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그라운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울푸드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어머니의 된장찌개일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아버지가 해준 계란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그 맛의 원류는 할머니였을 확률이 높다. 2022년 행안부 청년마을로 선정된 12곳 중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시골 할머니의 손맛에 주목한 팀이 있다. 바로 경남 함양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마워! 할매’팀이다.
“우리는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오신 할머니에 주목했어요. 할머니와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을 연결해 할머니들의 맛있는 조리법과 이야기가 넘치는 정겨운 청년마을을 만들 거예요.”
‘고마워! 할매’ 마을을 이끄는 박세원 대표의 말에는 열정과 흥분 그리고 기대가 넘쳐난다. 박대표는 청주에서 보낸 대학시절을 제외하고는 경남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함양에서 콩 농사를 짓던 박대표는 ‘정보화농업인 귀농연합회’에서 뜻이 맞는 동료와 함께 농업법인 ‘숲속언니들’을 만들었다.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를 소개하고 볼거리, 즐길 거리를 발굴해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뭉친 것이다.
콩 농사를 짓는 사람, 전통 장류를 제조해 음식 치유 활동을 하는 사람, 굼벵이를 사육하고 가공해 제품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여행전문가, 홍보 마케팅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언니’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은 우선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자신들의 콘텐츠를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준비하던 중 뒤늦게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알게 됐다. 마감을 맞추려면 급하게 뛰어야했다. 쇼핑몰을 일단 제쳐두고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준비에 몰입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3등(청년마을은 해마다 12곳을 선정한다)으로 탈락. 지난 2021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숲속언니들’ 아닌가. 재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한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청년마을 사업 구상을 구체화하고 더욱 숙성시켰다. 결국 올해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당당히 선정됐다. 함양에 사는 손맛 좋은 할머니와 청년을 연결해 할머니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청년에게는 지역자산을 연계해 지역 정착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고마워! 할매’ 마을의 로그라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업 1년차에는 ‘시골할매와 도시손녀의 맛있는 이야기’라는 컨셉으로 <안녕, 할매>라는 지역살이 체험 프로그램에 집중한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할머니와 교류하며 손맛이 담긴 다양한 음식과 간식을 직접 만들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지난 6월 15일 8명의 청년 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안녕, 할매> 1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현재 네 분의 할머니가 청년마을과 함께 한다고 한다.
2년차에는 그동안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조리법을 활용해 식당을 차릴 계획이다.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도시락과 밑반찬으로 이루어진 로컬푸드 식당이다. 그리고 3년차에는 식당을 업그레이드하여 할머니들의 삶과 제철밥상이 들과 밭에서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창작 공연을 곁들인 파인 다이닝을 제공하는 복합 문화 공존 식당을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고마워, 할매’는 동네 시장 안에 있는 30여 평 공간을 빌려 청년 참가자 숙소와 공유 업무 공간으로 쓰고 있다. 할머니들과 음식을 만드는 장소는 ‘숲속언니들’과 지역의 공간들을 활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역주민과 밀착된 점, 서로 스스럼없을 정도로 환대하는 분위기가 ‘고마워! 할매’마을의 강점이 아닐까요.”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 박세원 대표의 표정만으로도 ‘고마워! 할매’의 앞날이 환해 보인다.
7월 20일부터 <안녕, 할매> 2기를 모집한다고 하니 지역살이에 관심 있는 청년이라면 도전해 보면 좋을 듯하다. 지자체별 조례에 따라 함양은 청년 나이 기준이 만45세까지라 하니 평소 나이 제한으로 도전하지 못했던 분들이라면 이번이야말로 기회가 아닐까 싶다. 함양의 리틀 포레스트가 올 여름 당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