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이비드라이버 리뷰
우선 한마디로 "미친 영화입니다"
이후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기 전에 감독인 에드가 라이트(1974년 생)에 대해 알고 가시면 좋은데 에드가 라이트는 사실 TV각본가로 출발했습니다. 그 후 그가 만든 드라마가 독창성을 인정받으며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들어오게 되었고 영국의 대표적 영화제작사인 워킹타이틀에서 <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헐리웃에 진출하게 됩니다.
헐리웃에 진출한 에드가 라이트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골수팬들을 양산하게 된 영화 한 편을 연출하게 되는데 그 영화가 바로 <스캇 필그림 vs 더 월드>라는 만화 원작의 영화입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그의 독창성은 빛을 발했지만 스캇 필그림은 지금까지 히어로 영화와는 전혀 다른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보여주며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에드가 라이트의 광팬임을 자처할 정도로 일반 관객과 영화 관계자 모두에게 주목받는 계기가 됩니다.
그 후 손을 댄 영화는 마블의 걸작 <앤트맨>이었지만 제작사와의 불화로 중도하차하게 됩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에드가 라이트는 영화의 각본 대부분을 집필했고 이후 <앤트맨>에서 선보인 다양한 유머 코드가 에드가 라이트의 솜씨임을 짐작케 합니다.
앤트맨에서 하차한 후 여러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에드가 라이트가 드디어 선보인 영화가 바로 이 <베이비 드라이버>입니다. 이 영화는 에드가 라이트가 21살 때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을 들으며 자동차 추격전을 구상한걸 드디어 영화한 작품입니다. (에드가 라이트의 현재 나이 43세)
자~ 그럼 10줄 리뷰를 시작합니다.
1. 이 영화는 범죄 액션물의 탈을 쓴 음악영화입니다.
2. 특히 영화 초반 은행강도 장면에서 나오는 존 스펜서 블루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부터 베이비가 커피를 사들고 애틀랜타 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존 앤 얼의 ‘Harlem Shuffle’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초반 10분짜리 시퀀스는 지금까지 본 어떤 자동차 추격전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잘 만들었습니다.
3. 초반 시퀀스의 탁월함은 <라라랜드>의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영화 <드라이브>와 비교될 수 있는데 드라이브가 배달꾼(드라이버) 주인공의 하드보일드 누아르라면 이 영화는 액티비티 한 범죄물에 가깝습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고 좋으셨다면 <드라이브(Drive, 2011)>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음악이나 분위기, 내용에 있어서 제가 손에 꼽는 작품입니다.
4. <베이비 드라이브>를 극찬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베이비가 모는 자동차가 평범한 스바루인데 이는 현재 헐리웃에 지배적인 자동차 영화 공식을 무너뜨린 형식이며 주인공이 운전하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슈퍼카가 아니라 일반적인 자동차라는 점입니다. 아이템(자동차 or 업그레이드)빨이 아닌 실력 빨로 과연 자동차 영화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극한까지 보여줍니다. 이런 재미는 자동차 영화의 대표적 시리즈인 <패스트 앤 퓨리어스>의 초창기에나 볼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것보다 현실적이고 다이내믹합니다. 주인공의 전설적인 별칭인 '도로 위의 귀신(유령)' 은 그냥 붙여진 게 아닙니다.
5. 액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OST인 ‘Bellbottoms’와 ‘Harlem Shuffle’에 나오는 박자와 리듬을 그대로 액션 또는 장면과 연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가 막히게 이어지며 심지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들이 대사와 상황과 어울려 엄청난 시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초반에 음악영화라 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6. 그래서 불만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같이 나오는 노래와 음악의 선곡 이유, 가사의 내용도 굉장히 중요한 영화의 요소인데 자막에서 흘러나오는 건 오로지 대사뿐입니다. 주인공인 '베이비'가 사랑에 빠지는 '데보라'와 대화를 나눌 때 흘러나오는 음악과 상황도 그렇고 중간중간 '베이비'가 노래하거나 듣는 음악들도 모두 영화의 흐름에 알맞은 딱 가사를 가지고 있으며 때론 이 음악이 다음 내용에 무엇이 연결될지도 예고하기도 합니다. 영어를 알아듣는 분들은 더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7. 배우들의 연기적 완성도나 서로의 호흡도 그냥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선 주인공으로 나오는 앤설 에거는 <다이버전트> 시리즈에선 눈에 띄지 않았으나 <안녕, 헤이즐>에 출연하며 라이징 스타가 되었으며 여주인공 릴리 제임스는 <신데렐라>,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영화에 출연하며 이미 많은 남성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케빈 스페이시, 제이미 폭스, 존 햄, 에이사 곤잘레스는 인지도나 연기에 있어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또한 여기 출연한 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오마주하고 패러디하며 그것을 발견한 관객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천재적인 각본과 연기의 완벽 호흡이라 할 수 있을 정도.
