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졸업식 당일 이유 없이 여자친구에게 차인 중학생 A가 있다. A는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그녀 곁을 서성인다. 하지만 아예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작정한 듯 소중했던 긴 머리까지 미련 없이 싹둑 잘라버린 그녀를 보자니 여전히 이유를 알 순 없지만 A는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B가 A에게 고백을 하는데...
90년대 순정 만화를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어지는 서사에 대한 유추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정과 사랑 두 가지 모두 포기하지 못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둘 다 포기해 버리는, 모두에게 상처가 될 바엔 자신이 그 상처를 모두 짊어지겠다는 이타와 이기의 공존은비현실적인 유려한 감정선들을 만들어낸다.또한약속이라도 한 듯 남주는 항상 어딘가 모자라 보이지만결정적인 순간엔 멋짐이 폭발하며더불어 싸움까지 잘하는데... 이러한 반칙적 허용으로 양산된 수많은 유죄인간들은 두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 만으로도 사람들을 쉽게 사랑에 빠뜨린다.
"날 잊어, 나도 널 잊을 테니까. 고입시험이 끝나면 말하려고 했었어." 이 아이들이 어딜 봐서 예비 고1의 모습인가.(두근)
<언제나 상쾌한 기분>은 <아기와 나>로 한국에서도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라가와 마리모 작가의 작품이다. 1993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2014년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연재의 기간이 길었던 것에 비해 7권으로 완결된 것을 보면 휴재와 연재가 계속 반복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내가 라가와 마리모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내가 아는 선에서 우는 얼굴을 가장 귀엽게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다.양 볼을 있는 힘껏 빵빵하게 부풀리고 한 껏 눈을 일그러뜨려 꽤나 억울한 표정을 지어내지만 특유의 동그랗고 선한 그림체를 통해 작중 인물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나이가 적든 많든 모두를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는 필살기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에는 눈물을 머금고 어린아이의 얼굴이 되어 버리는 수많은 어른들이 있다.
자,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그래서 A는 B의 고백을 받았을까? 당연히 A는 B의 고백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거절도 하지 않았다. A는 자신이 버림받은 원인을 이 고백을 통해 눈치챘고 이별을 통보한 그녀의 말 못 할 연약함을 간파했다. 그렇다면 이제 A의 행방은? 그렇다. 이제 내러티브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결정적 순간A의 멋짐 폭발은 빅뱅처럼 터질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빵빵한 볼로 당장이라도 안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귀여운 눈물을 흘릴 것이고, 우리는 왠지 알 것 같아서 더 알고 싶은 결말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마조마한 떨림으로 넘길 것이다.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얼굴을 보여줬다. 여자란 참 무섭다. 그것만으로 남자를 두근거리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