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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30. 2022

짜릿해! 늘 새로워!

<코지 판 투테>, 비스바덴 |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오페라 리뷰

2022년 5월 21일 토요일

비스바덴 | '코지 판 투테' (2022 5월 국제 축제 Mai Festspiele 참가작)


1. 독일 헤센(Hessen) 주의 주도(州都)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비스바덴 - 프랑크푸르트 아님 주의! - 에서는 5월마다 5월 국제 축제를 가진다. 이름 있는 연주자들과 음악 단체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1.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는 코로나 시기라서 축제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이미 축제 예산을 확보한 극장 측이 개최를 축소판으로나마 밀어붙였다. 덕분에 플로리안 클라우스 포크트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감상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JSgUqW-hC-s

정말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포크트 님과 그가 소개하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아간의 아가씨'

 

 1-2. 왜 이 이야기를 꺼내냐 하면... 코로나 기간 동안 방역 정책을 관철하려는 비스바덴 시 당국과 최대한 공연을 강행하려는 극장 측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첨예해졌기 때문이다. 개막 공연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덕분에 현 극장장 우베 에릭 라우펜베르크의 임기 연장을 위한 시 문화부와의 협의 과정은 그야말로 진흙탕이었다. 결국 극장장은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1-3. 권력 말기의 레임덕인가. 5월 국제 축제라는 명분에 걸맞은 좋은 가수들의 많이 참여함에도, 이번 <코지 판 투테>의 관객석은 절반 정도는 비어있었다. 토요일 공연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2. 내가 이번 <코지 판 투테>를 고른 이유는 평소 궁금했던 소프라노 줄리아 레즈네바(1989~ )피오르딜리지를 부르기 때문이었다. 2009년에 역대 최연소로 미리암 헬린 국제 콩쿠르를 석권한 이후로 바로크부터 클래식 그리고 로시니 같은 벨칸토 레퍼토리까지 눈부신 커리어를 쌓아온 그녀를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그녀의 음색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날렵함과 무게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오르딜리지는 워낙 당찬 드라마틱함과 저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에 캐스팅 표를 본 내 반응은 '으응?'이었다. "그녀가 벌써 이 역을 부른다고?"


https://youtu.be/XkjjnlrWifU

모차르트의 '알렐루야'를 부르는 줄리아 레즈네바


https://youtu.be/oO3FBso9BoM

상당히 까다로운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인 '당신은 진실한 마음을 가졌죠'를 부르는 줄리아 레즈네바


3. 그렇지만 그건 내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위의 영상들을 보면 모차르트를 부르는 그녀의 기량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올라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피오르딜리지 역을 이미 2016년에 비스바덴에서 성공적으로 도전한 바 있었다. 내년 3월에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도 같은 역을 노래할 예정이다.


4. 피오르딜리지는 2곡의 아리아를 가지고 있다. 보통 주목받는 곡은 "바위처럼(Come scoglio)"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곡은 자신의 욕망과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그이는 떠났네... 사랑하는 이여, 용서해줘요.(Ei parte... per pieta, ben mio, perdona)"라는 아리아이다.


https://youtu.be/PWL7dDNQpPQ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이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 미아 페르손


5. 와...!!! 대박이었다!

평소에는 '이 곡 언제 끝나나....'하고 다른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지루하게 여겨지던 이 두 번째 아리아가 이렇게 모노드라마처럼 흡입력 있는 곡이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쾰른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가 참 좋아했던 클라우디아 쿤츠 선생님이 들려주신 경험담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첫 번째 아리아 '바위처럼(Come scoglio)'를 더 좋아하지만 내가 드레스덴 젬퍼오퍼에서 이 역을 노래할 때는 두 번째 아리아를 부르고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단다."


선생님, 이제야 그 말씀이 이해되네요.


