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다는 것은 어렵다.
만약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군주는 민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바에는
적어도 증오를 초래하지 않을 만큼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받는 것과 증오를 사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는 확실히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군주가 신하들의 재산이나 아내들을 넘겨다보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 -
구스타브 3세는 스웨덴 한림원을 1786년에 설립하는 등 학문과 예술에 많은 열정을 쏟았던 왕이었다.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했던 군주였던 그는 귀족의 권한을 제한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기 때문에 귀족들의 반감을 샀다. 1775년에 오페라 극장을 건립할 정도로 오페라를 특별히 사랑했던 구스타브 3세가 자신이 그토록 열정을 쏟은 장소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이다. 구스타브의 비극에서 공연예술의 가능성을 최초로 알아본 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외젠 스크리브(1791-1861)로 프랑스 오페라 작곡가인 다니엘 오버(1782-1871)와 합작하여 1833년에 <구스타브 3세 혹은 가면무도회>라는 오페라로 제작했다. 하지만 이는 훗날 탄생하게 될 불멸의 명작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베르디는 구스타브 3세라는 인물에 주목했다. 어쩌면 당시에 빈번했던 암살 미수가 작곡가를 자극했을 수도 있다. 1856년 나폴리에서 왕 암살 시도가, 1858년에는 나폴레옹 3세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다. 흉흉한 시국 아래 이런 도발적인 오페라에 대한 살벌한 검열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애초에 나폴리에서 공연되기로 했던 <가면무도회>는 베르디가 구상한 설정을 거의 모두 바꿔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했다. 이를 놓고 베르디를 지지하는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있을 정도였다. 결국 검열 당국은 베르디에게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창작자는 떠났고, 두 번 다시 나폴리를 위해 오페라를 쓰지 않았다.
베르디의 다음 목적지는 로마였다. 로마 교황의 검열이 없지 않았지만, 베르디도 크게 양보했다. 배경을 17세기 보스턴으로 바꾸고, 구스타브 3세는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로, 실제 암살자 이름인 안카르스트룀을 그대로 오페라 속 배역으로 차용했던 것도 레나토로 변경했다. (현재는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스톡홀름, 보스턴 혹은 제3의 장소로 배경을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타협점을 찾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는 지금까지 무수한 명연과 명반을 남기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오페라에는 관객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공연 예술이 제공하는 스펙터클한 요소 – 점술가의 의식, 한 밤중의 사형터 그리고 화려한 가면무도회 - 가 풍부하다. 뿐만 아니다 선과 악의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남자 역을 노래하는 여성 가수(오스카) 역할은 오페라에 생기를 가져오고, 세 명의 주인공 – 리카르도, 아멜리아, 레나토 – 의 비극은 공연 장소와 참여하는 이들에 의해 매번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가령 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시리즈 연출을 맡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연출가 발렌틴 슈바르츠(1989- )는 2019년 다름슈타트에서 <가면무도회>를 연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세 인물의 심리적인 파멸에 주목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리카르도는 기존의 법과 전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룰을 고수하는 쾌락주의자이며, 레나토는 충성, 의무 및 명예의 원칙에 전념하는 인물, 아멜리아는 도덕성을 잃지 않으려는 신념을 보여준다. 세 인물은 모두 채워지지 않는 관계로 고통받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개입으로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데 실패한다고 한다. 오늘 부산 금정 문화회관 공연에서는 어떻게 인물들이 그려질지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나폴리를 지배했던 부르봉 왕가가 1860년에 함락된 후, 가장 먼저 공연됐던 오페라 중의 하나가 바로 <가면무도회>였다. 한때 우리에게도 서슬 퍼런 검열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 오페라를 아무런 제약 없이 훌륭한 가수들의 목소리와 함께 즐길 수 있다. 극 속에서 인물의 내면과 관계에 주목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열정적이면서도 다채로운 베르디의 음악에 몰입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18세기 스웨덴 왕궁의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되풀이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접근하는 지점은 다를지라도 그 어떤 것이든 좋지 아니한가, 비바 베르디(Viva Verdi)!
사족: 브런치에 글 쓰기 왜 이렇게 불편해졌나요. 저만 그런가요. 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