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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쟁이 Oct 20. 2021

주인공은 나야 나

모델이라네

젊은 시절 세 아이를 키우며 내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직장을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꿈도 못 꾸었다. 직장에서의 일은 늘 바빴고 지쳐있었다. 이런 삶을 살던 내게 아이들이 성장하여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청계천에서 시민모델쇼에 참여할 서울시민을 모집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다.ᆞ 무조건 나가고 싶었다. 평소에 모델의 꿈을 꾼 적도 없었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무슨 용기로 나가고 싶었을까.


먼저 가족에게 의견을 물었다.


"엄마가 웬일이세요? 

"엄마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두 딸은 의아해하면서도 나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었다. 접수를 한 날부터 딸들과 함께 옷을 입어보고 쇼핑을 다녔다. 의상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큰 딸은 집에 있는 세 여자의 모든 옷과 장식들을 꺼내 나를 어떻게 꾸며줄까 구상을 했다. 인사동에 가서 옷에 어울리는 스카프도 둘러보고 구두도 신어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에게 어울리는 것들로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시민모델을 지원하고 준비하는 과정과 모델쇼에 참석하는 장면을 취재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처음엔 망설여졌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전체가 TV에 노출되는 것이기에 조심스러웠고 모두의 동의가 필요했다. 다행히 가족들은 이왕 모델쇼에 나가는 거 방송에 출연해도 괜찮겠다고  말해주었다.


며칠 후에 방송국 PD님과 사진기자님이 우리 집으로 왔다.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내가 모델 준비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모습을 촬영했다.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자신의 의견도 말하고 워킹 연습도 해보며 우리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늘 아이들 보살피는 일만 하다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주인공이 되니 쑥스러우 면서도 행복했다.


"내 생에 이런 일도 있구나"


너무도 바쁜 일상에서 평소에는 온 가족이 모여 대화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이번 일로 가족이 한 마음이 되어 촬영에 임하다 보니 모두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드디어 청계천에서 시민 모델 수상쇼가 열렸다. 각양각색의 남녀노소 30여 명이 쇼에 참여했다.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와 더욱더 큰 잔치 분위기였다. 큰 딸은 화장을 해주고 작은 딸은 옷을 챙겨주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본 순서에 앞서 전문 모델들의 축하 쇼로 문을 열었다. 능숙한 모델들의 워킹 모습을 보며 뒤에서 나도 따라 연습을 했다. 드디어 시민 모델의 차례가 되어 무대로 나가 물 위를 걸었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무대 아래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하나가 되어 자연과 동화되었다.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참가자가 한 번씩 나가 자신을 뽐내며 걸어 들어오고 장기자랑도 선보였다.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님이 나와 내 가족 위주로 촬영을 해주니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인가. 멋진 무대에서 최고의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 짱~ "

꽃다발을 든 남편과 플래카드를 든 아들이 보였다. 아들의 외침에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 모두 다 함께 워킹을 하고 아름다운 밤의 쇼는 끝났다.


가족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모델쇼에 나간 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가족을 믿고 결심하지 않았을까. 나 혼자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것 같다. 이후 시민 모델의  도전기가 방송에 자세히 소개되고  방송을 본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모델에 도전하는 나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는 말을 하며 진짜 모델이 되는 게 어떠냐는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내게 이런 귀한 경험이 있었다니.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미있는 것은  그때의 추억이 바탕이 되어 요즘 나는 모델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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