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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31. 2022

리스또란떼? 오스떼리아? 뜨라또리아는 또 뭐꼬?

오페라를 핑계로 떠나는 이탈리아 미식 여행 | 볼로냐(3)

미식의 도시 볼로냐에서 끼니를 때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어느 여행지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행지에서 잘 먹는 것은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한정된 재화와 기회를 놓고 최고의 가성비를 뽑기 위해 나만 고민하는 거 아닐 것이다. '두근두근' 배팅을 하는 마음으로 판돈을 건다. 가격에 합당한 맛과 서비스를 경험한다면 횡재를 하는 것이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이 여행기에 악담을 써주는 것으로 복수를 하리라. 


스트릿 푸드에 도전하겠다고 길을 나섰건만 방금 그친 비의 눅눅함이 남아있는 거리에서 홀로 모르따델라 샌드위치를 질질 흘리면서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근시일에 일행과 함께 볼로냐를 다시 찾을 때 도전하기로 미뤘다. 


일단 어딘가 앉아서 끼니를 때우자. 이왕이면 우아하게! 


흘리지 않고 우아하게 잘 먹을 자신 있니?


오후 4시 반. 리스또란테는 영업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여기서 잠깐, 당신은 이탈리아 식당들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습니까? 리스또란떼(ristorante), 오스떼리아(osteria), 뜨라또리아(trattoria), 핏쩨리아(Pizzeria)..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의 범람은 혼란을 가중시키지만, 알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탈리아어 발음은 상당히 된 편이다. 리스토란테, 오스테리아, 트라토리아, 피체리아...라고 적을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이탈리아에 가실 경우 현지에서 더 유용하게 쓰일 정보를 드리고자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적어보겠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피자도 "삣짜"로 발음해야 오리지널 발음에 더 가깝다는 사실...ㅎㅎㅎ)  


핏쩨리아: 

이름 보면 알겠지만 피자 파는 집이다. 슬리퍼를 신고 추리닝을 입고 가도 전혀 부담 없는 그런 곳이다. 한국의 '김밥천국'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흔한 삣쩨리아의 모습. 정말 부담 없는 모습이다. 


리스또란떼: 

우리가 알고 있는 레스토랑의 이탈리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옷을 허름하게 입고 가면 살짝 낯 부끄러울 수 있다. 좌석에 앉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전주로 프로세코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에 당황한 걸 감추려고 허세를 부렸다는 이야기는 '피렌체 편'에서 털어놓겠다.) 물도 그냥 준다. 요리는 '쁘리모' 와 '세꼰도' 둘 다 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돌체(후식)까지 시킬 수 있는 위 속의 여력이 남았는지 테스트해보라. 아무튼 이곳은 코스 요리를 먹는다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메뉴에 피자는 없다. 가게 간판에 '리스또란떼-핏쩨리아'라고 쓰여있으면 리스또란떼보다는 '좀 신경 쓴 핏쩨리아'라고 생각하시라. 


다음날 피렌체에서 방문한 제대로 된 '리스또란떼'의 모습


뜨라또리아:  

일단 규모가 작아야 한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 가격은 리스또란테보다 저렴하다.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한 메뉴가 주를 이룬다. 이곳도 리스또란떼처럼 코스 요리로 구성되지만 가격은 보통 더 저렴하다


오스떼리아: 

마찬가지로 규모가 작다. 이곳은 요리보다는 술에 더 비중을 둔다고 한다. 예전에는 손님이 요리를 가져와서 이곳에서 술만 마셔도 되는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레스토랑보다는 선술집에 가깝다고 하다는데, 그건 옛날이야기인 듯싶다. 사실 오스떼리아나 뜨랏또리아라는 명칭을 선택한 맛집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에 독일에 '오스떼리아 L'Osteria'라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 사세를 넓히고 있는데, 이름만 오스떼리아고 사실은 한국의 '매드 포 갈릭'같은 이탈리아 음식을 주제로 한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1999년에 뉘른베르크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독일과 스위스에 걸쳐 100개 넘는 매장을 열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흔한 오스테리아의 모습
요즘 잘 나가는 독일 패밀리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수다를 떨다가도 곁길로 빠져 항상 원래 하고자 하던 이야기를 못하게 되는 나는 오늘도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적지 못하고,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식당을 구분하는지를 떠벌리고 있다. (이 와중에 음식 사진을 보면서 솟구쳐 오르는 식욕은 번뇌를 더하고 있다.) 이왕 곁길로 빠진 거 제대로 빠져보자. 이탈리아 친구 엔리코에게 물었다. 


