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길”, "혼자 걷지 않는 길"
바다 속에 길을 내다
나는 평생 바다 속에 길을 냈다.
항로 준설. 선박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바다 밑을 파서 길을 내는 일이다. 부산항은 24,000TEU 컨테이너선이 입출항 할 수 있도록 수심 -18m, 폭 800m, 길이 8km의 항로가 건설되어 있다. 300,000톤급 유조선은 -27m의 수심이 필요하다. 이런 길들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세계 수출 6위, 수입 8위 교역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99%가 선박과 항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2024년 부산항은 약 2,440만 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기록하며 세계 항만 중 7위를 차지했다. 무역의 생명줄이 수면 아래 조용히 숨어 있는 것이다.
보통 건설공사는 준공하면 실체가 눈에 보인다. 도로가 나타나고 교량이 세워지며 활주로와 공항이 생긴다. 사람들이 보고 느낀다. 그러나 바다 속 길은 다르다. 바다 수면은 건설 전과 후가 같다. 음향 측심기와 수심 측정기로 측량해야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 숨어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실체. 그것이 바다 속 길의 본분이다.
나는 항로를 건설하며 깨달았다. 인생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믿음의 길, 희망의 길, 성찰의 길, 인내의 길, 용서의 길.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고독과 인내, 땀과 눈물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길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길이 있기에 우리는 삶을 지탱해갈 수 있다.
인생의 여러 길
인생은 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길을 걷는다. 자식의 길, 학생의 길, 직업인의 길, 부모의 길, 노년의길. 삶은 여러 길의 연속이다.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좁고 굽어 있으며, 때로는 가파른 언덕도 있고, 때로는 험한 산과 골짜기도 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면 아득하다. 가야 할 길은 불투명하게 안개에 싸여 있다. 때로는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길 위에서 길을 잃고,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은 대체로 세 가지다.
높은 곳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권력과 명예, 부와 성취를 향한 가파른 오르막길.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선이 따라오는 화려한 길이다.
평범한 일상의 안락을 추구하는 길이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무난하게 흘러가는 중간 지대의 길. 특별할 것은 없지만 평온함이 있다.
낮고 좁은 길이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길. 눈에 잘 띄지 않고 잠잠하지만, 그 길 위에 참된 평안이 있다.
그러나 인생의 길은 이 세 갈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길은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젊은 날에는 생존의 길을 걸어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한 절박함의 길이다. 배가 고프면 철학도 이상도 사치가 된다. 성공의 길도 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상의 길은 경쟁이 심하고 외로운 길이다. 관계의 길도 있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의 유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다. 따뜻한 온기가 있지만, 이별의 아픔이 늘 함께한다.
탐구의 길도 있다. 지식과 깨달음을 향한 끝없는 여정의 길. 창조의 길도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외로운 발걸음의 길이다.
우리는 순간마다 다른 길을 선택하고, 다른 길을 포기하며, 그 선택과 포기의 흔적들을 남긴다.
My Way와 나의 길
1971년 6월 13일, 프랭크 시나트라는 55세의 나이로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My Way」는 인생을 표현한 노래였다.
"And now, the end is near /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이제 끝이 가까워졌고, 나는 마지막 막을 대면한다고 그는 노래한다.
"Regrets, I've had a few.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후회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말할 가치도 없다고 한다. 남의 기준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노래했다.
"I did it my way."
그는 내 방식으로 해냈다고 노래했다. 그의 목소리는 자부심과 의연함으로 가득했다. 강인한 자아의 선언이었고 개인 의지의 당당한 승리였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 삶을 회고하며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에 책임지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나의 길은 그것과 달랐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오름 직한 동산이 되길." 이란 노래를 부르며 그 마음으로 살아왔다. 웅장하고 우뚝한 산이 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든 다가와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동산이 되고 싶었다.
시나트라의 길이 '나의 방식'으로, 나의 길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루어졌다. 바다 속 길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듯이, 내 인생의 길은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의해 인도된 것이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돕는 손길
바다는 태풍이 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변덕이 심하다. 그러나 태풍과 파도에도 바닷속 항로는 잠잠히 자리를 지킨다. 내 인생의 길도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잠잠히 지켜졌다. 폭풍우 같은 시련이 와도, 인생의 광풍이 몰아쳐도, 그 길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모든 길 위에 “돕는 손길”이 존재했었다. 젊은 날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던 그 험한 길에도, 성공을 위해 밤낮없이 달려갔던 그 바쁜 길에도, 좌절과 시련으로 주저앉고 싶었던 그 어려운 길에도 그 손길이 함께했다.
내가 평생 바다에서 행한 일과 그 길들이 내 실력과 노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듯, 내 인생의 길도 그 손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내 노력으로 만들어진 길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예비된 그 손길의 길이었다.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고, 지칠 때마다 새 힘을 주고, 길을 잃을 때마다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준 “보이지 않는 손길”을 만났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돕는 손길”이었다. 그 길을 걸으며 흘린 땀과 눈물, 웃음과 기쁨이 있었고 그 길 위에서 큰 사랑을 경험했다.
I did it my way
나는 시나트라의 'way'를 조금 다르게 읽는다. '방식'이 아니라 '길'로 읽는다. 방식은 일련의 선택과 판단을 말한다. 하지만 길은 인생 전체의 여정을 의미한다. 시나트라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자존을 노래했다면, 나는 내 인생의 길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이 늘 함께 했음을 느낀다.
바다 속 항로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이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우리의 영혼을 인도한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비로소 집에 가는 길을 찾게 된다.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좁고 낮은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용히 그 길 위에서 내 작은 삶이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았다.
내가 걸어온 길은 감사한 길이었다. 권력이나 명예의 길은 아니었지만 보람을 느끼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전적으로 “돕는 손길”과 함께한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했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 달았다.
인생 길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군가는 출세의 길을 이르렀고, 누군가는 안락한 평지의 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혼돈의 길 위에서 자유를 느낀다. 인생 길 위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한다. “돕는 손길”이 내 길을 예비하고, 인도하고, 지켜 주신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God did it my way."
평범한 일상의 길일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의 길일 수도 있다. 어떤 길이든 중요한 것은 혼자 걷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들의 발걸음에 “돕는 손길”이 동행하는 걸음이 되기를 바라며, 내가 걸어온 길이 바로 그분이 예비하신 길이었음을 감사함으로 고백한다.
*. 평생 바다 속에 길을 내온 해상 토목 엔지니어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