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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rfish Jul 29. 2020

독서가 습관이 된다구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독서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릴때부터 계속 읽어주면 나중에도 알아서 읽게 된다고. 내가 책을 좋아하니 그 말이 반가우면서도 100%맞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아이마다 어느 정도 성향이 있고 그건 커서도 마찬가지다. 지긋이 앉아 있기보다 몸으로 발산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 음악이나 운동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 역시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는 기꺼이 하겠지만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라고 까지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책으로 충족시키는 성향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터넷도 있고 전문가도 있고 차고 넘치는 게 정보인데 그 중에서 궂이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짧게 허기를 채우듯이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궁금한 대상에 대해 두루두루 알아보고 내가 알고싶은 답 너머의 답까지도 알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특히나 소설은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도 어쨌든 나를 자극시켜 내가 모르던 하나의 의미를 던져줄거라는 기대에 가깝다. 그렇게 탐색하는 과정이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고 쉽기만 한 것도 아니니 거기엔 타고난 집요함 같은 게 일정부분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아이한테 책을 읽어주니까 나중에도 읽겠지? 하는 것은 지금 주물러 놓은 찰흙이 고대로 굳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내 맘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뿐더러 계속 변한다. 내가 지금 책을 읽어주지만 나중에 스스로 읽을지 어떨진 너한테 달렸다 이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성인 중에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린 시절 그 모든 이해 과정없이 무작정 책을 읽어라 읽어라 강요당해 온 것도 일정 부분 원인일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그 사소한 의문을 흘려 넘기지 말고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유도하는 것(독서습관보다 더 어렵다) 이 아닐까 싶다.


 독서가 단순히 “하던 걸 계속한다” (습관) 과 “시키면 할 것이다” (강요)의 문제가 아님을 짚었으니 이제 내 독서 이야기를 할까한다. 나는 예전에는 소설이 좋았고 특히나 내용 그 자체보다 글의 분위기나 작가의 이미지가 좋은 책을 선호했던 것 같다.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김연수, 패트릭 쥐스킨트, 폴 오스트의 팬이었으니 어디가서 책 좀 읽는 척 하기에 좋았다. 독서광인 척을 해야하는 데 상대가 이 작가가 누군지 모르면 안되니까 말이다. 그러다 이후에 김영하, 장강명, 필립 로스 같은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좀 더 간결한 문장과 메세지가 강한 내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집중력이 예전만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에세이나 비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의 관심사도 많이 바뀌었다. 20대 때는 당장의 공감을 원해서 위로와 부드러운 말로 가득한 책을 원했는 데, 지금은 좀 더 폐부를 찌르는 그래서 진짜 원인을 찾아 줄 책을 갈망한다. 개인이 공동체와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지, 사회가 얼마나 개인을 폭력적으로 짖밟아왔는지, 거기에 대항하는 가장 우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페미니즘. 나는 내가 이런 화두를 원하는 지 조차 몰랐는 데 지금껏 읽은 책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독서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내 가슴을 탕 쳐줄 다트 판의 한 가운데. 그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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