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사람들
2017년 작이다. 서늘한 톤에 진지하고 긴장감 있어 보이는 네 인물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 상당히 어둡고 진지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 손을 대지 않았던 것 같다. 익숙한 얼굴 마츠 다카코와 마츠다 류헤이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보고도 선뜻 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 고민하지도 않을 만큼 왠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2024년이 되어서야 이 작품이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최근 그 매력을 알게 된 다카하시 잇세이의 필모를 보다가 비슷한 시기에 관심을 갖게 된 미츠시마 히카리와 공동 출연한 이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 재미있을까? (내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실패 리스크를 줄이려 노력한다 ~)
그래서 조금 검색을 해보다가 알게 된 것.
사카모토 유지 각본이라는 것 오,
이분이 영화 괴물의 각본을 썼다는 것. 오오?!!
알고 보니 이 작가의 작품은 모두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최고의 이혼과 마더 등 - 오오오오!!!!
아니, 내가 왜 이 작품을 지금까지 안 봤나 싶을 만큼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볼 것이 없어 이것저것 조금 맛보다 끝내기를 반복하는 요즈음 (명작 일드 안 본 눈 삽니다) 이렇게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쁨이란!
각자 나름의 비밀을 간직한 현악 연주자들이 우연한 계기로 콰르텟을 결성하고 함께 지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어 지는데, 정말 n 차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초반의 읭? 싶은 떡밥들도 순차적으로 회수되며 동시에 감동까지 주는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방송 기간: 2017.01.17. ~ 2017.03.21
회차: 10부작
각본: 사카모토 유지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마츠 다카코, 미츠시마 히카리, 타카하시 잇세이, 마츠다 류헤이, 요시오카 리호, 토미자와 타케시, 야기 아키코 外
스트리밍: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2024년 2월 기준)
일단 요즘 가장 주목받는 매력적인 두 배우 다카하시 잇세이와 미츠시마 히카리의 매력적인 연기가 돋보이고 베테랑 마츠 다카코와 마츠다 류헤이가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 마츠다 류헤이는 이런 초식남 같은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림. ( 물론 극 중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었다는 반전이 또 묘미 ㅋㅋ)
네 명의 연주자들의 합이 중요한 콰르텟이라는 제목처럼 네 사람의 티카타카가 매력적이다. 여러 인물의 대화 속에 블랙코미디적이고 연극적인 요소를 잘 표현하는 작가답게 별장에서 생활하는 네 사람의 대화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동시에 각자의 사연을 통해 약간의 서스펜스 스토리도 병렬로 이어져 쉬지 않고 정주행 하게 만든다. 어떤 중대한 사건이 있어도 태연하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연출은, 다른 작품이었다면 다소 어색하고 개연성을 따질 수 있겠으나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에서는 모든 걸 납득시킨다. ‘자 이제 다음 장면이야’ ‘앞에 아까 그거는?’ ‘아무튼 다음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 하고 말하는 느낌. 그런데 그런 게 다 납득이 돼버리는 신비한 힘. 이런 각본과 연출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인 듯하다.
이 드라마를 인생작으로 꼽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 명대사가 워낙 많아서라고도 한다. 일드 특유는 너무 교훈적이거나 설명적인 명대사 남발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그 많은 명대사가 모두 과잉되지 않고 담백하게 가슴에 확 꽂힌다.
어찌 보면 네 인물 중 가장 주인공에 가까운 인물, 배우의 힘 때문인지 그녀의 스토리에 몰입감이 상당한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의 진가가 드러난다. 한없이 소심한듯한 그녀지만, 결단의 순간에는 굉장히 냉철하고 강인한 모습이 나타난다. 이 콰르텟을 만들고 실질적 리더는 벳푸이겠지만, 정신적인 중심축은 그녀일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난히 초반부부터 애정을 갖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에게 애정이 생기게 되는데, 인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따뜻함.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는 말처럼 완전하지 않은 모습 덕분에 성장할 여지가 생기고 서로 연대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마키의 대사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흔한 말 같지만, 이 장면에서 마키가 스즈메에게 전할 때 굉장히 깊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곱씹게 된다. 스즈메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일단 그녀의 미모 감상 먼저!! 그녀의 필모 중 가장 매력적인 외모와 스타일을 자랑하는 것 같다 (개인적 취향 ㅋㅋ) 몇 년 전 작품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 소녀 같은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되는 배우의 힘.
