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욕심쟁이 Sep 12. 2021

묵선회 언니들

충주에는 호암지라는 오래된 연못이 있다. 그곳은 아침저녁에 주로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유명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예쁜 호수의 둘레길을 걷다 자연스레 친구가 된 세 사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셋 중 노란색을 좋아하여 노랑 옷을 주로 입는 둘째가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노랑 언니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와 추진력 또한 대단했다. 늘 새로운 것을 제시했다. 큰 언니와 막내는 그런 리더의 말에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막내는 그를 노랑 언니라 부르며 따랐다. 묵묵히 뒤에서 받쳐주는 큰 언니에게는 뒤봐 언니라 불렀다. 평소에 노랑 언니와 막내가 덜렁대 물건을 놓고 오면  큰언니가 어느새  슬그머니 뒤에서 챙겼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서예를 함께 하며 여러 활동을 하는 모임 '묵선회'를 만들었다.


 


 묵선회는 매월 1일에 정기총회를 하고 회비는 월 500원으로 정했다. 서법 연구와 김생 생가등을 탐방하는 고적답사, 서예전 준비 등을 목표로 하고 더 나아가 불우이웃 돕기 행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활동을 매달 한 명이 노트 세 권에 똑같이 기록하되 노트 기록은 세 명이 번갈아 가며 해 개성을 맘껏 발휘하기로 했다. 노트 기록에 서로의 성격이 묻어나 읽는 재미가 있었다. 큰 언니는 담담하고 정갈하게 둘째 언니는 거침없이 당당하게 막내는 막내답게 애교스러운 문체로 노트를 메워갔다. 서예학원에서 이미 실력을 쌓은 노랑 언니는 두 사람에게 서예와 사군자를 가르쳐 주었다. 수업은 주로 노랑 언니 집에서 이뤄졌고 각자 집에서 연습해 정기회의 때 평가 발표를 가졌다. 노랑 언니 집은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배기에 있었다. 큰 언니는 바로 이웃에 살고 있었고 막내만 시내에서 살아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을 오르내렸다.




 탁본 실습을 다녀온 적도 있다. 탁본은 석비나 기물 등의 각명, 문양 등을 먹을 이용해 원형 그대로 종이에 뜨는 것이다. 탁본 실습을 하려면 준비물이 필요하다. 화선지와 집에서 갈아온 먹물, 물, 솜방망이, 마른 수건 등이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중원 군 금가면에 위치한 이 수일 장군 묘석이었다. 이 수일 장군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분다. 먼저 비석을 물로 깨끗이 씻었다. 그 위에 화선지를 올려놓고 잘 붙도로 마른 수건으로 살살 눌러주고 2~3분 기다려줬다. 갈아온 먹물을 솜방망이에 묻혀 다시 한번 정성을 다해 골고루 두드렸다. 조금 후에 떼어 잘 말려주면 끝. 드디어 성공이다. 비석이 크고 똑바로 서있어 작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잘 마른 작품은 비석의 글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혼심을 다해 작업을 마치고 들판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만족감에 깔깔거리며 먹는 라면의 맛을 그 무엇과 비교할까. 갈대밭의 아름답고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고즈넉한 정경도 한몫했다.


 


 함께 향교에 다니며 <명심보감>이나 <소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이 교재가 어린 학생들의 필수 교과서였다고 한다.  특히 소학은 동양의 탈무드로 비유되기도 한다. 향교 선생님의 유교적인 사고방식 수업 중에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남성 우월주의에 크게 흥분하여 항의를 하면 그저 허허 웃으시던 선생님.





식목일엔 셋이 함께 맞춘 운동복을 입고 호암지에 가서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새벽 운동 때마다 물을 주며 묵선회 나무에 정성을 쏟았다. 무궁화나무가 있는 호암지에서 정기회의를 하기도 했다. 물가에 돗자리를 깔고 화선지를 펴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풍류를 즐겼다. 작품을 하나씩 완성하고 서로 감상평을 하며 실력을 키우는 데 매진했다. 그리고는 각자 가져온 떡과 과자 음료수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호암지는 묵묵히 지켜보며 그들을 품어주었다.


 


 점점 실력을 쌓아 김생 추모 서예 공모전 (우륵문화제)에서 노랑 언니는 금상을 큰 언니와 막내는 은상을 수상했다. 막내는 충북 도전에서 입선 수상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연말에는 카드와 양초를 만들어 팔아서 불우 이웃 돕기를 했다. 시내에서 가두판매도 하고 쇼핑센터에 있는 지인 찬스를 써서 판매하기도 했다. 붓글씨와 사군자를 그려 넣은 카드는 빠르게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국군 장병들에게 카드를 보내 나라를 위해 애쓰는 군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불우이웃 돕기로 인연이 된 도립병원 무료 환자들에게는 그 이후 가끔 들려 안부를 묻는 사이로 이어졌다. 연고도 없이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는 분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그들의 말벗도 되어주었다. 충주 MBC 방송국에서 나와 인터뷰를 하자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땐 너무 떨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들은 점점 더 책임감을 느껴 열심히 활동을 했다.




 

세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가 되어 충주의 명소인 호암지, 탄금대, 중앙탑 등을 다니며 많은 추억거리를 남겼다. 지금은 각자 결혼하여 큰 언니는 제천, 노랑 언니는 부산, 막내는 서울에서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묵선회의 이념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뒤에서 말없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큰 언니와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앞에서 진두지휘하던 노랑 언니가 아직도 막내의 가슴속에 진하게 남아있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텃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