비스바덴 <코지 판 투테> 무대 모습


6. 위 사진처럼 이 프로덕션의 무대는 360도로 열려있었다. 레즈네바는 무대 위의 관객들을 향하면서 노래할 때, 즉 객석의 관객들에게 등을 지고 노래할 때도, 전혀 볼륨에 손상이 없었다. (물론 저 무대 뒤편의 거울이 훌륭한 반사판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탁월한 레가토 라인은 관객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었고,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모두의 공감을 자아냈다.


7. 레즈네바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했는데, 거기에 페란도 역의 이오안 호테아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비스바덴에서 이렇게 높은 수준의 "사랑스러운 아우라여(Un'aura amorosa)"를 듣게 되다니.... 엉엉....!!

호테아는 최근에 모차르트와는 비교도 안되게 '찐한' 마스네의 <베르테르>까지 레퍼토리를 확장한 바 있다. 그가 부르는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Pourquoi me reveiller)"의 영상을 참고하시길.


https://youtu.be/HXSW9eHeZvE

Mr. 호테아, 나는 이 곡도 좋지만 당신의 모차르트가 훨씬 더 좋네요!^^


8. 좋은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 보니, 오페라 후반부에 피오르딜리지와 페란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부르는 2 중창이 너무나 기대되는 것이었다. 이 훌륭한 가수들이 주고받는 에너지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클까?


9. 1790년에 빈에서 초연된 이 232살의 오페라가 지금까지 이토록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다니. 대본을 쓴 로렌초 다 폰테(1749-1838) 당신은 도대체 얼마나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을 꿰뚫고 있었던 건가요? 잠깐 여담을 나누자면, <코지 판 투테>가 초연된 후 1년 만에, 빈 궁정에서 누리던 다 폰테의 영화로운 시절은 막을 내렸다. 주군이 바뀌면서 실직하게 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빚 때문에 미국에까지 건너가게 된다. (모차르트의 황실 동료와 신대륙 사이의 엄청난 간극이라니.... 다 폰테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는지 짐작된다.) 건너간 지 20년이 지나서야 컬럼비아 대학의 이탈리아 문학교수로 임명되게 되는데, 그 사이에 그는 담배와 술도 팔고, 청과상도 하는 등 생활력을 만렙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초기 이민자들의 녹록지 않은 그 삶을 상상하면 다 폰테의 고생이 이해가 좀 될까. 하지만 다 폰테 덕분에 모차르트 음악뿐만 아니라 오페라라는 장르는 신대륙에서 큰 인기를 얻고 발전하게 되었다. 비바 다 폰테!


중간 휴식시간에 노을을 안주 삼아 마시는 리즐링 와인과 로제 젝트(Rose Sekt)

10. 평소에 모차르트 오페라를 관람하다는 것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숨을 크게 들어마신 후, 결의의 찬 눈을 부릅뜨면서, 귀를 쫑긋 세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학창 시절부터 스코어를 달달 공부했기 때문이다. 잘 아는 작품을 관람한다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재미를 알기도 하지만 쉽게 성이 차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이번에 이렇게 안락(?)하게 관람한 것은 아마도 중간 휴식 시간에 들이켰던 '메테르니히 공작'의 로제 젝트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의 신경을 너그럽게 만들어준 메테르니히 공께 Cheers!

술은 잘 모르지만 이건 참 맛있더라는....

  10-1. 비스바덴은 라인강에 면해있는데,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라인강 유역은 유명한 와인 산지이다. 그중에 요하니스베르크(Johannisberg)라는 유명한 리슬링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바로 '메테르니히 공작' 상표를 달고 나온다. 메테르니히? 나폴레옹 전쟁 마치고 빈 회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군주제를 옹호했던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그 사람 맞다. 요하니스베르크는 메테르니히 아버지의 사유지였고 그는 이곳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 근방에서 유명한 와인 브랜드는 비스바덴 오페라 앞에서 간이 부스를 마련해놓고 관람객의 여흥을 돋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0-2.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코지 판 투테>를 재발견한 날이었다. 오늘의 의식의 흐름은 정우성님이 말씀하신 명문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짜릿해! 늘 새로워! (노래) 잘하는 게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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