자란 퓨리오사(안야 테일러-조이)는 바이커 군단의 폭군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의 손에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가족도 행복도 모두 빼앗기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퓨리오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퓨리오사'가 흥미롭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구멍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 텅 비어있다. 임모탄 조는 퓨리오사를 디멘투스와 거래를 통해 얻어내서 자신의 아내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퓨리오사가 탈출한 이후에 놀랍게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직책인 전투 트럭을 맡긴다. 임모탄 조는 거대한 왕국을 건설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한 번 배신한 사람을 다시 신뢰하는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용서를 하든 처벌을 하고 받아주든 그런 과정들이 그려졌어야 했다. 전편에서 가공할 존재감을 보여준 그는 이 선택 하나로 '퓨리오사'에서 모든 존재감을 잃고 만다.
조지 밀러 감독은 임모탄 조와 퓨리오사의 서사를 희생하는 대신 디멘투스와 퓨리오사의 대결에 힘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매드맥스' 시리즈에 두 명의 악당은 적당하지 않았다는 판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디멘투스의 이야기에도 허점이 너무나도 많다. 후반부에 디멘투스가 탄약 농장을 정벌하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나 신뢰가 무너진다. 디멘투스가 가스타운을 정복하는 과정도 트로이의 목마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차용했으며, 그 과정 역시도 의문이 남는다. 이미 시타델의 물자를 받은 가스타운에서 굳이 시타델의 전투 트럭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위협을 감수하는 결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전투트럭이 없던 시절에도 가스타운과 시타델은 물물교환을 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퓨리오사의 복수 장면도 마찬가지다. 디멘투스가 퓨리오사에게 제압되는 과정도 맥이 빠진다. 오랜 세월 바이커갱을 이끌며 가스타운을 정복하며 군림했던 디멘투스가 쫓기고 있는 와중에 사막에서 자고 있다가 퓨리오사에게 제압되는 것 역시 어이가 없다. 디멘투스의 목을 노리는 자들이 끝없이 있었을 것이며, 그 위기를 거쳐 살아남은 그가 방심하는 것 역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퓨리오사 역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자 사령관 역할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의 가는 팔과 다리는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디멘투스 역을 맡은 크리스 헴스워스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정도의 연기를 선보였다. 존재감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연출과 대본의 탓도 분명 있어 보였다.
'매드맥스'는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오래 걸린 만큼 더 훌륭한 대작을 기대했지만 '퓨리오사'는 그 기대에는 못 미쳤다. 액션 영화의 미덕은 극장에서 시간을 빨리 가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초반부부터 지루했으며, 전작 이상의 미덕을 보여주는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