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는 것은 단순히 옛날의 것들을 총칭하지만은 않는다. 과거의 것들 중 시간에 의해 걸러지고 재발견되어 현재에까지 회자되는 작품들이 고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의 생명력이란, 그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쇠퇴적인 뉘앙스와는 달리, 강력하고 지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창작자와 퍼포머들에게 있어 고전을 차용하거나 해석해야 할 때에는 몇 가지의 과제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작품이 고전의 존재감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음악의 영역에서는 이 점이 조금 더 예민하게 적용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감상자가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작품이나 고전을 모티브로 독자적인 이야기를 -시청각을 동원한 종합적 경험의 차원에서- 풀어가는 영화와는 달리, 음악 특히 대중음악의 경우, 극도로 한정된 시간 내에서 레퍼런스와 작품이 교차하고 응집하고 충돌하고 분리되기 때문이다. 이 고전의 범주를 '서양 클래식 음악'이라는 범위로 좁힌다면 더욱 그렇다. 요한 파헬벨이 남긴 '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 라장조'를 변주하고 차용한 수많은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이 불후의 명곡의 주제부와 화성 진행을 이용한 많은 곡들이 주목받고 잊혀지는 동안에도 원전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유명한 클래식 주제부를 사용한 곡들은 청자로 하여금 그 곡을 다소 익숙하게 느껴지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창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들을 지워버리고 최종적으로 원전에 대한 경험만을 반복한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클래식이 대중음악의 영역에 종종 소환되는 이유가 있다면, 충분히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진 음악적 구성을 레퍼런스로 삼아 소위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기 위함과, 기존의 주제부가 지닌 정서와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유명한 고전 주제부를 차용해 창작에 활용하는 작업 자체는 클래식의 시대에도 이미 존재했다. 인디게임 <Ib>의 미술관 테마곡으로도 유명한 코렐리의 'La Folia' 주제부는 15세기 중반 이베리아 반도의 춤곡에서 쓰이던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8마디 프레이즈로 구성되어 있고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활용되었다. 이 엄숙하면서도 정서적인 멜로디는 그레고리안 성가 시대의 교회 음악을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바로크 특유의 정교하고 격정적인 소리와 이미지를 전달한다. 즉, 당대의 기준에서 고전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렐리를 포함해 비발디, 바흐, 살리에리와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고 '사라방드'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4번 라단조에서도 주제부로 쓰였다. 또한 영국의 너서리 라임 중 하나인 'Tom the Piper's Son'의 멜로디는 18세기 영국 오페라가 쇠퇴하는 계기를 마련한 발라드 오페라 작품 '거지 오페라' 중 'Over The Hill And Far Away'로도 사용되었다. 이 작품 내에서 원곡의 목가적인 멜로디는 오페라 특유의 풍부한 정서와 어느 정도 '고급스러운' 소리를 취하며 발라드 오페라 특유의 서민적이고 민속적이면서도 격식을 갖춘 형태로 변모한다.
물론 고전을 차용한 작품이 반드시 -특히, 상업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서 창작자가 익숙함과 새로움을 함께 전달한다는 창작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데에 어느 정도 지름길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기에 고전을 이용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은 이 매력적면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의 레퍼런를 활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남길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이라고 말하는 고전 음악이 대중 음악에 적극적으로 차용되기 시작한 것은 재즈 역사의 초기부터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자크 루시에와 웨인 쇼터, 마일즈 데이비스, 니콜라이 카푸스틴 등 재즈 아티스트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론이 형성되었다. 재즈 시대에 만들어진 방법론은 지금의 대중 음악에 있어서도 유효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긴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기 때문에 조금 더 최근의 사례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에릭 칼멘의, 동시에 셀린 디옹의 리메이크로 더 잘 알려진 'All By Myself'는 고전의 존재감을 뚫고 성공적으로 생존에 성공해낸 대표적인 사례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를 편곡한 이 곡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레퍼런스의 주선율의 뒤로 드라마틱한 주선율와 보컬을 코러스에 배치했다. 대중 음악 내에서도 발라드는 역사가 긴 장르이고, 클래식과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역사가 있는 만큼 두 주제부가 어우러지기 비교적 수월하기도 했겠지만, 여전히 청자에게 안정적으로 재미를 전달하는 곡이다.
