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라졌던 마당냥이가 오늘 돌아왔다. 같이 다니던 아깽이는 어디가고 혼자였다. 나를 보자마자 평소보다 크게 야옹 야옹 우는 폼이 나 밖에 나가서 이렇게 이렇게 고생하고 왔어 하고 하소연을 하는 듯 했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애틋했다. 그래 나가면 고생이야 그러니까 항상 이 주변에 있어, 밥 챙겨 줄테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양이에게 자유가 중요한지 밥이 중요한지 묻지도 않고 덜컥 그런맘이 들었다. 서둘러 올라가 밥을 가지고 나와 그릇을 채워주는 동안에도 냥이는 작은 소리로 야옹야옹 울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하듯 그래 그랬어~ 하고 말을 걸고 냥이는 에옹에옹 답했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래서일까 예전 같았으면 바로 자리를 떴을텐데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했던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잠깐 서 있다가 고개 돌린 냥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건 아까와 같은 눈빛이 아니었다. 냥이는 내가 가기전에는 밥을 먹지 않을 것이었다. 아 맞다 참. 잠깐 가까워졌다는 느낌에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경계의 대상이고 그 거리감이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 주는 것인데. 그렇게 인간을 경계해온 감각이 지금껏 너를 지켜준 것인데.
얼마전 읽었던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에서는 새 한마리가 울면 저 쪽에서 또 다른 새가 울며 화답하고, 피아노의 왼쪽 손이 울면 곧 피아노의 오른쪽 손이 화답한다는 그런 표현이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느낄수 없지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다.
냥이랑 나는 서로 그런걸 느꼈기에 공감할 수 있었지만 내가 그 교감을 확대해석했기에 무리하게 거리감을 좁히려고 했던 것이다. 사랑은 교감과 개인성을 모두 포함한 말이다. 냥이의 훌쩍 떠날 자유, 나를 적대할 자유, 두려워할 권리를 모두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같이 다니던 그 아깽이는 정말 어디로 간걸까? ㅠ 부디 그동안 무사히 자라 독립한것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