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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Oct 21. 2021

그놈이 그놈, 그 회사가 그 회사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 1화

“저, 다음 주부터 출근해요.”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휴학 한 번 안 하고 바로 취업한 건,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어른이라면 스스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절실하게 준비했다. ‘나는 뭘 좋아하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거지?’ 같은 건 고민 자격도 얻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질문이 다시 나를  끌어당겨 그 앞에 주저앉힐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회사란 곳은 참 특이한 모임 같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월, 화, 수, 목, 금,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다른 시간에 퇴근한다. 월급도 모두 다르다.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레고 블록처럼 팀이 조립된다. 안 맞아도 억지로 끼워 맞춰진다. 내가 지금 적정한 월급을 받고 있는지는 절대 알 수 없다.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연봉을 털어놓으면 그제야 ‘아, 원래 다 이렇게 받는가 보다’ 지레짐작할 뿐.  

월급 받을 통장을 만들어야 한대서 은행에 갔더니 창구 직원이 왠지 지나치게 상냥하다. 월급통장을 개설하고 칫솔 치약 세트를 받았다. 점심 먹고 열심히 양치하라는 건가? 월급통장 하나 개설했을 뿐인데 여행 가면 환율도 우대해준다고 하고, 1년 안에 1,000만 원 모으기 같은 목돈 굴리기 적금 계좌도 추천한다. 나 대신 자금 계획도 세워주고 여행 비용까지 챙겨주다니. 이제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정하기만 하면 되겠네? 


이참에 적금을 하나 들어도 나쁠 것 같진 않다. 뭐,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저축 금액을 쪼개 통장만 세 개를 만들었다. 혹시 하나를 깨서 야금야금 먹어버릴 수 도 있으니까. (역시 무리한 계획이었다. 하나는 중도해지했다.) 1년에 1,000만 원을 모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회 초년생은 그래야 한다니까. 


초년생의 때를 벗기도 무섭게 매년 위기가 찾아왔다. 그사이 네 번의 위기를 버텨냈다. 일 자체가 지독하게 힘들어서 싫은 건지, 아님 내가 이 일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일이 주는 기쁨보다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질 때쯤 회사를 나왔다.  


출근하는 지하철도 싫고, 같이 일하는 과장님도 싫고, 야근 후 지겹게 타는 택시도 싫고…. 5년 동안 즐겁게 일한 기억도 많았는데 어째서 일기장엔 죄다 싫은 것만 적혀 있는지!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또 피했더니 어느새 회사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독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고, 그 회사가 그 회사’라는 말처럼.


“네, 평일 낮에도 괜찮아요.”


평일 낮에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김파카 인스타그램 @kimp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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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계속 그리는 용기 


첫 번째,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독립

0화 ) 예비 퇴사자의 일기

1화 ) 그놈이 그놈, 그 회사가 그 회사  

2화 ) 아이쿠, 이 길이 아닌가 

3화 ) 이렇게 살기는 싫어서 

4화 ) 여행을 떠나 쓴 일기 

5화 ) 인디밴드가 만드는 음악처럼 


두 번째, 월급 말고 돈 좀 벌어보려다가

6화 ) 퇴사의 맛 

7화 ) 돈을 버는 네 가지 방식 

8화 ) 초심자의 행운 

9화 ) 내가 좋아하는 일이 돈이 안 될 때 

10화 ) 자꾸 신경 쓰여, 남의 시선 

11화 ) 올해도 찾아왔어요, 슬럼프 

12화 ) 불안 덕분에 무사히 도망칩니다 


세 번째,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기

13화 ) 아, 난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14화 ) 그림으로 먹고사는 방법 

15화 ) 나만의 스타일, 대체 그게 뭔데? 

16화 ) 구독자가 늘어나는 과정 

17화 ) 내가 원하는 성공의 의미 

18화 ) 이상하고 매력 있는 그림의 세계 

19화 ) 먹고살기 중간점검 

20화 ) 취미와 직업을 구분하기 

21화 ) 나 이제 좀 알 것 같아! 


네 번째,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소신껏 길을 걷는 법

22화 ) 아직 바닥을 안 찍었나 봐? 

23화 ) 바닥을 딛고 일어나는 법 

24화 ) 계획보다 중요한 건 루틴을 잡는 것 

25화 ) 나의 결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26화 ) 첫 작품이 망한 것 같은 작가들을 위한 조언 

27화 ) 좋은 피드백과 나쁜 피드백을 구분하는 방법 

28화 ) ‘이것’을 모으면 오리지널리티가 생긴다

29화 ) 어깨에 힘부터 빼고

30화 ) 10년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필로그 어차피 언젠가는 독립해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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