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친구 ‘경민’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딸의 실종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경민’의 엄마,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형사, 친구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한솔’,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담임 선생님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영희’를 의심한다.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는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
영화를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죄 많은 소녀>라는 제목과 달리 이 소녀에게는 '죄'가 없다는 걸.
소녀에게 '죄'를 씌운 건 무엇인가?
전날 함께 있던 친구가 돌연 죽었단다. 마지막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소녀는 잠재적 살인자로 전락한다. 경찰은 소녀에게 취조와도 같은 대화를 이어가는데, 그곳은 학교의 빈 교실. 선생도 실종 학생의 부모도 있는 모두 모여있는 곳. 그곳에서 묻고 말한다.
'네가 마지막 목격자야.', '둘이 사이가 안 좋았니?', '네가 유도한 거지?', '네가 무슨 말을 했다던데?'
이게... 맞는 건가? 어떠한 인권적 보호도 없이 무자비한 공개처형. 미성숙한 소녀는 그 앞에서 속절없이 죄인이 된다. 학생들은 소녀를 단죄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가장 친한 친구는 소녀의 결백을 외면한다.
경민의 장례식장. 소녀는 경찰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며, 추가 진술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은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걸 원치 않는다. 도리어 소녀를 때리는 폭행까지 가한다. 여기서 이 담임선생은 대표적 위선자. 경민의 실종에 자책을 하던 것도 잠시(이 역시 자기 보호를 위한 포장이었을 듯), 곤란한 학교의 입장을 얘기하는 교장의 말에 금방 행태를 바꾼다.
"평소 우울해 보였습니다",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요.", "맨날 이상한 노래나 듣더라고요."
결국 소녀가 택한 건 음독자살. 죽음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는 데에는 또 다른 죽음이 필요했던 거다. 만약 소녀가 죽었면, 그 죽음은 또 다른 소녀를 만들어냈겠지.
위 시도로 인해 소녀는 목소리를 잃었다.
목소리를 잃자 소녀의 주변에 사람들이 돌아왔다.
이 한 번의 죽음으로 소녀는 '결백'을 '인정' 받았다
소녀가 학교에 돌아오자, 선생의 소녀를 위해 연습했다며 수화를 뽐낸다. 비웃음이 나오는 위선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도 비슷한 상황과 사람이 있었다. 불쾌함은 현실에 기인했다.
소녀는 선생과 학생들 앞에서 수화로 이야기한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선생과 학생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 섬뜩한 죽음 예고는 또다시 보여주기식 겉치레에 덮혀졌다.
소녀의 복수가 시작됐다. 가장 큰 복수는 경민의 엄마를 향한다.
여기서 잠깐, 경민의 엄마는 어떤 캐릭터인가.
아, 이 배우 얼굴만으로 정말 무섭다. 표정만으로 섬찟하다. 제발 연기 좀 살살하시면 안 될까요?
경민의 엄마는 경민의 죽음을 소녀의 책임으로 몰아간다. 소녀의 뒤를 밟고,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더 말하라고 종용한다. 서늘한 눈빛으로 소녀를 바라볼 때면, 소녀에게 이입해 내 심장까지 철렁해진다.
소녀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후 입원했을 때, 경민의 엄마가 병원비를 부담했다. 그것이 그녀의 속죄인가 싶었지만, 그녀는 말한다.
"너 경민이 때문에 수술받을 수 있던 거야.", "그거 경민이 보험금이에요.", "영희(소녀)가 경민이 몫까지 살아야죠."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녀의 주변에 나타난다. 마치 자신을 보며 경민을 잊지 말라는 듯, 끊임없이 죄책감을 가지라는 듯. 이 지독하고 잔인한 사람이 끔찍하면서도, 엄마의 입장에서는 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생지옥으로 몰아가도 되는 걸까...
소녀는 복수를 위해 경민의 엄마를 찾아간다. 그녀에게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며 말한다.
"내일이면 내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물어볼 거예요. 그 이유나 잘 대답해 주세요."
누군가의 죽음이 있기 전 마지막 목격자가 된다는 것, 이는 경민의 마지막을 목격한 소녀. 자신이 겪은 걸 경민의 엄마에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은 경민의 엄마는 참지 못하며 식탁에 놓인 나이프로 자신의 가슴은 연신 찌른다. 이 하나의 씬에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 사람들은 책임을 물을 곳을 찾는다. 희생양에게 죄를 전가함과 동시에 자신은 평안을 찾는다. 소녀에겐 죄가 없었다. 학교도, 부모도, 친구들도 모두 자신들이 경민의 죽음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소녀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에 경민의 자살 이유에 대한 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대략이나마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소녀는 경민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굴다리로 향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소녀는 복수를 마무리했을까...
종합 ☆☆☆☆
파수꾼의 여고생 버전쯤으로 생각했다. 미성숙한 때의 예민하고 불안한 감정들이 곳곳에 보이지만, 이 영화는 더럽게 무겁고 불온하다. 희생양을 고르는 러시안룰렛 같다. 불편한 감정이 자극되는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이런 류의 한국 영화는 피하게 된다. 외국 영화는 나와 다른 세계라고 무의식적 판단이 들어가지만, 한국 영화는 피부로 와닿는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다 몇 번이나 화면에서 눈을 뗐다.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폭력인 줄도 모른 채 죄를 전가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