물론 고전의 주선율을 내세우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멜로디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 경우는 댄스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weetbox의 'Don't Push Me' 역시 두드러진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제 1악장은 이 곡의 도입부에서 마치 주제부처럼 흘러나오지만, 이내 완전히 다른 멜로디가 벌스와 코러스를 채워나간다. 월광의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부의 파편은 그저 곡 전체에서 스파이스처럼 군데군데 뿌려질 뿐이다. K-POP으로 범위를 더 좁힌다면 베토벤 가곡 'Ich Liebe Dich'가 도입부로 쓰인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도입부에서 모짜르트 교향곡 40번의 1악장을 사용한 동방신기의 'TRI-ANGLE',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모음곡 호두까기 인형 중 5악장 설탕 요정의 춤을 도입부와 코러스에 잘라붙인 빌리의 'everybody's got $ECRET'이 있다.
물론 고전 클래식 음악은 그 자체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위의 경우와는 반대로 코러스에서 주선율을 그대로 살려 곡을 만든 경우들도 많다. Little Mix의 'Little Me'에서 쓰인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 올림 바단조 50번은 곡의 도입부와 코러스 전주, 아웃트로 등에서 그 익숙한 주선율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혹은 빌헤르미가 편곡한 버전으로서의 G선상의 아리아-을 사용한 Sweetbox의 'Everyting Gonna Be Alight'의 경우 코러스에서 새로운 주선율을 어느 정도 넣기는 했지만, 거의 랩핑에 가깝게 선율의 높낮이가 평이하기 때문에 바흐의 음악은 여전히 주선율로 기능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를 도입부와 코러스에서 사용한 신화의 'T.O.P (Twinkling Of Paradise)'에서 레퍼런스가 된 주선율은 곡 전체에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장나라의 '겨울 일기' 코러스에서는 페촐트의 미뉴에트 G장조가 주선율로 기능한다. (여자)아이들의 'Nxde'에서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가 도입부의 보컬에서 주의를 집중시키며 나타난다. 그리고 벌스에서 이내 사라지는가 싶으면 코러스의 드랍에서 호사스러운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다시 나타나 주제부로 기능한다.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샘플링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이 고안됨에 따라, 고전의 주제부는 더욱 잘게 잘라 양념처럼 사운드 소스로 사용되곤 한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Sixth Sense'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4악장-혹은 그 주제부를 연상시키는 믹싱-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곡의 긴장감을 점점 높이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블랙핑크의 'Shut Down'에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가단조는 원래 주제부의 일부만이 다소 애매하게 잘려나가 곡 전체의 베이스 사운드처럼 활용된다. 이러한 경우, 레퍼런스가 된 작품 자체가 가진 장점과 매력,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소실되기 때문에 원곡을 즐겨 듣는 이들에게는 다소 조잡하고 너덜너덜한 사운드 들릴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가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애매하고 조악한 선율을 날카롭게 벼려낸 사운드 믹싱과 충분히 역동적인 새 주선율이나 래핑으로 커버하는 것이 근래의 팝 음악이 취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방법론이 점점 선율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몰두할수록 고전의 선율 역시 그 안에서 형태와 의의를 잃고 순간적인 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고급스럽다고 여겨지는- 이미지를 위해 잘게 분해되어가고 있다.
물론 고전은 여전히 고전이다. 단지 대중음악의 범주에서 사용되는 고전의 주제부가 온전한 본래의 매력을 잃고 일종의 음소로서 사용되고 있는 경향이 강해질 뿐이지, 고전 음악을 차용한 수많은 대중음악 작품들과 고전 클래식 작품들 중 어느 쪽이 더 강한 생명력 내지는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앞서 언급한 관현악 모음곡 3번을 도입부부터 주제부로 내세우다가도, 금새 그로테스크한 사운드 소스의 폭풍이 이어지고, 그러다가도 코러스에서 원곡의 주선율과 새로운 주선율이 함께 이어지며 조화와 부조화를 연속해간다. 대중음악은 여전히 고전을 옷 입고 새로운 시대의 고전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고전의 뒤에 따라붙은 오랜 시간의 무게와 격조를 탐닉한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이 미래의 고전이 될 일은 희박하겠지만, 그럴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 대중음악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 복잡하면서도 얕은 상상의 울타리 안에서 감상자들이 그 얄팍한 상상을 즐기다가 떠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