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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Jun 13. 2019

그림책은 애들 보는 책? 글쎄요..

그림책방 주인의 인생 그림책은

그림책이 좋아서 일부러 찾아오시는 손님들도 있지만, 카페를 겸하고 있다 보니 그냥 커피 마시러 우연히 들린 손님들도 많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문을 열고 들어와서 첫 반응은..

"어? 북카페인가 보네?", "아.. 애들 책 보는 데구나?", "여기 어른도 들어와도 돼요?" 등이다.


북카페가 아니라 서점 겸 카페다. (그게 그거 아니냐 하겠지만, 엄연히 다르다)

애들 책이 아니라 그림책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엄연히 다르다)

어른도 들어와도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주로 오는 곳이다. (아이들이 혼자서 올 순 없으니)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한다.

아마 나도 그림책방 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

사람들은 본인의 관심사가 아닌 분야에는 정말 매정할 정도로 무지하다. 

그리고 그림책은 아직 성인에게는 '소수의 취향'에 속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이 다 알 수는 없으니, 굳이 '당신은 틀렸다'라고 지적하며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애들만 보는 만화가 아닌 것처럼, 언젠가는 그림책도 애들 보는 책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걸 믿는다.)


다만 그런 후자의 손님들 중에서도, 우연히 찾아온 카페이지만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왠지 모르게 힘이 나서 손님께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관심 가질만한 그림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림책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작은 관심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내가 이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지 않을까 싶다.


난 서점 안의 그림책 중 대부분을 책방 사장이 되고 난 이후에 읽었다.

서점에 손님이 없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나의 독서 시간이 생긴다는 거다. (긍정의 힘!)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해 벼락치기처럼 수많은 그림책을 읽어나갔다.

너무 좋은 책들이 많아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고르라면 좀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인생과 닮은.. 혹은 닮고 싶은 그림책을 '인생 그림책'이라고 부른다면 고를 수 있다.



보석이 있는 곳만 피해 가며 땅을 파고 있는 샘과 데이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왔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하는 샘과 데이브.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안정적인 연봉도 피해 가고, 승진의 명예도 피해 가고, 마이너스 통장만 얻었다.

나중에 내가 이 책방의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남아있긴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워너비 '미스 럼피우스'

나도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는데.. 나도 세계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다 하고 다니는 그녀가 부럽다. 

(원하는 거 다 하고 살려면 역시 나도 미스로 남았어야 했나..라는 생각 잠시 해봤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 그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그림책이다.

그리고 내가 서점을 하는 이유가 되어준 그림책이다.

나는 이 공간으로 세상을 (적어도 우리 동네를) 조금 더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림책은 참 좋다. 아이가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다. 

아이와 어른이 같이 어깨를 맞대고 읽을 수 있는 책, 읽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책, 언제든 생각날 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책.. 그래서 그림책이 좋다.


자, 이제 '그림책은 애들책'이라는 무지한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의 인생 그림책을 한번 찾아보시라!

미처 몰랐던 당신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그림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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