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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무사 Jun 16. 2018

근로자의 의미

직장인, 근로자라 불리우고 종속되었다고 표현된다.

어떤 종류의 법을 공부하든 대부분 그 시작점이 비슷하다. 법의 목적이 무엇이고, 법에서 규율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공부하게 된다. 노동법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제1조에서 목적을 이야기 하고, 제2조 제1항 제1호에서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의 개념을 정의한다. (앞으로 가급적 법조문을 정확히 인용하는 직업적 버릇을 이 공간에서 발휘하지는 않으려 한다. 글을 쓰는 필자도 일로 쓰는 것이 아니고, 글을 읽는 독자도 법학 공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직장인은 근로자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인지 아닌지 복잡한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 떠나서 직장인은 근로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근로자라는 것의 의미.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 모르고 살아도 큰 문제는 없고 알게되면 자칫 서글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알아보자.


'근로자'라 불리는 당신, '종속'되어 있습니다.


종속(從屬) : 자주성이 없이 주가 되는 것에 딸려 붙음.

포탈사이트에서 '종속'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당당하게 돈을 벌고 있는 나'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부적절한 것만 같은,  '자주성이 없다', '딸려 붙어 있다'라는 표현이 세트로 나오는 정의이다. 썩 유쾌하지 않지만 근로자라 불리는 당신은 종속되어 있고,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근로자라 불리는 당신은 자주성이 없으며 딸려 붙어 있다.


콘텐츠의 홍수 시대에 독자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필자가 자극적인 정의를 갖다 붙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사람이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해야되지?'라고 대한민국 법원에 물으면 '사용종속관계인지 살펴보면 되지'라는 답이 나온다. 그리고 노동법 교과서를 한번이라도 펼쳐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치 고등수학의 집합과 같은 느낌이다.) 근로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경제적 종속성', '인적 종속성'이라는 말을 약속이나 한듯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소개 하고 있다. 필자 역시 프롤로그에서 소개했듯이 전문자영업자인 노무사로서 활동중이 아니라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주성이 없고 딸려 붙어 있는 존재이다.


대법원의 견해이고, 교과서에도 나오고, 글을 쓰는 필자도 마찬가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나는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고개를 저을 독자들을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진다.

회사에서 내일 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 이번 달부터 월급을 못 줄 것 같고, 반년은 지나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가?

5시 59분, 컴퓨터가 종료되는 시간까지 고려해 퇴근을 준비하고 6시 정각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오늘 한잔!!을 외치는 팀장의 면전에 '미친거 아니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위 상황에서 '미친거 아니니?'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6시 정각에 눈치 안보고 퇴근 할 수 있는가?

출근하자마자 어제 야근하며 올린 계획안에 대해 지적질 해대는 상사, 점심시간에 김치찌개 먹으러 가자고 할때 웃으면서 '좋죠~~'라고 답한적 없는가?

위 5가지 질문에 하나라도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종속되어 있지 않다고 인정하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 다섯가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직장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첫번째, 두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이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고, 세번째에서 다섯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당신이 '인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월급(임금)을 목적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주기 위해 당신의 머리와 몸을 제공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그 순간부터 '자주성을 읽고 회사에 딸려 붙게' 된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근로자라고 불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이다.


'종속'되어 있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과거 노예제도가 존재할 당시,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고 주인이 제공하는 음식과 잠자리로 생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된 오늘날, 우리 직장인은 상사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월급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며 삶을 이어간다. 거칠게 쓰여진 글이지만, 크게 반박할 만한 내용이 없이 상호 대응된다. 그렇다면 대체 근로자와 노예가 다른점이 무엇일까?


노예는 누구에게 종속될지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 직장인들은 어느 회사에 종속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노예는 '어느 정도로 종속될지'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 직장인들은 선택할 수 있다. 노예에겐 선택권이 없지만,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그 점이 바로 근로자인 직장인이 노예와 다른 점이다. 그리고 근로자인 직장인이 노예에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활용해야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종속성'과 '선택권'은 반비례 관계


우리는 종속되어 있지만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종속성과 선택권이 반비례 관계라는 사실은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많을 수록 종속성은 약해진다. 종속성과 선택권이 반비례임을 이해했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노예같은 근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선택권을 최대화 하고 종속성을 최소화 해야 한다. 특히 자본가가 아닌 이상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제적 종속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적 종속성'을 최소화 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그를 위한 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논하기에는 너무 짧은 글이며 글로 잘 전달할 자신도 없다. 독자들이 나름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을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데 족하려 한다.)


