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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HEY Nov 01. 2022

짝꿍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우리 집엔 짝꿍이 있다. 첫째가 지어줬는데 엄마와 아기가 짝꿍, 자신은 아빠와 짝꿍이란다. 아기에게 엄마가 많이 필요하니 배려해준 건가 싶었지만 아직 5살임을 생각하면 그냥 아빠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내린 단순한 결정인 것 같다. 첫째가 아빠를 좋아하는 데엔 또 그만한 이유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첫째는 생후 1년 간은 내가 돌봤다. 그리고 그 후 1년 간 남편이 돌봤다. 양가 어른들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던 초보 부부는 둘이서 번갈아 빠듯하게 아이 하나를 키웠다. ‘우리 집엔 엄마가 둘‘인 것처럼 육아 노동의 양을 똑같이 나누자는 나의 요구를 남편은 따라주었다. 그런데 시간의 양은 똑같았지만 방법은 많이 달랐다.


나는 다행히 두 번의 출산 모두 산후 우울증을 비켜갔지만 그럼에도 본래 걱정 많고 참을성 부족한 성격인 탓에 아이를 많이 고생시켰다. 내가 이렇게 유난스러운 인간이었는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도 처음 보는 나를 발견하던 시기였다. 엄마와의 지지고 볶는 첫 1년을 보내고 아빠에게 맡겨졌을 때 아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빠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리 눈여겨보지도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먹는 것에 까다롭지도 않아 스팸과 짜파게티의 신세계를 열어주기도 했다. 아빠는 전업 육아를 하면서도 육아 자체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아이와 티비를 보기도 하고 아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잠도 자며 아빠 자신의 휴식을 잊지 않았다. 책과 강의를 찾아보며 육아를 독학한 열성 엄마인 나는 그런 느긋한 모습 하나하나가 다 마뜩잖았다. 육아란 모름지기 24시간 아이를 맨마킹하며 아이의 눈빛 하나에도 반응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그때의 극성맞은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지론이 무색하게도 양육 방식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함이 첫째가 자라면서 드러났다.


우리는 한쪽은 유별스럽고 한쪽은 느슨한 극과 극의 양육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에 대한 애정과 애정의 표현만큼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갖고 태어난 성장 지도를 따라 알아서 잘 큰다. 내가 유난을 떤다고 해서 남편이 설렁설렁 본다고 해서 클 애가 안 크는 게 아니었다. 아이의 반경에 함께 있음으로써 안정감을 주고 피부를 맞대고 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며 유대를 쌓는 것, 그렇게 아이가 스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성장의 자양분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양쪽 다 똑같은 사랑을 준다면 이왕이면 눈치를 덜 볼 수 있는(덜 피곤한) 양육자를 아이는 더 좋아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니 우리 부부의 양극단의 태도도 점점 중도를 찾아 적당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예민하고 후리한 면이 여전히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똑같은 사람 둘은 재미없지 않은가. 서로 다른 면이 있기에 상호 보완하며 더 좋은 솔루션을 낼 수 있으니 아이도 성향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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