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칼로의 고통에는 비할바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반드시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혈액 속 염증수치를 잰다면 아마도 무조건 MAX일 것이다. 전신의 살갗이 따갑고 위가 아프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살펴보니 오늘을 빙자한 최근의 기분은 작년 이맘때의 답답함을 쏙 빼닮았다. 이 답답함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역시 자연으로 떠나는 것이 맞을까? 정작 용기 내서 도망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언제나 마음은 스스로가 정의한 이상향 어딘가에 닿아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이기에 박 터지는 머리를 에워싸고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짓누른다.

살면서 나를 위한 결정을 몇 번이나 했었나 생각해 보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보다 환경을 살피는 것이 더 당연했고 그래야만 했던 상황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억지스럽고 가식적인 것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그렇게 애써 노력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이 배신이나 모르쇠로 일관되었을 때는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의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이러한 성향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진 몰라도 쿨하게 원망하고 미워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본질적으로 그럴 깜냥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젊을 땐 꾸역꾸역 이겨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것도 쉽지 않아 졌다.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명분에 비해 지나치게 야무지지 못한 탓이다.

비교하지 않고 거짓말을 기피하며 솔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감출 것 많은 세상이라지만 조금 더 진솔했으면 좋겠다. 이 나이 먹도록 순수함을 외치는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다. 세상이 정한 공식에 맞추어 정상과 비정상을 논하기보다 각자의 개성들이 사회에서 가치 있게 발현되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멋지다고 박수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몇 살 때 무얼 해야 하고, 또 무얼 이뤄야 하고, 얼마큼 가져야 하는 것이 응당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저 각자의 시간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태어난 날짜도, 얼굴도, 취향도 성격도 모두 다른데 왜 인생의 시간표는 꼭 같아야 할까. 거기서부터 내가 느끼는 괴리가 시작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늘은 해가 졌으니 집에 가서 된장찌개 한 그릇 끓여 먹고 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파도처럼 덮쳤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하루를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