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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쟁이 Sep 12. 2021

행복텃밭

손자와  추억 만들기

생활고와 우여곡절, 파란만장 이 세상에 힘든 단어들은 모두 집합시켜 줄을 세웠던 젊은 시절의 끝자락

큰 딸과 작은 딸, 막내아들이 몇 년 전 모두 결혼을 했다. 셋 다 자신들의 힘으로 결혼을 해서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각자 결혼을 한 것이다. 오히려 결혼 전 에어컨이며 TV를 사주며 그동안 키워준 은공에 감사해했다. 주위에서는 세상에 그런 자식이 어디 있냐고 부러워했다. 부모에게 전혀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내 아이들이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세 아이들이 각자 짝을 찾아 내 곁을 떠나가고 난 오랫동안 몸 담았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둘째 딸이 살고 있는 김포로 이사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게 아들을 키우는 딸의 모습이 항상 안쓰러웠던 터라  딸을 도와줄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엄마 인생이 더 중요하다며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이제부터 엄마 인생을 살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거 배우라고 오히려 나를 보살피는 둘째 딸.  딸의 말에 힘 입어 노동부에 찾아가 내일 배움 카드를 만들어 제빵학원을 다니며 오후에는 손주를 돌봐줬다.


어느 날 딸이 농부학교를 다니면서 텃밭을 가꾸는 건 어떠냐고 했다. 7살 된 손주와 함께 농작물을 키우는 모습을 상상하며 승낙했다. 도시 농부학교는 다행히 토요일에만 열리고 텃밭은 각자 시간 되대로 가꾸면 되니 내게는 좋은 기회였다.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던 손주는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틈틈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간식으로 먹을 빵과 쿠키를 함께 만들며 손주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는 농부학교에서 수업 듣고 딸과 손주와 텃밭을 가꾸었다. 텃밭은 이름도 예쁜  '행복텃밭'이다.

내게 주어진 4평의 땅을 파고 고랑을 만들어 밭을 만들었다. 땅을 파며 의욕적으로 삽질을 하는 손자가 어찌나 귀여운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낯설고 힘들지만 딸과 손주와 함께 하니 기쁘기만 했다.


밭을 만들고 나면 그 위에 모종을 심을 차례이다. 고추 6주, 가지 4주, 토마토 6주, 땅콩 6주, 대파 20주, 들깨 5주의 모종을 분배받아 골마다 차례대로 심었다. 이 작물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궁금했다. 그날 이후로 주말마다 그곳에 갔다. 토마토 모종 사이에 쌈채류도 여러 종류 더 심었다.  풀을 베어 작물 사이에  얹어 주는 풀먼칭도 해주었다. 풀먼칭을 해주면 수분 관리도 되고 새로 풀이 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문득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본다. 석양이 물드는 텃밭의 풍경이 아름다워  탄성을 지른다.   밭일하며 흐르는 땀방울을 무심한 듯 바람이 다가와 닦아주기도 한다. 밭일 도운다며 호미를 들고 있던 손주는 어느새 새로 사귄 친구와 밭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이 세상 소리 중에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나와 딸.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지.

"엄마, 밭에서 일하다 보면 아무런 잡념이 없어. 바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아"

라며 좋아하는 딸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한 번은 간식을 싸들고 무작정 텃밭에 갔다. 미나리 부침개와 샌드위치, 샐러드가 오늘의 먹거리다. 작물들에게 물을 주고 밭 가운데  정자에  앉아 싸온 음식을 먹다. 손주가 좋아하는 옆 밭의 철이 삼촌과 아이들도 불러 함께  먹으니 모두가 즐겁다.

6월이 되자 토마토에 꽃이  피고, 고추, 가지에도 꽃을 피워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완전 풀과의 전쟁이야. 해도 해도 끝이 없어"라고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수확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텃밭에 갈 때마다 고추와 가지 토마토를 따오는 기쁨을 맛보다 어느덧 공동 밭에 심은 감자를 캐는 시기가 되었다.  손자는 유치원에서 감자를 캐봤으니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학생 전원이 힘을 모아 감자를 캐어 나눠 가졌다.  작물을 키울 때 소변 액비와 EM, 크로렐라와 같은 유기농으로만 사용해서 땅이 오염되는 것을 막아준다.  

열심히 캔 감자는 알도 작고 개수가 적어 조금 실망도 했지만 함께 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손주는 달팽이를 만나 달팽이와 노느라 감자 캐기는 뒷전이다.


이제 배추와 무를 심을 때가 되어 모종을 키우고 무 씨를 뿌릴 예정이다. 이것도 잘 키워 손주의 손에 팔뚝만 한 무를 들려주고 싶다. 비록 커다란 무는 아니라도 유기농으로 지은 달고 맛있는 무로 손주가 좋아하는 깍두기를 담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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