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의 결단
명함
사십여 년 동안 이름과 직책을 달고 살았다.
이제 그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 낯선 자유가 찾아왔다.
그 자유는 처음엔 어색했고, 나중엔 감사였다.
직함 없이, 보고할 대상 없이, 오롯이 나로 사는 삶.
은퇴는 끝이 아니라, 자유를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은퇴, 낯선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사십여 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국영기업에서, 대기업에서, 그리고 글로벌 외국 기업에서.
현장 근무 시에는 해가 뜨기 전 일어나 밤늦게 일을 마쳤다.
생산이 멈추면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고장 난 기계(선박) 앞에서 새벽을 맞았고,
입찰서를 번역하고 계약서를 검토하며 밤을 지새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투쟁이라 했다.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 자유라 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에게 자유란, 물질의 속박과 두려움의 굴레를 벗는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씨름한 사람이었다.
형식에 갇힌 신앙을 거부했지만, 살아계신 창조주를 향한 갈망은 놓지 않았다.
그의 자유는 신 없는 자유가 아니라, 신 안에서 얻는 참된 자유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는 도시에서 자유롭게 걷고 싶어요.”
그에게 자유란,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평범한 행복이었다.
두 작가의 말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였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성경 요한복음은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은퇴 후 나는 이 말씀 앞에 다시 섰다.
명함도, 직함도 사라졌지만,
아침에 묵상을 하고,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했다.
시간은 내게 주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유는 낯설었다.
자유롭지 못했던 날들
해양 토목 엔지니어로 일하던 시절,
나는 바다 위에서 길을 냈다.
파도를 가르고, 해로를 개척하며, 해상 풍력 건설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의 해상 풍력 건설의 개척자라 불렸지만,
내 마음은 늘 사슬에 묶여 있었다.
외국 기업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그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신기술을 추적해야만 했다.
주말에도 메일을 확인했고,
휴가를 떠나도 노트북을 챙겼다.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프로젝트 입찰서와 계약서를 검토하고,
공사 일정을 조율하며, 안전사고 리스크를 체크했다.
실패의 그림자가 늘 내 어깨 위에 있었다.
그 두려움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잔차키스가 말한 “두려움의 속박”이 바로 그것이었다.
교회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다.
주일마다 예배와 모임이 이어졌다.
선교사를 후원하고, 탈북민을 상담하며, 쉼 없이 달렸다.
섬김이 은혜였지만, 때로는 짐이 되었다.
길과 진리를 알았으나, 자유롭지 못했다.
한계 안의 선택
은퇴 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에 에세이를 쓰고, 주 1회 시니어 뉴스레터를 발행했다.
“AI와 시니어 라이프”라는 전자책을 출간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고, 주제도, 마감도, 형식도 내가 정했다.
이것이 시간의 자유였다.
나는 여전히 컨설턴트로 일한다.
해상 풍력 건설의 지식을 나누고, 기술 보고서를 집필하며, 후배를 돕는다.
하지만 이제는 일하는 시간도, 방식도 내 선택이다.
회사에 속했던 시간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그것이 현실적 자유였다.
일주일에 3번 헬스장에 간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심장질환과 노후질병을 관리한다.
운동은 의사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내 삶의 루틴이다.
하루키가 말했다.
“달릴 때만큼은 내가 자유롭다는 걸 느낀다.”
그것이 신체적 자유였다.
책을 읽고 사유하며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승인을 기다릴 필요도, 보고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정신의 자유였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직함에서, 명함에서,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이제 나는 창조주 진리의 궤도를 따라 걷는다.
자유는 선택이었다.
섬김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될 때, 그 안에 진짜 자유가 있었다.
선교도, 코칭도, 상담도 이제는 부담이 아니라 은혜다.
완전한 자유는 없었다.
심장 약을 복용하고, 정기 검진을 받으며,
건강 한계의 틀 안에서 살아야 했다.
그 한계 안에서도 감사할 것을,
기도할 것을, 기뻐할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완전한 자유는 오직 그분의 임재 안에만 있다는 것을.
선택으로 사는 삶
은퇴자의 자유는 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건강의 제약이 있고, 관계의 현실이 있다.
나이의 벽이 있고, 체력의 감퇴가 있다.
그러나 선택할 자유는 있다.
아침에 무엇을 할지 내가 정하고,
누구를 만날지 스스로 결정하며,
무엇을 쓸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한다.
그 단순한 행위들이 자유의 본질이다.
이제 나는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인생 후반전의 항로를 글로 써나간다..
에세이를 쓰고, 뉴스레터를 발행하며,
해상 풍력의 지식을 나눈다.
탈북민 청년에게 희망의 길을 코칭한다.
이 모든 일을 나의 시간에, 나의 방식으로 한다.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자유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공감하는 말이다.
나는 여전히 건강과 싸우고, 노화와 싸운다.
그러나 그 싸움조차 자유의 일부다.
하루키는 말했다.
“난 그저 글 쓰는 게 즐겁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 좋다.”
이제 나도 그렇게 기대한다.
하늘의 섭리와 리듬 속에서 조용히, 내면을 채우며 산다.
완전한 자유는 없다.
그러나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다.
명함 없는 삶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직함 없는 하루가 외롭지 않다.
자유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나는 선택한다.
건강하게 글을 쓰며 살기를.
나눔과 섬김으로 살기를.
감사와 사랑으로 살기를.
자유는 속박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다.
주어진 한계 안에서 의미 있게 선택하며 사는 삶이었다.
그 선택의 끝에 창조주의 참된 자유가 있었다.
오늘도 그분의 볕을 쬐며 힘을 얻고,
이 자유의 길 위를 걷는다.
이것이 은퇴자가 선택한 자유이며,
인생 후반전의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