"뜨라또리아와 오스떼리아를 구분하는 네 기준은 뭐니?"


엔리코가 긴 답을 보내줬다. 그의 정성을 봐서라도 이건 꼭 여기 소개해야겠다. 


"뜨라또리아, 오스떼리아 음.... 일단 단어의 어원을 살펴봐야 돼. 역사적인 의미가 다르거든. 이 단어들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사용된 거야. 그렇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 단어들은 생성됐을 때의 그 의미를 갖지 않아. 왜냐하면 이제는 리스또란떼보다 더 비싼 뜨라또리아나 오스떼리아도 많거든. 


예로부터 이 두 장소는 인기가 좋은 장소였어. 평균적으로 저렴했거든. 그리고 그 지역 음식과 현지 와인을 즐길 수 있었지. 


'뜨라또리아'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traiteur(주문을 받아 요리를 만들어 배달하는 사람)"와 라틴어 "tracto(보살피다, 취급하다)"에서 온 거야. 이곳은 특히 중세 시절에는 여행자나 순례자, 여행객들을 포함해 지역 주민들이 먹을 것을 제공받을 수 있는 장소였어. 


반면 '오스떼리아'라는 말은 여관 주인, 혹은 선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어. 라틴어의 "hospes"라는 말이 손님이라는 뜻이거든. 그래서 손님을 맞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지. 


그래서 이곳에서는 지역 특산 와인이 있었어. 간혹 맥주가 특산물인 지역이라면 맥주도 있었지. 이런 '오스떼리아'를 지칭하는 다른 말은 '로깐다(Locanda: 여인숙, 여관)'도 있어. 무언가 마실 수도 있고 또 필요하면 잠을 잘 수도 있었지.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순례자 같은 여행자들이 애용했던 공간이야. 

옛날 로깐다 이미지

여기서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음식들을 제공했어. 말린 고기, 살라미, 치즈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 제대로 된 요리를 제공하는 뜨라또리아와는 이런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엔리코는 묻지도 않는 '따베르네'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자상하기도 하지!)


그리고 중세시대에는 '따베르네(Taverne, taverna의 복수형)'라는 장소도 있었어. 선술집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서 해당 지역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았던 건 따베르네였어. 반면 오스떼리아는 숙박을 제공했기 때문에 현지인이 아닌 객지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지. 


18세기 타베르나를 묘사한 그림


(그리고 엔리코는 자신의 고향 페라라 Ferrara에 대한 깨알 같은 자랑을 잊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떼리아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아? 그건 페라라 대성당 옆에 있어. 그렇다면 두 번째로 오래된 오스떼리아는? 볼로냐 중심가에 있어."


다음 볼로냐 방문 때는 두 번째로 오래됐다는 그 오스떼리아를 가봐야겠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내가 방문했던 장소는 전혀 다른 오스떼리아였으니....)  아래는 1465년부터 시작된 역사를 가진 볼로냐의 "오스떼리아 델 솔레(태양의 오스떼리아)".


https://www.osteriadelsole.it/

https://goo.gl/maps/WceHSXwLQCbPtSCXA


친절한 엔리코 덕에 지면이 넘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짧은 이태리어로 저걸 해석하느라 무지하게 수고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아무튼 도대체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또 다음 편에 포스팅하는 것으로 미뤄야 할 듯하다. 비록 볼로냐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떼리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맛있는 걸 먹었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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