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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Mar 16. 2024

너희 남편 무슨 일 있니?

남편 사진을 보고 친구가 물었다.


좀만 더 버텨봐 ~

곧 괜찮아지겠지~

디데이를 함께 세보자

결국 좋아질 날도 올 거야~

더 힘들었던 시간을 생각하며 지금을 감사해 보자.


지난 5년 동안 지독하고 고약한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전한 위로의 말들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말에 덧붙여 못된 마누라는

"이걸로는 겨우 먹고살아!!"

라고를 통장이 텅장이 될 때마다 말했다.


그 사이 남편의 눈가는 축 쳐진 채 울상으로 주름이 졌고  깔끔했던 외모는 피곤과 과로가 가득 찬 모습이 돼버렸다. 친구들은 "너희 남편 갑자기 늙은 거 같아.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고 나는 늘 피곤해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퇴근하고 집 문 앞에 서서 하루의 서글픔과 고됨을 다 털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와 말하던


"여보~~ 나왔어~!!"


라는 말이 겨우 힘을 내서 밝아 보이려고 애쓴 외침임을 헤아리지 못했다.


남편은 아이들이 뛰어와 안기길 바라며 애처럼 투정 부리기도 했다.


"왜 아무도 날 반겨주지 않는 거야? 서운.. 하다.."


라는 말이 저녁준비할랴 정신없는 나에겐

귓전에서 퉁겨 어딘가에 의미 없이 사라졌다.


피곤하다며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온종일 남편이 누워 잘 때마다 처음엔 내가 키워야 하는 신생아인가 싶었다. 그러다 공감 정서가 없는 남편과 대화가 엇갈려 투닥거리다 서로 과격하게 다투게 될 때는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주일예배자리에 앉아 왜 이리 남편이 싫은지.. 미워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미움이라는 불편한 마음이 오래 자리 잡은 채 불쑥 튀어나오는 내가 싫었다.


이 마음이 풀어지기를 그리고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눈을 감고 있던 어두움 안에 하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남편이 유골함 항아리에 담겨 막 화장을 마치고 나에게 건네진 상황 가운데 서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남편의 육체의 모습은 사라지고 흙으로 돌아가 어떤 형상도 없이 날리는 먼지처럼 가루가 된 존재가 되어 그렇게 나에게 남편의 이름 세 글자가 쓰인 항아리하나가 내 팔에 안겨져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게 이런 거니? "


라는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이 너무 미워서 있으나 없으나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없어도 슬프지 않을 거라고까지 생각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작은 항아리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요.. 그리고 미워하지 않을게요.. '


라고 말하며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눈을 떴다.


 늘 빠듯한 돈이 싸움에 원인이었기에

 '부탁이 있다면.. 경제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예배를 마쳤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언어치료 비용이 부족해서 충분히 시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한참 공부를 할 나이인 큰 아이 학원비 한번 가볍게 내지 못해 아이에게 돈만큼 공부하는 것인지 닦달하고 쪼아대는 내가 싫었다.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하고 입히고 싶은 게 있어도 못해주는 일상이 지겨웠다.


  결국 텅 비어있는 텅장이 원망스럽다가 남편에게 미움이 전해졌다. 너 때문이야!라고 말하면서...

내 직장 그만두고 혼자 벌어도 넉넉하다고 허세 부려대던 연애시절의 남편의 모습이 믿지 말아야 하는 말이었다는 게 속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난 미움을 뭉치고 뭉치고 끝없이 뭉쳐서 언제라도 던지면 상처를 가득 주는 아픈 말들로 만들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게 되었고 호기롭게 나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을 보내며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불편한 상황 가운데 참아내야 하는 하루가 돈을 벌면서 따라오는 부가적인 감정들이라는 것을 새록 깨달았다.  


자신의 잘못을 가만히 있는 나에게 전가시킨 타인으로 나는 불쾌함이 생겼고.. 억울했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와서 더 화가 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남편이 집에 와서 이야기해 준  회사생활의 일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마다 함께 화를 내주고 공감해 주다가도 그냥 참어~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하며 대충 넘어가라고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이리 속상한 걸 어떻게 참아내며 이겨냈냐고 물어보자 " 힘들지만 어떻게.. 그런 게 다 사회생활이지... 오늘 당신 속상했겠다. 내가 혼내줄까?" 하며 팔을 걷는 남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남의 편인 줄만 알았는데 내 편이었구나 싶어진 순간이었다.  

"나 이제 겨우 2주 일했는데 이거 왠지 당신 힘들었던 감정들 체험 삶의 현장 같아.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감정과 상황들을 참아가며 힘들게 돈을 벌어왔었는지 함 느껴보고 공감해 봐라 하고 나 실습시키시는 같아~"라고 말하니 안쓰러운 듯 나를 쳐다보며 "결혼할 때 일 안 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었는데 일까지 하게 하고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며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미안해... 그동안 집에 있는 나만 힘든 지 알았어... 고생하고 벌어온 돈 겨우라고 말했던 거 미안.. "


하며 13년 차에 찾아온 질기고 질겼던 권태기는 남편 직장 생활 애환 체험 삶의 현장으로 서로를 공감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옆에 있을 때 잘해주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 내 편이니까... 좀 세게 띵 맞아야 정신 차리는 편입니다.]

: 얼마나 갈지 모를 나의 마음이지만 당분간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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