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일과 취미가 만날 때 온다
일과 취미
일과 취미의 경계는 없다. 그 경계를 무너뜨리는 순간, 직장인은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나는 25년간 유럽인 매니저 P와 함께 일하며 이 원리를 목격했다. 그는 매립지 흙을 만지며 명나라 도자기를 읽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일을 생계의 의무로, 취미를 일상의 낙으로 생각한다. 내 동료 P는 달랐다. 나는 두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삶을 그를 통해 지켜봤다.
현장에서 흙을 읽다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 매니저였던 P와 나는 수없이 미팅을 같이했다. 싱가포르 밤 비행기를 타고 온 그는 새벽 인천공항에 내렸다. 호텔에서 만나 우리는 미팅 장소로 향했다.
서울과 경인지방에서 대기업 건설사와 오전 두세 개 미팅은 기본이었다. 많을 때는 하루 여섯 개를 소화했다. 차량 이동 중에도 그는 노트북을 열어 유럽 본사와 시차를 맞춰 업무를 처리했다.
나는 동행하며 그의 시간 관리를 배웠다. 그에게 일은 감각이 아니라 수학이었다. 가장 큰 자산은 약속 이행으로 쌓은 신뢰였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일과 삶은 시간의 약속이다".
그의 스케줄은 빡빡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시간관리와 업무처리의 핵심을 읽었다. 그것은 속도가 아니었다. 일의 핵심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이었다.
현장에 답이 있었다.
인천 송도 매립 현장에서 나는 그의 진면목을 봤다. 고객 사무실로 향하려던 나에게 그는 "현장부터 갑시다"라고 했다. 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매립지 위에서 그는 흙 한 줌을 쥐었다. 손으로 입자를 비비고 점성을 느꼈다. 나는 그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봤다. 흙의 입자 크기를 추정하는 것이었다.
"이 토질이면 12,000마력 준설선 시간당 생산량이 얼마나 되나?"
나는 현장 경험을 떠올렸다. "약 1,500㎥이다."
그는 흙 입자 크기, 함수비, 파이프라인 길이를 머릿속에서 계산했다.
"이 정도면 시간당 최고 2,500㎥를 생산할 수 있다."
나는 그 순간 놀랐다. 흙을 비비고 생산성을 계산하는 것이 일의 준비였다. 이후 그는 현장에서 확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설명했다. 고객들은 그의 전문성에 신뢰를 보냈다. 나는 그 신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았다. 답은 현장의 흙에 있었다.
도자기를 빛을 읽다
출장 마지막 날, 일과를 끝내고 우리는 종종 인사동 골동품 가게로 향했다. 흙을 비비고 생산성을 계산했던 바로 그 손이 이번엔 도자기를 어루만졌다. 진열장 밖의 도자기를 보며 그는 조용히 말했다.
"명나라 후기 작품이다. 백자 바탕에 밝고 옅은 청색이 있네."
주인이 놀라 다른 도자기를 가져왔다. 나는 그의 손끝을 지켜봤다. 도자기의 실금과 빛을 읽었다. 표면을 쓰다듬으며 실금 간 자국에서 당나라 세월을 헤아렸다. 그는 가격을 묻지 않고 역사와 가치를 먼저 말했다. 주인은 그의 깊은 식견에 감탄했다.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에게 취미는 단순한 소일이 아니었다. 또 다른 영역의 연구였다.
일상이 전문가다
나는 25년 동안 P의 업무 생산성과 삶의 프로세스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의 전문성은 단순한 업무 기술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태도, 시간 관리, 끊임없는 학습이 만들어낸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일은 빵을 가져오고, 취미는 삶을 느끼게 한다."
이 한 마디가 그의 인생을 설명했다. 그는 일을 통해 가정을 지켰다. 취미로 삶을 풍요롭게 했다. 나는 그 균형을 부러워했다.
싱가포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거실에는 조각과 도자기등 골동품이 전시되었다. 벽에는 동양화가 걸렸다. 작은 박물관 수준이었다. 전시된 골동품은 그가 여러 국가에서 직접 발로 뛰어 수집한 것이었다.
그의 서재에 꽂힌 책들을 보며 나는 알았다. 그것은 장식이 아니었다. 모두 실제로 읽고 공부한 책들이었다. 그는 언제나 호기심이 있었다. 출장 중에도 박물관을 찾았다. 비행기 안에서 항공사 잡지의 골동품 기사를 읽으며 현재를 살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배웠다.
"퇴직 후의 취미는 너무 늦다."
이 한 마디를 들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삶이 퇴직 후를 기다리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일할 때 이미 예술의 세계를 알고 있었다.
하나의 손 두 가지 감각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진정한 차이는 오직 시간 사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출장을 핑계로 관광을 다닌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게임을 한다.
전문가는 현장의 흙을 만지고 일의 생산성을 추정했다. 내가 그의 곁에서 본 것은 익숙한 전문가의 손길이었다. 그가 매립지 흙을 만질 때 이미 명나라 도자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현장 흙에서 생산량을 계산하는 것과, 도자기에서 역사를 읽는 것은 같은 일이었다. 나는 그 작은 차이가 10년 후, 20년 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은퇴 후 유럽에 거주하며 소장품을 관리하고 전시한다. 나는 지금도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현실적인 생산성과 그 눈에서 피어난 숭고한 예술이 하나로 만나 완성된 삶을 기억한다. 그것은 나에게 길잡이가 되었다.
시간 사용 결과
생산성과 취미. 기술과 예술. 일과 삶. 나는 이 두 단어를 하나로 연결시킨 인생을 목격했다. 그것이 직장인의 또 다른 자유였다.
진정한 자유는 퇴직 후에 오지 않는다. 지금 일하는 이 순간, 두 세계를 생활화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일과 취미 생활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그를 통해 알았다. 그것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었다. 일상의 시간 사용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