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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무사 Oct 01. 2020

직장인의 멸종

직장인은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의 번영과 멸종에 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전문분야와 관련있는 '직장인'이라는 단어에 전문분야와 전혀 무관한 '멸종'이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제목을 정한 이유는 항상 머릿속에 머무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이다. 멸종의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한때 지구를 지배했던 생물종은 공룡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박물관에 모형으로만 존재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직장인이라는 종족이 산업혁명 시대를 거쳐 무한히 번영하다가 새로운 산업 시대에 이르러 멸종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들곤 한다.


  시대마다 주요 산업분야가 변화하기는 했지만 산업이 시작된 이후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직장인은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아무리 많은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라고 해도 인적자원 없이는 아무런 이윤 추구 활동도 할 수가 없다.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기술자, 사업 활동을 문서로 정리해 주는 사무원, 복잡한 기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프로그램을 짜주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을 떠올려 보면 '사람 없는 사업'은 상상할 수 없다. 자본가 역시 자본주의시대의 필수적인 등장인물이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자본가이기보다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시대의 주인공은 단언컨대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대가 속삭이고 있다. 이제는 '직장인'이 시대의 주인공에서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 할 순간이 오고 있다고. 그리고 '직장인의 노동'을 주제로 생업을 이어가는 위치에 있다 보니 그 속삭임이 대형 스피커와 연결된 마이크에 외치는 수준의 볼륨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걱정이 되고, 위기의식이 든다. 나 역시 현재 직장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다스 포럼에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최초로 나왔고, 그것을 제목으로 한 수 많은 책이 출간되고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다. 많은 책과 자료를 읽어 봤지만 4차 산업혁명은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이었다. 그간 있어왔던 수 차례의 산업혁명 중 언제부터를 4차 산업혁명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는 산업혁명을 4차가 아닌 총 3차로 구분한 뒤, 우리가 통상 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변화를 3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한다.) 많은 자료를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깨닫기보다는 오히려 그 모호성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수 많은 책에서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는 용감한 시도를 해본다면 4차 산업혁명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 요약을 보더라도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와닿지 않는다. 사과를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사과를 보여주며 '이게 사과야'라고 말하는 것일 텐데 그럴 수 없으니 '모양은 둥굴고 달작지근하고 시큼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붉은색 때로는 연두색을 띠기도 하는 과일' 이라고 설명하는 느낌이랄까.)

 IoT, 빅데이터, AI, 드론, 초고속연결망, 자율주행차 등의 최신 기술로 인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산업환경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가 이루어지면서 폭발적 융합이 일어나는 시대


  4차 산업혁명을 '노동'이라는 프레임으로 살펴 보자.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라는 주제로 좁혀진다. 기존의 산업혁명은 인간의 육체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간의 근육은 전기에너지와 로봇팔로 대체 되었고, 인간의 감각기관은 각종 센서로 대체되었다. 육체노동에서 밀려난 인간은 보다 많은 지식과 창의성이 필요한 정신노동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빅데이터와 딥러닝에 기반한 인공지능은 이제 정신노동의 영역에서까지 활약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2호는 노동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꼭 법조문을 들이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필자로서는 정신노동, 육체노동,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노동 외의 제3의 노동의 종류를 알지 못한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짐에 따라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변화로 인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노동이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자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착취의 대상에서 무관한 존재로'.


  '노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며 특별한 가치를 지닌 무언가로 표현되는가 하면, 형벌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노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떠나 직장인인 우리에게 무노동은 무임금이고, 무임금은 '사회적 죽음'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노동을 상실하게 될 위험을 마주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라면 체계적인 지식에 근거해 최선의 답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많은 책과 논문을 읽으며 고민을 했지만 부끄럽게도 답을 모르겠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통섭적 사고'를 이야기 하고, 폴리매스라는 책에서 와카스 아메드는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사고를 강조한다. 훌륭한 지식인들의 저서를 통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 시대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노동을 전제로 한 법률관계를 다루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인간노동'을 다루는 필자로서는 인간노동을 전제로 하지 않은 상황이 낯설기만 할 뿐이다.


  결국 모든 것이 모호한 가운데 여전히 명확한 것은 한 가지 사실뿐이다. 전통적인 직장인의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멸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본 재난영화에서 혜성 충돌로 예정된 인류 멸망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고민했다. 내가 저 상황에 놓인다면 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까, 아니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편안한 죽음을 택할까. 결국 난 발버둥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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