전문성, 학습능력, 위기의식


전문성

전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누구도 내릴 수 없다. 실제로 전문성을 가진 직업, 즉 '전문직'의 정의가 무엇이고 그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직장인들은 전문성을 추구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다면 직장내에서 인적 종속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인적으로 종속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상급자)에게 내가 필요한 정도보다 나에게 회사(상급자)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조직의 어떤 이보다 해당 업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직원은 인간적으로 상급자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라도 업무적 결과물이 타직원보다 탁월하다면 더 높은 존재에게 종속되어 있을 내가 종속되어 있는 존재(통상적으로 팀장이고, 법률 용어로는 '사용자를 위해 행위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가 오히려 일정부분 나에게 종속된다.


다만, 한가지 주의할 점은 전문성을 단지 현재 속한 조직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 시키는데 그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 속한 조직내에서 맡은 업무를 조직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원활하게 처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전문성'보다는 '능숙함'에 가깝다. 현재 속한 조직에서 맡고 있는 직무를 다른 조직에 가서 수행해도 훌륭하게 완수 할 수 있을때 전문성에 가까워 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성을 기르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현재 맡고 있는 직무와 관련된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만 한다.


학습능력

모든 사람은 어떤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그 일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일인 경우 더욱 그렇다. 현재 속한 조직에 익숙해져서 다른 일을 하기를 두려워 하는 직장인이라면 조직 밖으로 나아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힐 수 있다. 필자 역시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현재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가야 될 일이 생긴다면? 자동차가 생기면서 마부라는 직업이 사라졌듯이 노무사라는 직업이 산업환경의 변화로 사라지게 된다면?


위와 같은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어떤 대응이 가장 최선일지 수 없이 고민했고, 새로운 상황과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지식을 최대한 빠르게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특별한 전문자격이나 기술이 없는 직장인이라면 갑작스럽게 조직 밖으로 나가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상황에 닥칠 확률이 더욱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빠르게 습득'하는 학습능력을 키우고 유지해야 한다. 불의의 사건으로 현재의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시작을 해야 될 상황이 오더라도 새로운 학습을 빠르게 해낼 수 있다면 보다 담담하게 그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기의식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위기의식이 사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노무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종속적 관계, 즉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순간을 그 어떤 직업보다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현재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 직접 사건을 담당하지 않더라도 노무사들간 사건에 대한 검토 의견을 상호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부당해고, 부당전보, 부당전직, 정리해고, 폐업 등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사건을 실제로 겪는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독자분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 줄 몰랐다.'는 것이다.


법상 정년이 60세로 되어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정년은 결코 60세가 아니다. 정년에 도달하기 전에 직장인들에게는 각종 불의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떠나야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이 올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다. 그런 순간은 '필연적으로'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의 직장인은 여전히 현재 속한 조직을 떠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까지 내게 업무지시하던 팀장이 회사의 압박을 못 버티고 희망퇴직 하는 모습을 봐도 몇 일 후 깨끗히 잊는다. 희망퇴직한 팀장의 자리는 또다른 팀장이 와서 채우기 때문이다. 당신또한 그렇다. 어느 순간 그 조직에서 잊혀질 존재다. 그리고 잊혀질 존재라는 사실, '자주성이 없이 딸려 붙어 있는' 이 종속적 관계가 생각보다 일찍 끝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마치며 : 경제적으로만 종속되는 근로자


근로자는 사용자와 사용종속관계에 있으며, 종속은 자주성이 없이 딸려 붙어 있는 것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음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근로자인 직장인들이 전문성과 학습능력을 키우고 위기의식을 갖음으로써 그 종속성을 (특히 인적 종속성)을 약화시켜 가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러한 이야기가 '근로자'라는 법적 지위에서 탈출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근로자'라는 존재를 비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필자 역시 근로자이다.)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으로 삶을 이어가는 근로자들은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누구보다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될 존경 대신 '인적 종속성'의 과도한 확대로 인한 인격적 모독과 갑질을 받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적 종속성'이 더이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으로 거론되지 않는 노동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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