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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Nov 24. 2024

(SF소설) 니콜에겐 안개꽃을 #12

마이크로 쉽을 탄 남자 -4-

“와. 아주 잘 어울리는데. 너 몸매가 좋구나. 운동하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비율이 좋지?” 



“아니. 운동 같은 건 안 하는데.” 



“흠… 대단한걸. 남자들이 보면 놀라겠다. 너무 완벽해서.” 



니콜은 속옷 차림이 되는 것이 마치 무슨 비밀이 공개되는 것처럼 무서웠다. 둘이서 속옷 차림이 되었을 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몸을 보여주고 나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가까워지는구나.” 



니콜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은혜는 자주색 드레스를 가져와 니콜에게 입히려고 했다. 



“이거부터 입어보자.” 



“응… 그래.” 



드레스는 22세기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연결 부위와 소재가 바뀌었을 뿐이다. 뒤에 있는 끈을 풀고 한 번에 몸 위로 걸쳤다. 확실히 일반 옷보다는 불편했다. 뒤에서 은혜가 끈을 조절했다. 순식간에 허리라인이 꽉 조여들었다. 마치 좁은 바위 사이에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옛날에는 끈을 꽉 조여서 숨을 못 쉴 정도 허리를 가늘게 하는 게 예쁜 거였데. 요즘엔 소재가 워낙 좋아서 몸에 저절로 밀착되고 등 뒤의 끈도 이렇게 힘 안 들이고 조정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일반 옷보다는 좀 불편할 거야.”



은혜는 옷 입는 과정 자체를 즐거워하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니콜의 어깨선에서 가슴을 지나가는 라인에는 반짝거리는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니콜이 옷에 손을 대고 질감을 느껴보니 무게감이 거의 없고 비누를 만지는 것처럼 미끈했다. 거기다 약간의 광택까지 있어서 몸매를 더욱 드러내게 해 주었다. 은혜는 어깨 위를 덮는 하얀 시스루를 가져왔다. 스타킹처럼 얇은 것이 어깨를 덮자 한층 고급스럽게 보였다. 시스루와 드레스를 결합하고 뒤에서 끈을 조이자 전체적인 모습이 완성되었다.





“우리 왠지 이러고 있으니까 중세시대로 돌아간 거 같다. 그지?”



“그러게….”



한참 끈을 조이고 풀고 하더니 은혜가 니콜 앞으로 왔다.



“자! 다 됐어. 맥스 거울 내려줘!”



맥스는 은혜의 집 홈오토메이션을 담당하는 인공지능의 이름이었다. 옷장 벽에서 디스플레이가 나왔다. 22세기의 거울은 유리에 반사되는 게 아니라 작은 카메라로 전신을 찍어 디스플레이로 재생하는 것이었다. 앞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니콜은 난생처음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한 바퀴 돌아볼래?”



니콜이 천천히 돌자 은혜는 환하게 웃었다.



“와. 이거 입으면 니콜 옆에 있는 남자들 완전 죽겠는걸? 오늘 밤의 퀸이 될지도 몰라.”



"퀸은 무슨... 옷이 예쁜 거지.”



니콜은 예쁘다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아름다움이란 자기가 완성되는 것 같은 느낌, 더 여성스러워졌다는 만족감인 것 같았다. 남성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남성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다른 드레스도 입어보고 나서 니콜은 목까지 시스루로 가려진 드레스를 선택했다. 두 사람은 재빨리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는 혼자 입기 힘들어서 서로 입혀주고 옷매무새를 잡아야 했다.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니콜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명을 받은 드레스는 빛이 반사되어 눈부셨고 입은 사람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허리는 꽉 조여서 날씬함을 강조했고 치마에는 나비 날개 같은 레이스가 세 겹으로 달려있었다. 



'인간이란 이런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걸까?’ 



니콜이 본 거울 속의 자신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인이었다. 누구도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예쁜 모습이었다. 



"당일날 헤어숍에 들러서 머리도 할 거야." 



"머리도?" 



"당연하지. 최신 기계로 10분이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준대.” 



“정말?" 



“그래. 파티인데 제대로 꾸며 봐야지.” 



은혜는 자신감과 기대감에 차 있었다. 이런 것을 소녀의 꿈이라고 하는 것일까? 두 사람은 그날의 기대에 부풀어 서로 한참 웃었다. 니콜은 점점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기뻤다. 지금까지 별문제는 없었으니까 사회생활의 첫발은 잘 내디딘 것 같았다. 어서 빨리 파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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