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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Mar 23. 2019

크리스마스에 책을 살까요?

우리나라는 유럽이 아니었다

서점 오픈일을 12월 19일로 정한 건 나름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창업 준비 중에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동네책방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그 책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책이 많이 팔리는 때라고...

그래서 늦어도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는 꼭 서점을 오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생각한 것은, 그 시기는 곧 1~2주간의 어린이집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때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수많은 동네 엄마들이 무료한 겨울방학 동안 아이와 그림책을 보러 오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어린이집 겨울방학'이라는 완벽한 조건을 앞두고 서점을 오픈했으니 손님이 많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서점 오픈 이튿날부터 바로 아주, 매우, 지극히 한산해졌다.

개업식날 '이 정도만 벌면 괜찮겠다' 했던 매출액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년에 몇 번 없을 날의 매출액이었다.


크리스마스 책을 진열해놓은 큐레이션 서가의 모습


야심 차게 큐레이션 서가를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책으로 채워놓고, 많이 팔릴 것을 고려하여 같은 책을 5권씩 주문해놨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책은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책을 사지 않는다. 그 책의 배경이 유럽이라는 걸 내가 간과한 것이다.

유럽 감성과 우리나라의 감성이 다르다는 걸 뒤늦게 절실히 깨달았다.


하다못해 책방 주인이 되기 전의 나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라고 아이에게 성탄절 관련 책을 사준 적도 없거니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연히 책이 아닌 장난감이었다. 동네의 큰 장난감 가게가 주차가 힘들 정도로 북적인다는 글을 맘카페에서 보며 나는 조용한 서점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크리스마스는 망했지만 나에게는 어린이집 겨울방학이 있어!'

다시 한번 으쌰으쌰 기운이 내보았지만, 그 시기에 몰아닥친 한파는 나의 기대감도 꽁꽁 얼어붙게 했다.

자영업이 날씨의 영향을 이토록 받는다는 걸, 오픈 이후에서야 알았던 것이다.


동네에 이런 그림책방이 생기면 너도나도 와서 좋아하며 볼 줄 알았던.. 나의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생각이여..

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는 지인들의 방문만 잦았을 뿐,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지인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나를 먹여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본다.)


문득 창업 준비 중에 시아버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책을 좋은 거라고 말하지만, 생각보다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그러니 손님이 오지 않는 걸 탓하지 말고, 돈 벌 생각도 하지 말고, 서점에 오는 분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더 많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 일지를 고민하라고 말이다.

오랜 세월 사업을 해오신 시아버님의 식견은 역시 틀리지 않으셨다.


초보 서점사장인 나는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 가며 서점 운영의 혹독함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끝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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