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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인 Apr 22. 2024

꼰대와 MZ 사이

그 어딘가 “낀대”

자연스러운 인간사회의 순환이라고 볼 수도 있는 "나이 들기".

요즘 젊은 세대들을 흔히 MZ라고 한다.

좀 예민한 글일 수도 있는데(...) 최근 동년배들과 가장 많이 다루었던 내용이라 글을 정리해서 올려본다.


근데 사실 MZ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MZ의 범위는 너무도 넓다. 1980년대생부터 해서 2005년대생까지 라니. 만 44세와 만 19세가 같은 세대라는 게 말이 되는가? 나도 역시 나이로 따지면 MZ이다. 근데 세대라는 게 꼭 태어난 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사회생활을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쉬지 않고 바로 사회에 던져졌던 나는 어느새 꼰대르신들의 마음도 이해하고 젊은이들의 마음도 이해하는 소위 말하는 “낀대”가 되어버렸다.


라떼 한 번 시작하자면 라떼는 아직 전공의 특별법이 없던 시절에 주치의 생활을 했었다. 그 '낭만의 시대'엔 병원이 삶의 전부였었다. 주치의당 환자가 3-40명이 기본이었고 퐁당퐁당 당직(40+@시간 연속으로 일하고 쪽잠 자다가 다음날 오전 7시 출근해서 무한반복)이 있었던 시절. 주간 근무시간은 딱히 카운트하는 게 의미도 없던 그 시절. 새벽 2시 수술 끝나고 교수님이 다 같이 한 잔 하러 나가자고 해서 반강제로 끌려나간 후 새벽 4시 당직실로 돌아와 뻗어서 아침 7시에 부랴부랴 머리도 못 감고 컨퍼런스에 달려갔던 그 시절. 이건 낭만이 아니라 난감의 시절 같기는 한데.


차마 떡진 머리로 컨퍼런스를 갈 수 없어서 드라이샴푸를 쓰거나 후딱 머리만 감고 못 말린 채 물귀신처럼 나타나곤 했었다. 컨퍼런스에 오시는 병리과나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이 종종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훗날 내가 전임의가 되었을 때 어떤 병리과 교수님이 말하시기를


"아 선생님 기억하고 있죠~ 맨날 컨퍼런스에 물 뚝뚝 흐르는 머리로 나타났던 그 선생님이시잖아요."



그렇게 자기희생이 당연했던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지금 윗세대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아랫세대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 뜻은 반대로도 적용되는데 윗세대들에게 완전히 공감을 못 하고 그렇다고 아랫세대들과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해 보니 병원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집단에서 3-40대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현상 같다. 위에서 시키는 불합리한 것에 반대를 하면서도 아래세대처럼 대놓고 박치고 거부할 수는 없는... 위에서도 치이고 아래에서도 치이는 입장이다.


비록 우리가 요즘 흔히들 말하는 "MZ"스럽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성세대 교수님들이 하시는 일에 전부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사실 잘못된 풍습, 술 문화, 군대식 수직사회 등 문제가 정말 너무 많은데 그 부분은 교수에 대한 고찰 1,2 편에 어느 정도 풀어두긴 해서 이번에는 새로운 신세대를 바라보는 우리 세대의 시각 위주로 작성하고자 한다.




누구든 윗년차는 아랫년차를 보면 다 같은 마음이 드나 보다.


치프전공의 시절 가벼운 일화가 있었다. 전공의 동기였던 준수오빠가 당직실에서 다음 수술이 준비될 때까지 쉬고 있었다. 준수오빠는 1년차 주치의들과 함께 당직실을 썼는데 주치의들이 열심히 환자 오더를 내고 있었다.


"하아... 힘들다."


한 주치의가 갑자기 한숨을 쉬자 옆에 있는 주치의가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한숨을 쉬었던 주치의의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봤다.


"헉. 영민아 너 환자 수가 20명이네. 힘들겠다..."


"그러니까... 너무 많다 정말. 오늘 퇴근은 글렀어."


‘응?’


핸드폰을 하며 당직실 침대에 잠시 누워있던 준수오빠는 눈썹을 찡그리며 슬쩍 둘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신세에 한탄하며 위로를 해주는 모습은 기특하기 그지없었지만... 뭐 20명? 우리 때는 20명 정도라면 평소의 반밖에 안 되는 숫자였다. 그게 지금 많다고? 준수오빠는 우리 전공의 단체카톡방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 야. 지금 당직실에서 주치의들 진짜 웃겨 죽겠다. 지영민 환자 20명이라고 많다고 위로해 주고 앉아있네.


수술장에 치여서 스트레스를 풀 곳을 찾던 치프들이 하나둘씩 먹잇감을 발견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 뭐 20명? 나 때는 그 정도면 조기퇴근 각인데… 미치겠네.

- 지영민 지금 오후 3시인데 환자 20명 중 내일 오더 반도 안 냈어.

- 아니 말이 되냐? 3월 주치의라면 이해하겠는데 지금 이미 8월이잖아? 뭘 배운 거야?

- 역시 애들은 빡세게 굴려야 해... 처음에 너무 환자수를 줄여주니까 거기에 적응해서 업무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제 생각엔 환자 수가 20명이든 30명이든 어차피 똑같은 시간에 퇴근할걸요? 다 하기 나름.

- 우리 영민이는 환자가 고작 20명인데 왜 이렇게 빵꾸 투성일까~?


