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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나연 Jul 15. 2021

프시케 신화로 읽는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

오늘은 의외로 <죠죠의 기묘한 모험> 본작보다도 한 발 먼저 한국에 정발된 스핀오프 외전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이하 <루브르>)를 리뷰해본다. 얼마 전 누군가 만화의 한 장면을 크롭해 올린 트윗이 알티되어 본 적이 있는데, 그걸 통해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17세 로한이 첫사랑 상대에게 저렇게 달콤한 말을 하고 있다니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루브르>의 주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열화당 출판사에서 정발한 <루브르>는 종이의 질도 인쇄나 제본 상태도 모두 만족스럽지만 단 하나,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아라키 히로히코 작가 본인의 인터뷰를 빼고(대체 왜?) 그 대신 역자의 해설을 넣었는데, 그것도 심지어 일본어 원서처럼 세로쓰기 형식으로 넣었다. 기가 차고 코가 찬다. 한국 출판업계의 근본을 뒤틀어놓는 사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해설을 읽는 걸 워낙 좋아하는 탓에 수십 배의 시간을 들여서 어렵사리 읽었다. 다행히 건질만한 정보가 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처음 이 만화를 사게 된 계기였던 아래의 장면이 사실은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유명 조각상을 오마쥬한 패널이었다는 사실. 우측 사진이 바로 그것. 안토니오 카노바가 조각한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다.

(좌)아라키 히로히코,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 2012 (우) 안토니오 카노바,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 1793

아라키는 에로스(큐피드)의 위치에 남성 화자인 키시베 로한을, 프시케의 위치에 여성 조연인 후지쿠라 나나세를 배치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많고 많은 루브르의 명작들 중에서 아라키가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시케> 조각상을 선택해 만화에 옮겨놓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를 만화 속 로한의 이야기와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선 우선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남편으로 맞았으나 남편 에로스는 "절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질투 많은 언니들의 꾐에 넘어간 프시케는 어느 날 깊은 밤 촛불을 켜서 남편의 맨얼굴을 훔쳐본다. 이를 알아차린 에로스는 화를 내며 프시케의 곁을 떠나고, 후회하던 프시케는 에로스를 다시 만나기 위해 비너스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받게 된다. 비너스가 프시케에게 내린 마지막 시련은 지하 세계로 가서 페르세포네에게 '아름다움'을 받아 상자에 넣어오라는 지시였다. 페르세포네는 "상자를 절대 열어보아선 안 된다"라는 금기와 함께 프시케에게 아름다움을 나누어준다. 하지만 프시케는 호기심과 아름다워지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안에 있었던 것은 지하 세계의 '잠'이었고, 프시케는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진다. 에로스는 시련을 거친 프시케의 진실된 마음을 깨닫고 프시케를 잠에서 깨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림의 구도 상으로는 남캐 로한이 에로스고 여캐 나나세가 프시케에 위치해있지만, 스토리 상으로 따져보았을 때는 정 반대다. 프시케의 역할을 맡는 것이 로한이고 에로스의 역할을 맡는 것이 나나세다. 

17세 로한의 첫사랑인 나나세는 신화 속 에로스와 마찬가지로 어둠에 속한 자다. 로한이 어릴 적을 회상하는 과거 파트에서 나나세는 항상 어둠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어둠 속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어둠 속으로 흡수당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어울린다. 이 시점에서 로한은 결코 나나세와 같이 캄캄한 배경 안에 위치하는 법이 없다. 위 이미지 첫번째 패널에서는 로한이 있는 문 안쪽과 나나세가 달려나가는 문 바깥을 먹칠로 철저하게 분리해놓고 있을 정도다. 나나세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사실은 <루브르> 만화의 핵심 소재인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의 모델이라는 반전을 생각해보면 아라키가 복선을 초반부터 꼼꼼하게 잘 깔아놓았다고 보아야겠다.

프시케는 호기심을 못 참고 남편 에로스의 정체를 알아내선 안 된다는 금기를 깨트렸기에 징벌을 받았다. 로한의 경우는 어떨까. 로한의 스탠드 '헤븐스 도어'는 사람을 책으로 만들어 그 사람이 일평생 경험한 것들을 활자로 읽어내는 능력이다. 낯선 연상의 여인 나나세가 어째서 이토록 서럽게 울고 있는지 궁금했던 로한은 반사적으로 능력을 발동했으나 끝내 그것을 펼쳐 읽어보지는 않았다. 눈물의 정체, 나아가 나나세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로한은 나나세를 향한 연심을 표출하고자 나나세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려서 세상에 공개하려 했다. 원고는 나나세가 파괴하고 말았지만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원고가 공개되어 세상의 빛을 보았더라면 어둠에 속한 자인 나나세의 정체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로한 역시 프시케와 마찬가지로 금기를 위배하는 셈이 된다.

