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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Aug 18. 2022

서점일기 ─ 회의懷疑로 지탱하니 '열린 사회'라는 우주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거리가 세분화되면서 의지도 역시 세분화된다. (…) 사물이 아무리 거대하게 보이고, 그것에 맞서 나가려는 자신의 의지가 아무리 작게 보여도, 그것을 5미터씩 처리해 나가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는 50미터의 풀 속에서 배웠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형태를 취한 인식(認識)이다.

_하루키, 「풀사이드」中




책을 읽는 행위는,


1.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가 책장 너머 어딘가에 존재함을 사실로 확인하는 것(이것이 자아내는 기쁨이니 즐거움은 외려 부산물 아닐지).


2. 그와 동시에 그렇게 꾸리는 삶과 그를 가능토록 지탱하는 배후의 사고방식의 승인이기도 하다. 이럴 때 작자는 독자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맺으니 관계요, 가히 '상호相互'로 성립이다. 다시 이같은 관계에서 비롯하는 호명(목소리 부재)은, 독자가 처한 당장의 현실 그 매순간을 '일상日常'으로 빚게끔 역동力動 한다. 작용하는 되먹임.


이를 선명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견지見地, 할 수 있다. 성찰로 득한 오롯함을 바탕으로 마침내 존재. 의지-되고 의지-할지언정 의존 불가/불성립. 때문에 한번 가닿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이의 귀환은 수시요, 출현은 어디서든 빈번해도 그 현현顯現을 뚜렷하게 인지하는 친구(동등한 지위 아니 층위의)는 정작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역으로 그이 입장에서의 '친구 찾기'는 그래서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게 마련.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에 기댄 만남이 충격한 끝에 그때까지 '─빠'로서 의존형 삶을 살던 이가 그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아니 뒤바꾸기 위해 몸부림으로 옮기기도 하니. 제 삶에 그어진 편위偏位, 그 돌발적 사태를 심사숙고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이들은 그러니 얼마나 귀貴한가. 이들과 함께 이루니 '우리'라는 집단이요, 그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확장된 범주로 친구가 된다. 그러니 '─찾기'로는 실패여도 '─되기'로 대체되며 충족된다.


불완전한 존재일 밖에 도리 없음을 인식하는 사람은, 끝끝내 겹칠 수 없는 관계의 불가능성을 아는 사람은, 그래서 오히려 관계에 활짝 열린 상태로 다만 있을 뿐이다.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의懷疑를 거듭하는 존재들, 이 낱낱의 미물들로 지탱되는 바 '열린 사회'라는 유니버스인 걸 보면 정말이지 경이롭다 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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