8. 다시 반복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저 역시 이 영화의 주된 음악 컨셉이 마음에 들며 특히 1920-30년대 재즈와 1950-70년대의 모타운 훵크, 그루브 한 리듬의 재즈, 1980년대 록음악, 프로그래시브 음악들을 미친 듯이 사랑하기에 시종일관 즐겁게 봤습니다. Googie Rene의 'Smokie Joe's La La', Carla Thomas 'B-A-B-Y', Kashmere Stage Band의 'Kashmere', Dave Brubeck의 'Unsquare Dance', Focus의 'Hocus Focus', Martha Reeves의 'Nowhere to Run', Young MC의 'Know How' 등등등... 진짜 OST의 퀄리티 엄청납니다.
9. 결말부에 와선 이역시 기존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다시 환기시키는 장치가 등장합니다. 어쩔 수 없이 범죄자들을 운전으로 이동시키는 배달꾼(Driver) 역할을 했던 베이비에게 있어 최적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저는 이 부분에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감독은 이 부분에 있어서 진짜 고민을 많이 한 듯한데 흥행되고 잘되면 시리즈로 연결되는 프랜차이즈 콘텐츠를 이렇게 단 한 편으로 마무리시킬 거라는 의지가 였보여서 정말 좋았습니다. 농담을 하자면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일 줄이야...
10. 가장 좋았던 점은 영화에 장애인이 등장하나 그냥 재미거리나 놀림 요소 거나 너무 진지해지거나 하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녹여 그들을 존중해 줬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양아버지와 수화로 대화하는 장면도 그렇고 주인공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 그 묘사가 굉장히 탁월합니다. 쉽게 버려지는 캐릭터들도 모두 잘 살렸으며 단지 단역이었던 우체국 직원, 군인, 흑인 할머니 등등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도 좋았습니다.
PS....
*
여러모로 만족한 영화입니다. 올해는 이만큼 극찬할만한 영화가 없어서 많이 아쉬워했는데 이 영화는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블루레이가 나오면 따로 소장해서 보고 또 보고 음악 듣고 시퀀스 분석하고 배우들 연기 분석하고 하면서 두고두고 죽을 때까지 볼 것 같네요. 사운드 빵빵한 영화관에서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
IT(그것) 보고 좋으셨으면 이 영화도 추천드립니다. 아니 강추+초강추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영화를 너무 만족하고 봐서 설레발 일 수 있으니 제 추천의 반만 기대하고 보세요. ^^;;
*
아는 만큼 보이고 들은 것만큼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여러 영화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가 넘치고 음악 선곡은 거의 퍼펙트 합니다. 감독의 덕후력을 따라갈 수 있다면 아마 저처럼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극찬하실 겁니다.
*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인공 '베이비'가 말하는 대사 중 3-40%은 음악의 제목, 가사 내용, TV와 영화의 대사들입니다. 이것도 찾는 재미가 있으니 잘 찾아보세요.
*
여담이지만 영화 포스터에 있는 컬러는 핑크가 아니라 코랄(산호색) or 코랄 핑크입니다. 코랄의 어원인 산호는 많은 나라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재능을 내린다고 믿어집니다.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베이비'인 것과 사실 잘 어울리는 색인 거죠. 산호는 그걸 소유한 자의 광기를 치료하고 지혜를 주지만, 부러질 시에는 그 힘을 잃는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주술적 힘은 영화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지는데 '박사'로 나온 케빈 스페이시는 '베이비'와 함께 일하는 것에 이러한 주술적 힘(행운의 부적이라 함)도 가지고 있다고 직접 언급합니다. 포스터의 주조색이 그냥 나온 건 아니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