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거리며 병원에서 돌아왔다. 그러고는 한참을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었다. 의사가 내게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 좋지 않은 말은 아니었다.
약물 치료를 해 봅시다. 수술까지는 필요 없지만 체중은 좀 줄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릎이 버텨내려면 그러시는 게 좋습니다.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전신마취 후 찾아오는 기억력 감소를 다시 겪지 않아도 되는게 어딘가 말이다. 오래전 난 갑상선샘과 자궁에 양성 종양이 생겨서 2번의 전신마취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의사들은 후유증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전신마취는 기억력에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이다.
근데 체중을 콕 집어 말하는 의사의 시선이 내 몸 어딘가에 꽂히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신의 무릎이 아픈 것은 당신이 뚱뚱하기 때문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자업자득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안다. 어느 면에선 내 자격지심이 발동된 탓에 그리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그랬다. 살을 빼라고.
다이어트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된 이후론 계속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놈의 다이어트를... 그런데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체로 난 계속 뚱뚱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키가 큰 것은 다행이었다. 몸집이 큰 것이 마치 큰 키 때문인 양 핑계를 삼았다. 반백살이 다되도록 계속 이런 상태인데 어떡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지? 의욕이 생기기보단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왔다.
딸아이에게 '엄마가 살을 빼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딸은 약간은 놀란 눈으로 내게 말했다. '살을 빼면 이뻐지겠지... 근데 다이어트 안 해도 괜찮아. 난 엄마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아.'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13살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는 내 기분을 살피며 내가 좋아할 말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내 살들이 어린 딸아이가 내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너무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반백살이 다되어서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