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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Feb 02. 2022

18. 출산 후에 얻은 것과 잃은 것.

 만삭일 때 지금이 제일 편한 거라는 현실 육아 선배들의 조언은 와닿지 않았다. 임신 기간 내내 당기는 배를 붙잡고 야근과 주말 근무를 버텨내는 통에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출산이 임박하니 누워있는 것도 힘든 몸상태에 두려움이 너무 컸다. 차라리 빨리 출산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 말은 당연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출산 후 9개월이 다돼가는 지금은 누구보다도 임신했을 때가 제일 편한 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때로는 회사 다니던 게 더 수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출산도 고통스러웠지만, 출산 이후가 첩첩산중이었다. 내가 특히 호르몬의 장난에 약한 사람이었을지는 몰라도 산후 우울증이 꽤 심하게, 오래갔던 것 같다. 아기가 유독 잠을 안 자서 하루 종일 안고 다녀야 하는 통에 지칠 대로 지쳐 하루만이라도 푹 자보는 게 소원이었고, 상할 대로 상한 내 얼굴과 몸을 바라보는 건 너무 슬펐다. 출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눈물도 잦았다. 한참이 지난 이제야 우울한 감정은 거의 씻겨나간 듯하다. 여전히 잠이 부족해 늘 피곤하고, 변해버린 체형과 거칠어진 피부는 서글프다. 한 움큼씩 빠지던 머리가 다시 자라면서 삐죽삐죽 솟은 앞머리를 볼 때는 거울 속 내 모습이 슬프다 못해 웃겨서 가끔 피식 웃기도 한다.


 물론 힘들고 우울한 와중에도 아기는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소중하고,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못해 때로는 경이로웠다. 9개월이 다 된 지금은 꽉 쥐고 있던 양손은 어느새 단풍잎처럼 앙증맞게 펴졌고, 간지럼 태우기도 미안하던 조그만 발은 발등에 눈이 소복이 쌓인 듯 살이 올라 땅을 짚고 서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 조그마한 손발로 하루하루 다른 재주를 선보이며 나를 보고 웃어주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저렇게 계속 웃을 수 있게 해 줘야겠다고 혼자서만 괜스레 비장한 다짐을 하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새로운 경험에는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었고 출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얻은 건 처음부터 분명했다. 내 이목구비를 똑 닮은 아기. 수개월을 한 몸으로 지냈지만, 떨어졌을 때 그 무엇보다도 낯설었던 생명. 그리고 이제는 그 무엇보다 내 인생에서 의미 있어진 존재.

 문제는 잃은 것이었다. 무언가 잃어버려서 마음이 공허하고 우울했는데, 명확하게 무엇을 잃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든 건 느리게라도 회복되는 일이니 잃었다고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얻은 건 분명한데 잃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어쩌면 더 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잃은 건 나란 존재의 일부였다는 걸 깨달았다. 내 살과 뼈와 피 그리고 영혼의 일부분. 얻은 것처럼 잃은 것 또한 내게서 떨어져 나간 내 아기였다. 결국 출산으로 잃은 건 없었다. 그저 나는 내 아이를 얻은 것뿐이었다.


 그동안은 출산 전의 내 모습이 그리워 많이 울었지만, 공허함과 우울함이 걷혀 지나가고 출산으로 잃은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충만하다. 육아휴직으로 아이와 단 둘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답답하고 지치지만, 이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소중하다. 부디 내 영혼의 일부가 무사히 잘 자라나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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