치프의 탈을 쓴 젊은 꼰대들이 온갖 꼰대력을 남발하며 카톡방에 쏘아붙었다. 차마 애들한테 꼰대라고 욕먹기는 또 싫어서 직접 하지 못 할 말을 우리들끼리 이렇게 해소하곤 했다.





“요즘 애들은 우리들이랑 마인드가 달라. 3년제로 바뀐 시스템이 문제일까?


미란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래 외과 전공의는 4년제 시스템이었는데 2019년 전공의부터 3년제로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바뀌었다. 바뀐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3년제로 변경하면 빨리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외과를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펠로우라는 전공의 졸업 후 세부분과 트레이닝 과정이 수술을 배우는데 점점 중요해지면서 어차피 펠로우 트레이닝을 할 테니 전공의 과정을 1년 줄이자는 취지도 있었다. 이전에는 전공의들에게도 시켰던 것을 요즘에는 펠로우 정도는 되어야 시켜준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외과 트레이닝을 3년제로 바꿔서 뭐 좋아진 게 있어? 지원률도 그다지 안 올랐고… 하나의 연차가 통으로 사라졌는데 시스템을 재정립하기는커녕 그냥 남은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일을 굴리라는 식이잖아. 사람을 더 뽑았어야 하는데 PA도 겨우 2명 증원했고..”


미란언니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TO를 없애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참 쉽다. 늘리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렵다.


“확실히… 3년제로 변하면서 막 전문의가 된 전공의들의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 우리 때만 해도 치프 때 웬만한 기본 수술은 다 했잖아?”


“병원마다 근데 다른 것 같아요. 이미 PA들로 전공의 없이 시스템이 돌아가는 경우엔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은설이도 듣다가 중간에 한 마디 하였다. 하긴, 우리 병원이 지금 이렇다고 일반화하면 안 되지.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3년제가 되니까 지원하는 사람들 마음도 좀 달라진 것 같아.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닌데… 그냥 3년 안에 전문의 면허를 빨리 따고 로컬로 나가서 돈 벌 생각하는 애들이 이전보다 좀 많아진 것 같아."


“내 말이! 외과 오면 뭐 해? 외과 오고 나서도 대학병원에 남아서 힘든 수술 하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데.”


“원래 3년제를 하면 그 후에 2년 펠로우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줄인 거잖아요. 근데 요즘엔 심지어 펠로우도 안 하고 바로 개원가로 가서 미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좀 아이러니하죠? 3년 동안 그 힘든 외과 전공의를 하고..."


그래. 딱히 그들이 잘못되었다거나 그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이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이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뿐이다.


“... 이 정책을 추진했을 때 여기까지 생각을 안 하신 걸까?


하나의 정책을 추진할 때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와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그 정책이 가져올 단면적인 효과만을 보면 이렇게 된다. 정치인들이 하는 포퓰리즘 정책들이랑 뭐가 다른가? 의도는 좋았겠지만… Short-term effect(단기효과)에 현혹되지 않고 차분히 long-term effect(장기효과)를 분석해야 했었다.




나의 전공의시절 치프 전공의라는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치프라는 타이틀이 주는 권위가 있었기에 자부심도 있었다. 물론 무엇보다 그 타이틀이 주는 책임이 컸다.


4년간 전공의를 하면서 구를 대로 구른 몸이라 병원이 돌아가는 정도를 빠삭하게 파악한 사람들이라 심지어 펠로우선생님들마저도 치프전공의는 존중해 주고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당직 때 함께 서는 전공의들을 도와주고 병동의 모든 환자들의 안녕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후배들이 미숙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다는 핑계로 그들로부터 책임을 앗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권한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후배들의 주체성도 의욕도 사라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런 핑계는 그만하고 비록 불안하더라도 후배들을 믿고 중요한 업무를 맡기고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후배들은 주어진 책임을 무지하다는 변명으로 계속 피해 다닐 생각만 하지 말고 그럴수록 스스로 공부해서 그 책임을 훌륭하게 지고 성장해야 한다. 마치 어느 정도 무겁고 힘든 무게로 근력운동을 해야 근육이 늘어나듯이 어느 정도의 중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본인의 능력도 그에 걸맞게 상승하는 법이다. 위에서 왜 떠먹여 주지 않았냐는 핑계는 이제 그만하고 자신이 가르침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능력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The Heaviness of Bearing Responsibility. Midjourney v6.0




꼭 그 낭만의 시절이 전부 그리운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윗세대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내려오는 악법과도 같은 이상한 문화와 풍습에 대부분 동의하지 못하였으니까.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꼰대짓은 지금도 너무 싫다. 그런데 이제 사회생활을 좀 했고 후배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활동하다 보니 그분들이 왜 그래야 했는지는 일부... 일. 부. 이해도 간다. (다시 강조하는데 일부만!) 어쨌거나 이렇게 중간에 낀 어중간한 입장이 되어버려 생각할 것들만 잔뜩 늘어났다.


세대 간 좁혀지지 않는 이 차이는 자연스러운 인간사회 속 순환의 일부인 것 같다. 특히 윗세대는 자신과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아랫세대의 고집을 어떻게든 꺾고 자신들이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건 윗세대가 직접 깨닫게 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누가 옳았을지는 또 태어나는 그다음 세대가 증명해 줄 것이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부모가 되어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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