로한이 어릴적 잠깐 지냈던 외할머니댁을 묘사한 작품 초반은 추억이 가득한 노란색 컬러가 지배적이다. 로한이 파리에 와서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작품 중반은 이색적인 분홍색 컬러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림이 보관된 Z-13 창고로 향하는 문을 연 순간부터 돌연 파란색으로 색채가 바뀐다. 창고의 이름마저도 가장 마지막 알파벳에 불길한 숫자 13이 붙어 의미심장한 가운데,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난색에서 차갑고 정적인 한색으로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거꾸로 뒤집어진 것은 현재 로한 일행이 향하고 있는 장소가 프시케가 시련에 임하기 위해 방문했던 지하 세계를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키는 로한 일행이 지하 창고 계단을 내려가는 걸 묘사하는 데에만 장장 한 페이지를 통째로 할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아라키가 <루브르>를 그릴 때 특별 허가를 받고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루브르 박물관의 내부 스태프 공간에 들어가 사전답사를 거쳤기에 "실제로 박물관에 나선 계단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만화를 올바르게 감상하는 자세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창작자가 작품을 만들어 낼 때는 모든 것에 각각 선택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하기를 즐긴다. 지금까지의 맥락에서 이 페이지는 저승으로 통하는 동굴에 들어가는 프시케를 만화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더욱이 이 계단은 나선형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명도(冥途)로서의 비유가 강화된다. 해바라기 꽃잎이나 앵무조개껍데기를 비롯한 자연 곳곳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나선 구조는 생명과 죽음이 무한히 되풀이되는 우주의 순환 구조와 일맥상통한다. 생명력이 감도는 난색의 이승 세계와,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는 한색의 저승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나선 계단을 선택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어디 그뿐인가. 아라키는 점점 아래로 하강하는 나선 형태의 입체 공간을 직사각형의 패널 4개만으로 분할하여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때 주인공의 시선 배치가 그야말로 예술이다. 첫번째 패널에서 로한은 귀퉁이에 얼굴 일부분만을, 이 인물이 로한이라는 걸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드러내고 있으나 시선만큼은 분명하게 깊어가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일행 쪽을 향하고 있다. 이 패널만 보았을 때 로한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행이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는 행동과 방향성이 이 패널의 주인공이다.


두번째 패널, 직전에 시선을 줬던 위치까지 내려간 로한이 자신이 왔던 계단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때 윗부분을 먹칠로 덮어서 '일행이 한참 아래로 내려왔음'을 나타냈다. 하강 이미지의 깊이감을 더해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라키는 세상에, 패널 2개나 더 사용해서 일행에게 더욱 더 아래로 내려가도록 지휘했다. 얼마나 더 내려갈 셈이야? 얼마나 더 죽음에 가까워질 셈이야? 라고 소리쳐 경고해주고 싶을 정도다.


세번째 패널을 거쳐 마지막 패널로 오면 드디어 로한이 페이지 비율상 주인공다운 비중을 되찾아 만화의 중심이 캐릭터에 있음이 보인다. 이때 로한의 몸 대부분이 어둠을 표현한 먹칠에 감싸여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검고 사악한 그림"을 만나기도 전부터 로한은 어둠에 둘러싸인 것이다. 그런 줄은 까맣게 모르고 앞서 가는 조연 여성 캐릭터의 평온한 표정은 아라키가 한 페이지를 통째로 투자하여 섬세하게 조형해낸 불길한 분위기와 대비되어 곧 찾아올 이들의 비참한 미래를 효과적으로 돋보이게 해주고 있다.


로한과 프시케의 지하 여행이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금기 위반의 유무에 있다. 프시케는 '정체를 알아내선 안 된다'라는 금기를 어겨서 에로스에게 버림 받았고, '상자를 열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서 죽음과도 같은 잠이라는 징벌을 받았다. 로한은 프시케와는 달리 금기를 어기지 않았다. 과거에 스탠드 능력을 써서 나나세의 정체를 알아내지도 않았고 (나나세가 만화를 파괴해준 덕분에) 나나세를 담아낸 만화를 세상에 공개하지도 않았으며, 지하 창고에서도 '죽은 육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형체를 만지면 안 된다'라는 금기를 지켜내는 한에서 '망자와의 관계성을 기억에서 지워낸다'는 선택을 해서 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일 로한이 금기를 하나라도 어겼다면 로한 역시 끔찍한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으리라.

키시베 로한(岸辺露伴)의 성씨는 물가, 강가, 바닷가를 뜻한다. 후지쿠라 나나세(藤倉奈々瀬)의 이름 마지막 글자는 여울을 뜻한다. 더욱이 과거 문제적 그림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나나세의 처녀적 성은 키시베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강이 흐른다는 이야기화소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널리 퍼져있다. 성씨도 이름도 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나세는 그 자체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사이에 걸쳐 있는 환상적 인물이다.


그녀는 또 울고 있었다…. 왜 울까? 뭣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걸까? 누구 때문에 슬퍼하는 걸까? 깊고 푸른 바다보다도, 달빛에 빛나는 맑은 옹달샘보다도, 하릴없이 흐르는 그 눈물은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런 나나세와 로한을 이어주는 것은 물, 정확히 말하면 '눈물'이었다. 구슬피 울고 있는 사람을 달래주고 싶다는 측은지심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원초적인 선의다. 아라키는 로한이 나나세에게 끌림을 느낀 지점은 다름 아닌 아름다운 눈물에 있다고 캡션(나레이션)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만화를 끝마디에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로한이 첫사랑 나나세와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추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나나세가 흘리는 눈물을 클로즈업하여 강조하고 있는 패널이라는 점은 아름다운 수미상관으로 기능한다.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는 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를 접목하여 비현실적인 그로테스크함과 섬세하고 감상적인 에로스가 돋보이는 아라키의 수작이었다. 부디 여러분도 즐거운 감상이 되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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