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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마지막편 - 해외생활의 축은 그냥 나였다.

길 잃고 자아 찾은 미아의 네덜란드 정착기

by 미아



이직한 회사에서 나는 똑똑한 동료들 사이에서 엄청난 자극과 에너지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커리어라는 축의 실마리가, 이렇게 풀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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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조금 더 복잡한 퀘스트. 사랑이었다.

지난번 상담사가 던진 한마디가 나를 깨웠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피곤하시겠어요." 맞는 말이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운전대를 바꿔쥐던 게 여러 감정이었다면, 내 운전대는 내 몸의 장기들이 쥐고 있었다. 나는 내 머리가 쥐고 있던 운전대를 심장에게 넘겨보기로 했다.

운전대를 넘겨받은 심장의 전략은 단순했다. 직진.

아무것도 재단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기로 했다. 상처받을까 봐 꽁꽁 감싸고 있던 마음을 천천히 풀어냈다. 사랑을 주는 것에는,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방감이 있었다. 받는 건 내 뜻대로 할 수 없지만, 주는 건 온전히 내 자유였기 때문이다. 의외로, 사랑을 주면서 나의 두려움이 잠잠해졌다.


그는 내가 그간 끌렸던 사람들에 비해 큰 야망이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한때 그것이 불만이었다.

꿈을 물으면 그는 "가정을 이루고 좋은 남편과 아빠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한편으로 그 답변이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돌아간 암스테르담 상업지구. 그곳에는 내가 이상적인 파트너라 여겨오던, 소위 '야망남(!)'들이 넘쳐났다. 커리어에 대한 욕망과 성취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 한편으로는 그 모습에 자극을 받으면서도, 묘한 이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가까운 주위에서 본 그들은 어딘가 불안정했다.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떠돌거나, 비대해진 자아로 상대를 공격했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쩐지 불안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 시기에 유독 이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 것도, 어쩌면 우주의 신호였던 걸까? 언젠가부터 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사랑에 헌신하겠다는 남자친구의 야망이 더 이상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도 기억나지 않는 싸움 끝에 화해한 어느 평범한 주말. 그는 레스토랑을 예약했다고 했다. 화해의 제스처쯤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따라나섰다. 점심을 한 뒤, 그는 나를 암스텔 강가로 데려갔다. 암스테르담에는 다리 아래에서 키스하면 사랑이 영원하다는 전설이 있는 다리가 있다. 그 위에 선 그는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타이밍이 너무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도 아닌, 평범한 주말.

그는 내게 청혼했다.

그리고 나는, 망설임 없이 “Yes.”라고 답했다.

놀라웠다.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 있다는 것이.
그가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자신의 직관을 믿고 끝까지 직진한 걸까?


나는 오랫동안 해외생활을 지탱하는 두 축이 커리어와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그 두 축이 다시 단단히 자리 잡은 듯한 안정 속에 살고 있다.

치열하게 부딪히고 도전하며 기회를 붙잡아 쌓아온 ‘커리어’라는 축.
마음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다져온 ‘사랑’이라는 축.

이 여정을 지나며 깨달았다. 해외생활을 지탱하는 그 축을 쌓는 힘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흔들리는 수많은 축들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고, 고민하고, 그것을 단단히 쌓기 위해 노력하는 힘을 가진 능동적인 나. 그 과정을 견디고 스스로를 믿어주는 나.

물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용기를 통해, 또 누군가는 돌아가는 선택 속에서 더 단단한 자신을 만날 수도 있기에.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해외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축은 결국 그냥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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