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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May 30. 2019

어느 날 서점집 아들이 된 너에게

아이와 함께 책방을 한다는 것은


내가 서점 주인이 되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서점집 아들이 되었다.

아들은 오후 3시 20분이 되면 어린이집 하원 버스를 타고 서점 앞에 내린다.

그리고 서점의 문이 닫힐 때까지 나와 함께 서점을 지킨다.




서점을 창업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아이와 함께 해도 괜찮은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참 쉽지 않다.

'그러면 속 편하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만 키우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난 그게 속 편하지 않았다. 난 그게 더 어려웠다. 나에겐 내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좋아서 선택한 워킹맘이지만, 어찌 마냥 좋기만 하겠는가.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하루하루 파도를 탄다. 그러다 거센 풍랑이 찾아오면 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을 때 다른 길이 보였고, 그 다른 길이 서점이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옷가게를 하셨다. 그래서 난 옷가게집 딸이 되었다.

예쁜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부모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난 장사(자영업)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주말도 쉬는 날도 없는 장사, 밥도 편하게 못 먹는 장사, 무례한 손님들 상대해야 하는 장사..

내가 지켜본 자영업은 그러했다. 

특히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우리 부모님께 함부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서점을 한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

나중에 내 아이가 "엄마가 서점을 해서 좋았어"라고 말하게 될지 궁금하다.

부디 상처가 아닌 행복한 기억이기를.. (다행히 아직까지 소위 '진상' 손님은 없었다)




만 3살,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서점에서의 3시간은 꽤 지루할 것이다.

처음엔 무조건 유튜브를 틀어달라는 아이를 설득하는 게 일이었다.

"여기는 책 보는 서점인데.. 네가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도 책 안 보고 유튜브만 본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엄마가 책을 못 팔 텐데? 그러면 엄마 서점이 망할 텐데?"

이렇게 말해봐야 아이는 "그래도 유튜브 볼래!"만 외칠뿐이다.


그래서 유튜브는 저녁이 되고, 손님이 없을 때만 보여준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손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난 손님 싫어! 손님 못생겼어! 손님 언제 가?"

대략 난감이다.. 아이가 하는 말이지만, 그 말에도 기분은 충분히 나쁠 수 있다. 

손님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말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설명하다 지쳐 혼을 낼 때도 많았다.


다행히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은 우리 아들에게도 통했다.

이제는 장난감을 챙겨 와 혼자만의 놀이를 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표지가 보이면 책을 읽어달라고도 하고, 서점에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유튜브는 여전히 보지만, 엄마가 보여줄 때까지 잘 참고 기다린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가끔은 손님들에게 책 추천을 하기도 한다. 맨날 똑같은 책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가 서점을 해서 너는 참 좋겠다~ 이 책 다 볼 수 있고~" 또는 "서점집 아들이라 책 많이 읽겠네~"

이것도 편견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면 좋겠지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서점집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팩트이지만,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좀 못하더라도 부디 "서점집 아들인데 왜 공부를 못할까"라는 소리는 안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이 공간이, 너에게 족쇄나 꼬리표 같은 기억이 아니라 그저 엄마와 함께 해서 좋았던 기억이면 난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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