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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의 충돌

대륙문화와 해양 문화의 차이

by 더웨이

글자와 정 사이

계약서는 차갑다. 사람의 정은 따뜻하다. 나는 25년 동안 그 둘 사이를 사이를 오갔다. 한 회사는 종이에 기록된 글자를 믿었다. 다른 회사는 이름 석 자와 회사 간판을 믿었다.


외국 기업 사람들은 말했다. "계약서에 없다." 한국 대기업 사람들은 서운하게 물었다. "우리 회사를 못 믿느냐?" 나는 그 사이에서 통역을 했다. 언어가 아니라 문화를 번역했다. 계약을 믿는 해양 문화와 관계를 믿는 대륙 문화를 서로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바다가 만든 논리

해양문화 사람들은 위험을 전제로 살았다. 폭풍, 암초, 난류, 해적등 바다는 불확실하다. 그들은 사람 대신 시스템을 믿기로 했다. 계약서에 설계 변경, 불가항력, 환율 변동, 선박 대기료까지 경우의 수를 미리 집어넣었다.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문장과 숫자로 자기 살 길을 기재했다. 이것이 해양 문화의 계약과 협상 방식이다.


땅이 만든 신뢰

대륙 사람들은 다르다. 산과 강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논과 밭을 경작하고, 품앗이와 두레로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어제 빚을 못 갚았어도, 저 사람은 평생 같이 살아온 이웃이다." 믿을 수 있다.


관계가 보증이었다. 세월이 증명했다.

한국 기업 문화는 이 대륙적 감각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인간관계, 우정, 의리를 자산으로 여긴다. 관계를 잘 맺으면 외국기업 직원과의 우정은 남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대륙 문화의 신뢰는 해양 문화의 계약서 위에서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협상 테이블의 충돌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두 문화가 정면으로 부딪친다.

외국 기업은 항상 계약서 초안을 먼저 보낸다. 그게 그들의 첫 번째 무기다. 지급 보증, 지연 배상, 해지 조항, 분쟁 해결 절차. 수십 년 누적된 분쟁 사례와 판례가 계약조항 하나하나의 행간에 숨어 있다.


한국 기업은 그 계약서 초안을 받아 들고 말한다. "이번 프로젝트 잘되면, 다음에 더 큰 거 같이 합시다." 이 말의 뜻은 "우리를 인간적으로 믿어 달라. 우리는 관계가 중요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은 관계나 정을 수치화해 주지 않는다. 칼자루는 이미 초안을 쥔 쪽이 잡고 있다.

한국 기업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수정하며 싸움을 시작한다.


남해안에서 벌어진 일

남해안 항만 프로젝트에서 충돌했다. 해저 지반이 설계와 달랐다. 암반층이 나왔다. 누가 봐도 설계 변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국 기업은 “갑”으로 말했다. "일단 공사를 계속합시다.


기간 연장과 추가 공사로 보상하겠다." 관계를 우선하는 선택이었다. "우리를 믿어라. 나중에 보상하겠으니 일을 계속하라는 "라고 한다. 외국 기업은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설계 변경 인정이 먼저입니다. 추가 공사는 별도 계약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들은 정과 우정보다 계약서를 우선적으로 했다.

협상은 한 달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계약서 조항은 한국 기업이 불리했다. 결국 설계 변경과 추가 공사는 분리하기로 결정됐다.


그 뒤 외국 기업은 추가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선박을 철수시켰다. 추가 계약 이행이 불안하고 리스크 때문에 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믿은 쪽에는 배신감이 들었다. 계약을 믿은 쪽은 아쉬움만 남았다.


차이를 인정해야 산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며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봤다. 해양 문화는 "계약서가 말한다."는 전제로 움직인다. 대륙 문화는 "계약서 외에 관계가 있다"라고 믿는다.


글로벌 해양 프로젝트의 기반은 해양 문화의 논리 위에 세워져 있다. 한국 기업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문화의 차이를 정확히 문자로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관계와 우정을 잘 다루는 민족이다. 그건 강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강점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계약 조항으로 바꿔서 기록해야 한다.

정을 계약서 안으로

한국 기업이 바꿔야 할 것은 단순하다. 정과 우정 관계를 믿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 믿음을 계약 조항으로 적어 넣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성과기준과 장기 파트너십 조항

1 차 프로젝트 성과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2차·3차 프로젝트에 대해 우선협상권을 부여한다.


- 지역 사회 및 관계 자산 반영 조항

인허가, 지역 협의, 민원 대응 등한국 파트너가 담당하는 보이지 않는 ‘관계’을

명시적 비용과 성과로 평가하도록 규정한다.


- 불가항력 리스크 공유 조항

전염병, 전쟁, 기상 등 예측 어려운 리스크가 발생할 경우

양측이 일정 비율로 비용과 기간을 분담한다는 원칙을 미리 박아 둔다.


우리가 늘 말로만 하던 “이번에 서로 양보해서 잘 넘기면, 다음에 더 크게 간다”는 약속을 회식 자리 건배사에서 끝내지 말고 계약서 안에 넣는 기술이 필요하다.


계약서 초안 먼저 작성

한국 기업은 "남이 써준 계약서 수정하는 회사"가 아니다. “자기 문화와 강점을 반영한 계약서를 먼저 내미는 회사"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설계 변경, 추가 공사 보상, 지체상금 상한, 예외 사유, 분쟁 해결 절차, 장기 파트너십 옵션.


이 항목들을 한국이 먼저 설계하고, 그 안에 한국식 인간관계와 우정의 힘을 계약 조항으로 녹여 넣어야 한다. 그래야 해양 문화의 밀어붙이는 계약 논리와 대륙 문화의 관계 자산이 서로 윈윈 하게 된다.


사람의 정으로는, 계약서를 못 이긴다

나는 지금도 두 문화의 경계에 서 있다. 관계의 정과 시스템, 사람의 정과 계약서의 문장 사이.

이제 초기 단계인 해상 풍력 건설 프로젝트 시장에서 관계라는 정으로 이길 수 없다.


‘갑”이라는 지위로는 계약을 유리하게 이끌고 나가기 어렵다. 한국 문화의 특징을 정교하게 계약서 행간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그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만이 협상 테이블에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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