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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Apr 11. 2019

책방지기의 덕목은 무엇일까

서점에 오시는 분들 중에 종종 나의 출신이나 이력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

"원래부터 책과 관련된 일을 하셨냐", "그게 아니면 어떻게 이런 책방을 차릴 생각을 했냐" 등등..

아마 카페나 편의점 등을 차렸다면, 손님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사람들은 서점 사장에게 어떤 경력이나 특별한 자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짧은 기간 서점을 운영해 온 사람으로서, (매우 주관적인) 책방지기의 덕목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1. 당연하지만, 책을 좋아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책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말했지만.. 책 팔아서 돈 벌기 참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그게 제1 덕목이 아닐까 싶다.


2.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동네책방은 손님이 마구 붐비지는 않는다.

혼자 서점을 지키는 시간이 꽤 많다. (설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흠..)

혼자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동네책방은 1인 가게가 많기 때문에 서점이 문을 열고 있는 시간 동안은 외출이 쉽지 않다.

나는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엉덩이 붙이고 있는 것도 즐기는 편이라 이 부분이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간혹 책은 너무 좋지만 계속 서점 안에만 있어야 하는 걸 힘들어하는 책방지기들도 있다.


3. 어느 정도 대화의 기술은 필요하다

동네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도 꽤 있고, 책 추천을 요청하시는 분은 더 많다.

그럴 때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눠주거나, 추천 책을 설명해 줄 정도의 대화의 기술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서점 안에서 독서모임 등을 진행해야 할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나 낯가림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난 조금씩 진행병이 생기고 있다..)


4. 꾸준하면서도 변화해야 한다

서점을 오픈한 이후로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서점의 책 진열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책장에 빽빽이 책등만 보여주며 꽂혀있는 책들은 손님들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 표지가 보이도록 새로운 책들을 꺼내서 책 진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책 주제별/작가별 큐레이션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에는 매일 1권씩 책 추천을 하고 있다.

매일 책을 추천하는 것이 직접적인 수입과는 관계가 없지만,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5. 없던 창의성과 추진력도 만들어내야 한다

책 큐레이션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서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동네서점이 모임이나 프로그램, 행사, 이벤트 등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좋은 것은, 서점은 참 모임 하기 좋은 곳이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거다.

예전 직장생활 때는 뭐 하나 기획해도 여기저기 컨펌받고 일정 조율하느냐고 실제로 진행되기까지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기획과 동시에 추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책방지기가 해야 할 일은 없던 창의성도 끌어내어 새로운 기획을 하고, 없던 추진력도 끌어내어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참 쉽죠~잉?)


6. 문서와 친해져야 한다

서점 일이 생각보다 문서 작업할 게 많다. 기본적으로 책 재고 리스트는 정리되어 있어야 업무가 수월하다.

그 외에 모임이나 프로그램 진행 때도 안내글을 올려야 하고, 모여서 함께 나눠볼 프린트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책방 지원사업 신청을 위해서도 문서작업은 필수이다.


7. 사업가 마인드와 존버 정신은 필수

서점은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더더욱 사업가 마인드가 필요하다.

(사실 나는 아직 사업가 마인드가 별로 없어서 그게 문제다.. 어쩌지..)

원래 돈을 못 버는 구조라고 손 놓고 있기보다는,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

많은 수의 서점들이 개업하고 2년(임대 계약이 끝나는 시점)을 못 넘기고 폐업한다.

폐업하지 않으려면 사업가 마인드로 무장하여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해 내던가, 그도 안되면 존버 정신으로 무조건 버텨야 한다.


뭔가 거창한 듯 써 내려갔지만, 사실 다 뻔한 얘기들이다.

어느 직업이든 모두 저마다의 고충이 있고, 남의 돈 버는 건 참 쉽지 않다.

서점을 차린 사람을 특별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그냥 그 일이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지식이 많거나, 교양적이라거나, 양심적이거나 하지도 않다.

그러니 누구든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면 한 번 도전해보시길.


(아, 오늘도 손님이 참 없구나. 로또나 사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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