생각해 보니 마키뿐 아니라 스즈메도 초반에 좋아지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마키의 시어머니의 사주를 받아 그녀를 감시하는데, 으으 기분이 영 안 좋다. 새삼 이 작가 대단하다 싶다. 초반의 비호감을 어떻게 이렇게 반전시키는 것인지... 그녀의 사연을 알수록 정말 짠하고 보듬어주고 싶어지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미츠시마 히카리의 열연이 돋보이는데 스즈메의 이 복잡하고 오묘한 내면을 이 배우가 아니면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어둠과 밝음, 사랑스러움과 괴이함이 공존하는 참 입체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너무 애틋해져 버렸다.. (사심 가득)
스즈메의 장면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담담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아 정말 마음이 아프다. 짝사랑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이 장면에서는 너무 몰입이 되어서 확 눈물이 났다. ㅠㅠ 스즈메가 취직한 중개사무소의 사장님과의 이 따뜻한 관계도 좋았다. 그간 외로웠을 스즈메가 세상에 다시 나가고 믿을만한 어른을 만난 것이 기뻤다. 행복하길 스즈메! 사랑도 이루어지길!!!
쓰다 보니 다시 한번 너무 좋은 대사들이었구나 싶다.. 이거 외에 정말 수많은 명대사 퍼레이드이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인간의 다채로운 내면에 대해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가의 시선이 참 좋다.
논외로 너무 매력적인 다카하시 잇세이가 맡은 이에모리상 캐릭터가 다소 밋밋한 느낌. 워낙 좋은 배우인 데다가 설정 자체도 참신해서 극의 초반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좀 평면적이 되어버렸다고 할까. 게다가 벳푸와 마키의 러브라인에는 공감이 안되었는데 벳푸를 바라보는 스즈메를 바라보고 있던 이에모리라니!!!! 이 뜬금없는 러브라인은 애초에 없던지 만들었으면 좀 마무리 지어주지 (내 욕심) 스즈메를 바라보는 눈빛 너무 좋잖아…. 이 커플 좀 어떻게 안 되나요?? 근데 스즈메가 벳푸를 너무 사랑함... ㅠㅠ 단지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을 끄적여본 것.
아무튼, 때마침 흰 눈 쌓인 이 겨울에 이 작품을 시작한 것 또한 행운이다! 지금까지 안 보고 묵혀둔 나 자신 칭찬해! 지금 보기 딱 좋은 작품이었어. 좋은 작품이어도 언제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드를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건 나중에 별도로 함 써봐야지)
개인적으로는 일드가 잘하는 부문은 크게 세 가지 종류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세 번째에 속하겠지?
1. 어이없는 병맛 코미디의 대 환장 쇼
2. 대놓고 유치하지만 어릴 적 순정만화 감성을 일깨워 주는 본격 로코
3.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사람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위안을 주는 성장, 휴먼 드라마 (+유머)
이야기와 별개로 배경이 되는 계절과 로케를 보는 맛도 상당하다. 겨울 설원으로 눈 호강도 실컷 했다. 일본의 겨울 풍경의 묘사는 참 낭만적이고 따뜻하다. 드라마의 스토리와 하얀 겨울 배경이 잘 어울려, 시각적 만족도 큰 작품!
덧, 드라마 엔딩곡 뮤비에 나오는 배우들 멋지네!
가사 중에 와닿는 부분
흑백을 나누기에는 어울릴
멸망의 주문이지만
새파랗던 유년 시절에는 교과서를 외우고 있으면
정답 오답 중 어느 쪽인지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연극 대본 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
애드리브에는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말하고 싶은 건 흘러넘쳐서 시끄러워
네 앞에서만 그러는 거지만
......
흑백을 나누는 건 무서워
절실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 인생은 길고 세상은 넓어
자유를 손에 얻은 우리들은 그레이
행복해지고 불행해지고
어수선한 가슴의 한구석만이 시끄러워져
어른은 비밀을 지켜
♡
다음 겨울에 다시 한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